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2021

by 박종승

사랑에 빠져들 땐 온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그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되고, 사랑한 후에는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얼마간, 어느 정도 아프고 그만큼 성숙해진다. 다음 사랑을 할 때에도 다시 최악이 될 테니 성숙해지겠노라 다짐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율리에(레나테 라인스베)는 의학에 어떤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학창 시절 자신이 잘했던 공부를 인정받기 위해 의대에 진학했다. 자연히 학업에 집중할 수 없었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찾기 위해 학교를 박차고 나온다. 파티에서 만화가 악셀(안데르스 다니엘슨 리)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 계획을 세우는 단계가 되니 각자 원하는 것이 달라 갈등을 빚는다. 프롤로그, 12개의 챕터, 에필로그로 이루어진 구성이 한 인물의 일대기를 읽는 느낌이 들게 하기도 하면서, 인생의 다양한 시기를 담기엔 128분이라는 러닝타임이 그렇게 긴 편도 아니기에 다소 호흡이 빠르다, 호흡이 끊어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실제로 삶이 그렇지 않던가. 언제나 내가 인지하는 것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다음 단계가 성큼 다가와 있곤 한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문화마다 다르겠지만 한국에서 학생들은 매우 흡사한 모양으로 흡사한 단계를 밟아 성인이 된다. 최근엔 의도치 않은 시국 탓에 비슷한 행동양식을 강요받으며 살아왔다. 입시를 위해 공부하고,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연애를 하다 결혼과 가정에 대해 말하는 시기에 율리에가 있다. 딱 무어라 말하기 어려운 다양한 변수들이 작용하며, 다양한 모양으로 삶을 살아갈 터인데, 각자가 상대방에게 주고 싶은, 받고 싶은 사랑의 모양 역시 다양할 것이다. 그런데 보통, 자신이 받고 싶은 사랑의 모양을 상대방에게 주는지도 모르겠다. 역으로,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을 상대방이 주지 않으면 서운해하기도 한다. 각자 나아가기로 한 방향도 다르고, 현재 위치하고 있는 단계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는 와중, 상대방이 나 때문에 작아지는 것 같아서, 내가 일으켜 세워줄 수 없을 것만 같아서 헤어지기도 하고, 상대방 곁에 있으면 내가 작아지는 것만 같아서, 내가 감당할 수가 없어서 헤어지기도 한다. 여태까지 이성적인 것만을 추구하며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감성적인 것이 요구될 수도 있다. 감정에 휩싸여 “왜 갑자기 문학을 좋아하는 척하고 그래?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뭐야? 넌 50살까지 커피나 나르고 싶겠지만, 난 더 많은 걸 원해.”라는 말로 상대방을 찌르기도 한다. 사랑을 시작할 때 온 세상이 멈추는 마법 같은 순간을, 사랑이 갈기갈기 찢겨 버리는 순간을, 인생의 다양한 순간을 포착한 섬세함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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