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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이민자 Feb 05. 2019

방송국을 떠나 느끼는 것.

제작사에서의 2년을 넘기고.

방송국 생활 11년 1개월을 마치고,

(사이에 학교 두 학기도 끼우면 도합 12년)

제작사 생활 2년을 넘기고서도 가장 적응이 안 되는 차이 두 가지.


예뻐할 후배가 없다는 것.

같이 뭐라 볼멘 소리를 할 동료도 대상도 딱히 없다는 것.


회사 공채나 입학 동기들처럼

같은 직군이 같은 조건에 비슷비슷한 기대를 가지고

올망졸망 시작한 사람들이 아니다.

각기 다른 조건에 다른 기대를 가지고

외따로 자기 작업을 하는 형태로 모인 사람들이니

일어나는 일이다.


단출해진 인간관계에 어깨가 더 가볍고,

알고 보면 무한경쟁인 것도 당연한 것인데,

여전히 어색한 건 언제나 은연 중에 선후배 동기의 존재를 상정해온 탓이다.


선배의 눈으로 볼 때 경우에 어긋나지 않을 것.

후배의 눈으로 볼 때 본보기가 되고 가르침을 줄 것.

동료들에게 있어 이기적이지 않을 것.

세 가지 규율을 마음 속에 갖고 살았다.


물론 규율을 늘 잘 지킨 건 아니었다.

스스로 잘 지켰다고 생각했을 때도 꼭 조직의 인정과 무리의 사랑을 받았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조직 논리, 무리의 윤리. 그런 것들을 중히 여겼다.

때로는 결국 평범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에 불과한 것 같아 허탈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나마 나를 만들어 온 건 그 논리와 윤리이기도 했다.


시선과 규율이 피곤하기만 한 건 아니다.

행동 준칙이 있으니까 생각하는 피로를 덜어주기도 한다.

특정한 시선과 규율이 없이 결과만을 본다는 건

결국 무한대의 시선과 규율에 노출된다는 걸 뜻한다.

무한대의 시선과 규율은 어디선가는 서로 모순을 일으킬 것이니

어떤 행위도 결국 어디선가는 욕 먹을 짓이다.

그게 좀 피로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넓게 보면 내가 품어왔던 규율이

사람 사는 보편적인 방식과 다를 게 없다.

‘조직’과 ‘무리’의 범위를 넓게 풀어버린 것일 뿐.


결국

어떤 직업인이 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어떤 기성세대가 될 것인가에 수렴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자유만큼의 구속과

구속만큼의 자유를

삶과 직업에서 운영하는 문제이기도 하고.


떠남을 낭만적으로 미화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행복과 불행의 감정을 나눠본다면 안타깝게도

방송국에서 불행했던 시간의 비율이 많이 높았다.

행복과 기쁨의 시간이 훨씬 선명하게 기억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같이 나누던, 혹은 홀로 삭히던,

기쁨과 슬픔, 유대와 고독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선

자유만큼의 구속 안에서 새롭게 일하고 있다.


삶의 한 복판에서,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2019년 음력 설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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