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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승 Jan 25. 2021

<비포 선셋>

Before Sunset, 2004

그때 당시엔 꽤나 몰입해서 썼는데단지 종이와 연필만 눈에 보였는데지나고 보니 너무 생각이 짧았던 것 같기도 하다어떤 면에선 내가 갖고 있는 너에 대한 기억들이 조금은 미화된 것일지도 모른다지나고 나서야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을 못하겠느냐만정작 나의 상황과나의 생각과나의 감정을 쏟아내는 데에만 열중이었지 네가 이것들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할지에 대해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많은 이들이 너와 나의 상황을 알지 못했으나 너에게서든누구에게서든 전해 들은 이가 이것들을 보고 뭐라고 했을 지에 대해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그것들에 대한 생각은 배제됐던 것 같다내게 주어진 짧은 시간들그리고 조금은 더 길었던 어떤 밤은 아직도 전부 다 기억이 선명하다그런데 그것을 쓸 때에 대해서는 뚜렷하지 않다않지만어느 정도 인정할 것은 네가 볼 것이라고그리고 우리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라도 만날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때 당시엔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해서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줄 것처럼 사랑했는지 모르겠다그래누구나 저마다의 특별함은 있다어쩌면 사소할 수도 있는 고유한 특별함은 다른 사람이 채워주지 못하는 것도 있다그러나 영화와는 다르게내게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돌아가지 않겠다어리석은 꿈은 애초에 꾸지 않겠다너와는 다른 생각에 대한너와는 다른 이에 대한 존중이 없었던 너에게는그때 내 모든 걸 쏟아부어서 내겐 남은 게 없다네가 다시 문자를 해도전화를 해도 답하지 않았던 건 이미 너와 나의 날은 저물었기 때문이었다가끔은 그때 썼던 글들을 보며 내가 이런 감정을 가졌었구나 생각해보곤 한다그렇게 끝나버린 뒤 네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훗날 우연히 만나 웃으며 대화를 하게 되더라도우리 둘 중 누군가가 연인이 있어서 운명이 아니었다 따위의 핑계는 대지 않겠다우린 너무 다른 사람이었고맞지 않았다.


#비포선셋 #에단호크 #줄리델피 #리처드링클레이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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