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둥이(?) 손주
또 비상이 걸렸다.
셋째 손주가 예정일보다 보름이나 일찍 세상에 태어났다.
새벽 3시경 양수가 터져 긴급히 병원으로 갔다는 연락이 왔다.
5시경 응급수술에 들어가 여명이 틀 무렵인 5시 43분에 수술이 끝났다고 한다.
태명이 반짝이인 손주가 무사히 세상에 머리를 내민 것이다.
병원 관계자들로부터 들리는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코로나감염의 간접적인 영향으로 조산을 한 듯했다.
임신 중에 며느리와 아들, 손자까지 가족 셋 모두 코로나에 걸려 큰 홍역을 치렀었다.
그 당시 며느리가 특히 고생이 심했다.
임신 중이라 약을 복용할 수 없어 거의 맨 몸으로 코로나 증상을 견뎌냈다.
아내와 난 멀리서 침묵으로 투병을 응원했다.
조산으로 인해 태어난 손주의 몸무게는 2.75킬로그램.
정상분만에 비해 체중이 조금 부족했다.
걱정은 되었지만 산모와 아기 둘 다 무탈하다는 소식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당초 예정일인 11월 말경 손주 출산을 앞두고 아내와 난 일찌감치 워밍업을 하고 있었다.
지인들과 만남등 모든 일정을 출산이전으로 조정했다.
출산 후 백일동안은 한 살 터울인 손주 둘을 돌보는 것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것이 맞벌이를 하는 아들 내외를 위해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린이집에서 둘째를 받아 줄 수 있는 100일까지는 손주들 돌봄을 가족이 직접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주중에 나는 양평, 아내는 아들 집에 있고 금요일 저녁에 같이 양평집에 오기로 했다.
둘째 손주와 일 년 터울밖에 나지 않는 연년생인 남자 아기 둘을 아내 혼자 감당하기가 간단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미 벌어진 일인 것을.
딸이 회사에 복직한 후 아내가 외손녀를 돌 본 것처럼 4개월 동안 나의 주중 독거생활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출산 당일 저녁 간단히 짐을 챙겨 저녁 늦게 부랴부랴 일산 아들집으로 달려갔다.
처음부터 아내 혼자 감당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 주 동안은 나도 같이 일산에 머물기로 했다.
집에 도착하자 새벽부터 정신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녔을 아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갑자기 "내 아들이 어느새 부모가 다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빙긋 미소는 짓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첫 손주는 방에서 이미 잠들어 있었다.
전후사정과 다음 날부터 해야 할 일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손주 아침법 먹이기, 어린이 집 등하원, 저녁 준비, 빨래하기, 식사 챙기기등 할 일이 태산이었다.
출산 이틀째, 본격적인 육아 돌봄이 시작되었다.
아들과 함께 손주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며 원장님께 인사를 했다.
당분간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등하원을 시킬 것이라고.
수술 직후라 아직 거동이 편치 않은 며느리를 수발하는 것은 아들의 몫이었다.
하루 만에 아내와 아들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새 생명이 탄생했다는 기쁨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아침에 깨어서 곁에 엄마, 아빠가 없음에도 울지 않는 손주를 보니 대견하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출산 삼일째, 둘째 손주를 맞이하기 위해 집안 청소를 시작했다.
유리창과 창틀을 닦고 집안 구석구석 오랫동안 쌓였던 먼지를 말끔히 털어 냈다.
집에 돌아오기까지 아직 3주가 남아 있지만 미리 청소를 하기로 했다.
아내 혼자 하기 쉽지 않은 이유가 컸지만 손주를 위한 할아버지의 작은 선물이라는 의미도 있었다.
산모나 가족들이 서로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은 산후조리원에서 퇴원하기 전까지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후부터 잠시도 쉬기 어려운 본격적인 육아전쟁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오후에는 둘째 손주와 첫 대면을 했다.
신생아실에 누워 있는 모습을 외부에서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았다.
창 가까이에 손주를 포함해 세명의 아이가 있었다.
신생아라 체구도 작고 얼굴도 쪼그만 해 그놈이 그놈 같았지만 내 손주가 왠지 더 예뻐 보이는 것은 모든 할아버지의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아내와 내가 벌써 세명의 손주를 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아직은 손주들 뒷바라지를 감당할 여력이 남아 있는 듯 해 다행이지만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아들에게 조심스레 넌지시 말했다.
셋째는 생각지도 말라고!!
아들도 동의를 하는 듯해 굳게 믿어 보기로 했다.
손주들의 재롱과 예쁜 모습들만 보면서 살 수는 없는 걸까?
헛된 망상인걸 알면서도 언감생심 꿈을 꿔 본다.
지난 삼일이 힘들었는지 아내가 숨을 거칠게 몰아 쉬며 잠을 자고 있다.
반짝이가 마지막 황혼육아이길 기도하며 그만 잠자리에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