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Sunset, 2004
그때 당시엔 꽤나 몰입해서 썼는데, 단지 종이와 연필만 눈에 보였는데, 지나고 보니 너무 생각이 짧았던 것 같기도 하다. 어떤 면에선 내가 갖고 있는 너에 대한 기억들이 조금은 미화된 것일지도 모른다. 지나고 나서야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을 못하겠느냐만, 정작 나의 상황과, 나의 생각과, 나의 감정을 쏟아내는 데에만 열중이었지 네가 이것들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할지에 대해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많은 이들이 너와 나의 상황을 알지 못했으나 너에게서든, 누구에게서든 전해 들은 이가 이것들을 보고 뭐라고 했을 지에 대해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그것들에 대한 생각은 배제됐던 것 같다. 내게 주어진 짧은 시간들, 그리고 조금은 더 길었던 어떤 밤은 아직도 전부 다 기억이 선명하다. 그런데 그것을 쓸 때에 대해서는 뚜렷하지 않다. 않지만,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은 네가 볼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라도 만날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때 당시엔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해서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줄 것처럼 사랑했는지 모르겠다. 그래. 누구나 저마다의 특별함은 있다. 어쩌면 사소할 수도 있는 고유한 특별함은 다른 사람이 채워주지 못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영화와는 다르게, 내게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돌아가지 않겠다. 어리석은 꿈은 애초에 꾸지 않겠다. 너와는 다른 생각에 대한, 너와는 다른 이에 대한 존중이 없었던 너에게는. 그때 내 모든 걸 쏟아부어서 내겐 남은 게 없다. 네가 다시 문자를 해도, 전화를 해도 답하지 않았던 건 이미 너와 나의 날은 저물었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그때 썼던 글들을 보며 내가 이런 감정을 가졌었구나 생각해보곤 한다. 그렇게 끝나버린 뒤 네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훗날 우연히 만나 웃으며 대화를 하게 되더라도, 우리 둘 중 누군가가 연인이 있어서 운명이 아니었다 따위의 핑계는 대지 않겠다. 우린 너무 다른 사람이었고, 맞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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