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ER OF 85, 2020
1985년 프랑스의 한 해변에서 펼쳐졌던 알렉스(펠릭스 르페브르)와 다비드(벤자민 부아쟁)의 이야기는 1983년 이탈리아의 한 마을에서 펼쳐졌던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와 올리버(아미 해머)의 이야기와 퍽 닮아있다. 그러나 닮아있지, 같은 건 아니다. 프랑스와 오종과 루카 구아다니노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감독이다. “난 제정신이 아니다. 진작 깨달았어야 했다. 죽음이 취미라니, 내 관심 분야는 죽음 그 자체다.”라고 말하는 알렉스의 카메라 응시. 심지어 그는 “안 듣는 게 나을” 것이라 말한다. 영화는 알렉스의 플래시백으로 시작한다. 심지어 듣지 않는 것을 권고했는데 신나는 음악에 반짝이는 해변의 평화로운 모습이 펼쳐진다. 원래 추락했을 때의 충격은 더 높이 올라갈수록 커지는 법. 오종이 이번엔 아주 높은 곳까지 끌어올렸다가 떨어트리겠다 싶었다.
알렉스는 친구의 요트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폭풍우를 맞게 된다. 당황한 나머지 배가 뒤집히는 위기에 처하고 마는데, “칼립소”라고 새겨진 요트를 탄 다비드가 나타나 구해준다. 영화를 볼 때는 ‘칼립소가 뭐였더라?’라는 생각에 그쳤는데, 끝나고 찾아보니 감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배를 타고 귀항하던 오디세우스 역시 알렉스와 같은 위기에 처하고, 칼립소가 나타나 그를 구한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사랑하여 함께하자고 권하나 오디세우스는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도 고향으로 돌아갈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제우스가 오디세우스의 외할아버지인 헤르메스에게 시켜 그를 도와주라 한다. 칼립소는 제우스의 명을 받아 뗏목을 만들어 오디세우스에게 떠나도록 해준다.
오종은 둘의 로맨스에 관심을 두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이미지로써 보여주는 데에는 열중이지 않다.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장면은 더없이 노골적이었으나, 둘이 영화를 볼 때 그저 같이 앉아있기만 했지 어떠한 접촉도 없었다. 다락방에 있던 엘리오를 마주한 올리버의 행동 같은 것은 없다. 알렉스가 말하길 “내 평생 가장 아름다운 밤이었다”라고 하는 그때의 이미지를 문을 닫아버리곤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할 때 알렉스는 다비드가 죽을 것임을 예고했다. 영화의 2/3가 지난 시점에서, 다비드는 퇴장한다.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도 있을 마지막 1/3을 남겨두고 너무 이른 퇴장이었다. 루카 구아다니노였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비드 고르망 등장. 18세”, “케이트 등장, 21세” 같은 자막은 필요 없었을 테다. 천천히, 그리고 세밀하게 그 캐릭터에 대해 설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종은 과감히 생략한다. 그리고 여기서 관객에게 하나의 설정을 더 소개한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단순한 플래시백이 아닌, 알렉스가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기반으로 쓴 소설이라는 것이다. 어려운 지점은, 알렉스에게 글을 쓰라고 권유한 르페브르(멜빌 푸포)는 문학 전공이었고 알렉스가 쓰는 건 소설이지만, 알렉스가 교도소 수감을 피하기 위해 써야만 하는 건 소설이 아닌 팩트에 기반한 사건 경위서다. 소설인지 경위서인지, 알렉스의 감정이 담긴 왜곡된 이미지인지 실제로 알렉스가 목격한 이미지인지 구별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알렉스의 담당관은 사실에 기반해 쓰라고 하지만, 르페브르는 “사실에 가깝게 썼니?”라 묻는다.
알렉스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을 케이트(필리피네 벨지)에게만 모두 말한다. 그러나 그 장면은 둘이 대화를 한다는 것만 알 수 있는, 오디오는 배제된 이미지였다. 말하는 알렉스의 표정이나 듣는 케이트의 표정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케이트는 알렉스가 사랑한 건 껍데기 안에 네가 생각한 이미지를 넣은, 지어낸 사람이라 말한다. 오종이 말하고 싶은 건 이것이었을까. 다비드는 알렉스를 사랑했을까. 그런 그가 동성인 르페브르에게도, 케이트에게도, 거리에서 만난 술 취한 사내에게도 추파를 던졌을까. 감정이 헤픈 사람인 걸까. 아니, 다시 앞서 언급했던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장면. 다비드와 알렉스 사이에 거울 수납장이 있다. 그들의 얼굴이 비춰 네 개의 얼굴이 보인다. 알렉스가 다비드라는 인물에게 투영한 이미지는 무엇이었을까. 그런 다비드는 알렉스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알렉스는 다비드와의 다툼 이후, 그가 마지막으로 다비드와 함께했던 순간에 거울을 깨버린다. 클럽씬에선 소피 마르소 주연의 <라붐>(1980)의 유명한 장면을 차용됐다. <라붐>은 보지 않았더라도 이 장면만을 아는 이도 많을 것이다. 다비드가 알렉스에게 헤드셋을 씌워준다. Rod Stewart의 Saling이 나온다. 매튜(알렉상드르 스털링)가 빅(소피 마르소)에게 들려주는 노래는 Reality였다. 빅이 매튜를 만나 너무나 꿈같은 상황이 현실임을 말하는 가슴 설레는 노래였다면, 다비드는 알렉스에게 나의 고향으로, 너에게 닿기 위해,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를 저어 간다는 노래를 들려준다. <라붐>의 것과는 다르게 이 장면은 둘의 한계를 암시하는 것 같다. 둘의 마지막을 예고하는 것만 같아 왠지 모르게 서글퍼졌다.
다시 한번 알렉스가 이 노래를 듣게 됐을 때,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흙먼지 날리는 도로를 달리다 멈춰 서선 춤보다는 무술에 가까운, 내면에서 솟구치는 무엇인가를 분출해내는 듯한 <광란의 사랑>(1990)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까지 했다. 알렉스는 다비드가 왜 이런 괴상한 약속을 제안했는지 끝끝내 알지 못한다. 알렉스는 다비드의 의도가, 다비드의 생각이, 다비드라는 사람 자체가 궁금하다. 알고 싶다. 심지어는 그가 되고 싶다.
알렉스는 죽음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르페브르와 진로상담을 할 때에 죽음이라는 것 자체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다비드의 집에 처음 갔을 때, 욕조에 누워 죽음을 생각한다. 그는 “욕조를 보면 관이 떠오”른다고 했다. 다비드의 어머니가 친자식처럼 손수 옷을 벗겨주고 목욕을 하게 해 주고, 다비드의 옷을 입고, 그와 함께 밥을 먹으며, 한 오토바이를 타고, 같은 노래를 듣고, 심지어 그와 함께 일을 하며 다비드라는 존재 자체를 공유하고자 했다. 어쩌면 다비드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올리버는 엘리오의 부모님과의 연대나 마르치아와의 관계까지 공유하진 않았다. 그러나 알렉스는 어머니와 케이트, 그리고 술에 취해 있던 사내까지 공유하게 된다. 그 모든 것을 겪는 일련의 과정이 단순히 어린 날 연인에게 갖는 감정으로 치부되기엔 너무 큰 것이 아닐까.
다시, 알렉스에게 글을 써보라고 권하는 이는 르페브르다. 알렉스를 연기한 배우는 펠릭스 르페브르다. 르페브르라는 이름이 같은 건 우연일까. 오종이 캐릭터의 네이밍에 별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홍상수가 그냥 지은 이름 춘수, 명수, 상원, 완수, 경수, 영환, 그리고 영희, 만희, 아름, 아름, 상희, 감희인 것처럼. 뜨거웠던 6주 이후 알렉스가 얻은 건 그가 간절히 바랐던 다비드의 사진 한 장 대신 요트 칼립소였다. “그를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란 말을 이해한 만큼 사랑했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에게 다가갔고, 그에게 공감했고, 나아가 그가 되었을까. 1985년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고, 얼마나 멀리 왔을까. 굳이 신디팝과 레트로 감성을 끌어왔으나 2020년에도 그 자리에 머물고 있음은 아닐까. 퇴보했다가 아닌, 그때의 다비드가 가졌던 생각과 감정,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음은 아닐까. 혹은 그것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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