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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생물학자 천종식 Oct 01. 2018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혹시 강남 아파트 여러 채를 가진 사촌이 있어 장에 탈이 났다면...

혹시 주변에 최근 폭등한 강남의 아파트 여러 채를 가진 사촌이 있어, 장에 탈이 나진 않았는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와 비슷한 속담은 거의 모든 나라에 있다고 한다. 뇌와 장은 이렇듯 모든 나라에서 끈끈하게 연결되어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뇌와 장 사이를 조종하는 그동안 미처 우리가 몰랐던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한다고 한다. 오늘은 그 보이지 않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 몸속엔 많은 종류의 호르몬이 있어 지금의 나의 기분을 조절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이 바로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이다. 쾌락과 관련된 도파민과 같은 호르몬과 달리, 세로토닌은 중독성이 없다. 행복감 이외에도 식욕, 수면 등 우리 삶의 여러 가지 측면에서 좋은 기운을 북돋아 주는 대표적인 호르몬이 바로 세로토닌이다.


재미있는 것은 당연히 뇌에서 주로 있어야 할 것 같은 이 호르몬이 주로 대장에서 발견된다는 점이다. 우리 몸 안의 세로토닌 중 최소한 90% 이상을 뇌가 아닌 장 세포가 만들고 보관한다. 물론 뇌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종류이다. 대장에서 만들어 지는 세로토닌은 뇌로 들어가지는 않지만, 전신을 돌며 소화를 돕고, 혈당 조절을 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장 세포의 세로토닌 만들기는 장내 미생물과 관계가 깊다.


먼저, 장내 미생물이 전혀 없는 어마어마하게 깨끗한 무균 생쥐는 장내 미생물이 있는 더러운 생쥐보다 60%나 적게 세로토닌을 만든다고 한다. 물론 무균쥐가 보통쥐보다 60% 덜 행복한 건 아니다. 비슷한 무균 인간이 우리 주변에 없어 증명은 어렵지만, 우리의 행복 호르몬의 반 이상은 장내 미생물의 지령 또는 협조가 필요한 듯하다. 이후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분명 장내 미생물 중 일부가 장 세포에게 세로토닌을 더 만들라고 명령을 내리는 건 분명한 것 같다. 그렇게 장에서 만들어진 행복 호르몬은 피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간다. 그럼 도대체 그 기특한 미생물이 누구냐고? 물론 이걸 알아내려고 전 세계 과학자들이 혈안이 되어 있다. 아마도 몇 가지 세균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아닐 것이고, 수십 종의 세균이 협력하는 일종의 컨소시엄의 형태가 될 것이다. 물론 이 컨소시엄의 구성도 민족마다, 또 사람마다 다 다를 가능성이 크다.


장내 미생물이 우리의 뇌를 조절하는 방법은 지금까지 발견된 것만 네 가지이다. 먼저 장내 미생물이 뇌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을 직접 만든다. 이 물질은 장에서 흡수되어, 피를 타고 뇌로 이동해서 우리의 기분까지 조절한다. 두 번째로 우리 대장 세포에게 세로토닌 같은 호르몬을 만들도록 지시한다. 세 번째로 뇌와 초고속의 신경망으로 연결된 대장의 신경 세포에게 바로 신호를 준다. 이 방식을 통하면 뇌로 즉시 장내 미생물의 지령이 전달된다. 마지막은 주로 자폐, 치매 등 뇌질환과 연관이 되어 있는데, 장내 미생물이 우리 면역계에 악영향을 주는 경우이다. 물론 또 다른 방식도 있겠지만, 이 네 가지에 대해서도 현대과학이 이해하는 부분은 아주 적다. 장내 미생물과 인간의 장, 뇌의 연결고리는 이제 막 우리가 이해하기 시작했고, 인간과 수만 종의 세균이 이루어낸 수천만 년 진화의 산물이니 오죽 복잡하겠는가?


“잘 먹어야 행복하다”는 이 명제는 장내 미생물 즉 마이크로바이옴이 끼어들면서, 더 확실한 진리가 된다. 다만 내가 소화해서 흡수하는 영양분뿐만 아니라, 장내 미생물이 먹을거리도 생각해줘야 한다. 여기엔 일단 쿠키나 케이크, 청량음료처럼 당장 기분이 좋아지는 음식은 해당 사항이 아니다. 즐거운 명절에 가공식품은 되도록 피하고 고기도 좀 적게 먹고, 채소나 나물 같은 장내 미생물 먹이도 꼭 챙겨 드시길 바란다! 강남 아파트 여러 채 가진 사촌이 있다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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