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ine At The Beach,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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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에 가득 차서(그러지 않고 싶지만) 때때로 어떤 감독의 영화에 대한 취향이 심리테스트나 MBTI 유형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다른 누구를 언급하기보단, 이 에릭 로메르 역시 그런 쪽에 속하는 것 같다. 나는 단지 누군가가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호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그와 잘 맞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2019)에서 찬실의 대사처럼, 오즈와 놀란을 두고 했던 물음처럼 말이다. 심지어는 아드리앙과 아이데, 혹은 모드에 대한 물음으로 그리고 델핀에 대한 물음으로 서로가 마음속 깊은 곳에 지니고 있는 상처를 공유하게 될지도 모를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를 극장에서 봤을 때, 평소 같았으면 2~3명이나 있을 법한 상영관에 생각보다 관객이 많음에 처음 놀랐고, 그들 중 대부분이 영화를 보며 소리 내어 크게 웃음에 다시 한번 놀랐었다. 물론 춘수(정재영)가 희정(김민희) 앞에서 떠들어대는 말들이 웃기긴 하지만, 나는 그들이 내 치부를 두고 비웃는 것 같았다. 그 후로 나는 어렸을 적부터 친한 고인 한 명을 제외하곤 누구와도 홍상수의 영화를 함께 보지 못했다. 에릭 로메르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희극과 잠언” 중 두 번째 영화인 <아름다운 결혼>(1982)에서 사빈느(베아트리스 로망)가 자신이 추구하는 결혼 상대의 이상향에 대한 고집을 피울 때, <해변의 폴린느>에서 앙리(페오도르 아킨)가 자신의 치부를 그럴싸한 구라로 감쌀 때 나는 방 안에 혼자 있었음에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그런 재미가 또 쏠쏠하다. 남에겐 내보이고 싶지 않은 나의 어떤 구석이 영화 속에서 보여 ‘하하하’ 웃을 수 있는 것도 말이다. 극장에서 남들과 다른 의도지만 그 흐름에 따라 웃거나, 혹은 나 혼자만 웃지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할 만큼 로메르 할아버지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것 같은 맛에 나는 시리즈의 다음 영화인 <만월의 밤>(1984)의 세계로 다시 한번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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