Romeo + Juliet, 1996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첫눈에 반한 건 아니었지만, 어느새 넌 내게 성큼 다가와 있었다. 어둠 속을 걷고 있던 와중 별빛처럼 반짝이는 너에게서 나는 시선을 거둘 줄 몰랐다. 칠흑 같은 어두운 길에 유일한 이정표 같은 밝음에 나는 홀린 듯 이끌렸다. 여러 사람들 틈에서, 그 혼잡한 와중에 서서히 빛을 발하는 너를 향해 점점 커지는 마음은 확실한데,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네가 왜 좋으냐고 누가 묻는데 나는 무어라 할 줄 몰랐다. 손도, 팔도, 낯도 아니고 신체의 어느 부분 때문이 아니었다. 너의 반짝거림에 어떤 이름을 붙여도 상관없이 나는 그저 그것이 너이기에 좋았더랬다. 어떤 이름으로 부를지 끝내 알 길이 없던 너의 반짝임은 곁에 선 나까지 밝게 하는 것이었다. 나의 마음에도 밝게 조명을 켠 듯 훤히 내 마음을 읽는 너는 함께하는 1시간을 1분으로 만들어주었다. 가슴에 사무치는 사랑이 어쩐지 너무나 무모하고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무심코 사랑한다 말해버린 순간이 후회되기도 했지만, 그렇게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은 학교를 파한 아이처럼 기뻤다.
그러나 너와 헤어질 때는 침울한 낯으로 학교에 가는 아이처럼 슬펐다. 홀로 집에 가는 길은 너무 조용하고 외로웠다. 잠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너와 멀어지게 하는 장애물이란 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너와 다시 만날 내일이 스무 해처럼 멀게 느껴졌다. 사랑의 그림자만으로도 그렇게 기뻤는데 그것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달콤할까. 나는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일을 저질러버리고 말았다. 가끔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최선일 수 있는데, 라며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을까. 너에게 하고픈 말이 너무 많아 쏜살같이 달아나는 시간을 탓하곤 했었는데, 나는 이제 네 앞에 서면 말문이 막힌다. 다이아몬드처럼 밝게 빛나던 너를 그리며 그것과 닮은 밤하늘의 별을 탓해보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운명의 별들아 멋대로 해라. 내 셔츠를 찢어 피를 멈췄지만, 네가 떠나가는 건 멈출 수 없었다. 떠나는 널 붙잡을 수 없다면, 따라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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