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In The Afternoon, 1972
<몽소 빵집>(1962)으로 시작했던 “여섯 도덕 이야기(Six contes moraux)”의 마지막 <오후의 사랑>. <오후의 사랑>은 단편 <몽소 빵집>의 것을 넓게 확장시키고,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1969)에서의 침대를, <클레르의 무릎>(1970)에서의 신체적인 욕구를 가져왔던가. “여섯 도덕 이야기”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할 것인지, 혹은 다른 한 여자에게 사랑받을 것인지 선택하는 딜레마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 딜레마는 단순히 누구와 연인 관계를 맺을 것인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불륜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에릭 로메르가 단순하게 그런 행위 자체를 영화화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진 않다.
로메르의 영화 안에서 인물들은 쉬지 않고 말한다. 말하고 또 말한다. 로메르의 영화 안에서 인물들이 하는 말은 로메르가 하고자 하는 말일 것이다. 로메르는 말하고 또 말한다. 이야기도 단순하다. 한 남자가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한다. 단순하지만, 말과 행동이 반복되니 그 안에서 어떤 흐름이 생겨난다. 나는 “도덕”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한참 생각했다. <몽소 빵집>을 볼 때에나 단순하게 도덕이었지, <수잔의 경력>(1963)부터는 도대체 여기서 말하는 도덕이란 게 뭔가? 하는 의문이 계속해서 들었다.
로메르의 “여섯 도덕 이야기”는 계절이 아주 중요했다.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은 반드시 겨울의 영화여야 했고, <클레르의 무릎>은 반드시 여름의 것이어야 했다. <수집가>(1967)는 6월의 영화여야 했다. 이 도덕 이야기가 여섯이 아닌 네 개였다면, 추측컨대 한 평당 하나의 계절을 맡지 않았을까. 그래서 하나의 영화가 하나의 계절을 차지하면, 선택하면 다른 계절은 가질 수 없다. 이 여섯 개의 이야기들의 남자들도 그렇다. 한 여인을 선택하면 다른 여인은 가질 수 없다. 계절이라는 것은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대자연의 질서인데, 영화 속 인물들은 그것을 거역하려 한다. 그것 대신 다른 것을 택하려 한다. 우리나라가 추울 때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갈 수 있듯이, 우리의 삶에서 마주하는 길에 항상 다른 선택지가 있으면, 그리고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로메르는 단순하게 반복되는 이야기들에 그것에 대한 딜레마를 넣는다.
그 딜레마라는 것은 항상 욕망에 의한 것이다. 규칙적인 삶의 반복 속에서 프레데릭(베르나르 베를리)은 아내를 뒤로하고 자유롭게 지내는 클로에(주주)에게 끌린다. 많은 직장인들이 월요일만 되면 피곤하듯 프레데릭은 단조로운 오후의 일상이 그러했다. 그런데 그 오후에 찾아든 클로에라는 인물이 불어넣는 활력은 프레데릭을 움직이기엔 쉬운 것이었다. 프레데릭은 갈등한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내와, 오후를 즐겁게 보낼 클로에 사이에서. “여섯 도덕 이야기”의 다른 남성들도 그랬다. 드라마엔 위기가 있어야 하고, 그들은 어김없이 그들의 욕망대로 행한다. 그리고 후회한다. 땅을 치고 후회한들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수많은 대화들로 물이 엎질러지기까지의 과정을 채워두고 말미의 짧은 순간 묵직한 질문이 날아온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단순한 이야기였지만, 그 끝에 기다리고 있던 질문에 답하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도덕”이라는 단어로 표현되고 있다.
로메르는 “내 의도는 가공되지 않은 사건들을 영화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러한 사건들에서 만드는 내러티브를 영화화하는 것이다. 나는 사실들을 선택하고 체계화하는 스토리에 관심을 기울이지, 사건의 개요 자체에는 개의치 않는다. 이 이야기들이 ‘모럴’하다고 불리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육체적인 행위가 거의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모든 일은 내레이터의 머릿속에서 일어난다.”고 했다. 어떤 선택을 앞두고 겪게 되는 고민을 그 많은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고, 그 과정에서 도덕적이고 감정적인 서스펜스가 형성된다. 일곱 편의 “희극과 잠언(Comédies et proverbes)”은 어떤 이야기들일까.
#오후의사랑 #베르나르베를리 #주주 #에릭로메르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