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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구 Aug 14. 2018

 조금 다른 요가 이야기 #1

요가는 여자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에게 1/2

이 글은 요가 수련의 장점이나 효능, 혹은 어려운 자세에 대한 팁에 관한 실용적인 글이 아니다. 요가를 하는 것이 얼마나 큰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고 영혼을 자유롭게 해주는지에 대한 추상적인 글도 아니다. 또한, 요가를 짧지 않은 시간 해 온 사람으로서, 남성이 요가를 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하기 위한 글도 전혀 아니다. 이 글은, 특정한 방식으로 요가를 상상하고 그것을 매우 성차별적인 여성관과 연결시키는 소수의 남성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이다. 본인들이 어떤 운동을 할지, 혹은 운동이라는 것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나와 관계없는 문제지만, 그래도 그들이 잘못된 남성관/여성관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본인을 위해서나, 세상을 위해서나.


내가 요가를 시작하게 된 것은 2008년이다. 그러고 보면 10년도 넘는 시간이 흘렀다. 매일 부지런히 요가를 해온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놓지 않고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수련을 이어 왔고, 육체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경험을 쌓아 왔다. 대단한 고수가 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희한한 동작들을 소화해내는 수준에 도달한 것은 전혀 아니지만, 2008년 전 내 몸의 전반적인 상태(유연성이라던가...)를 아는 사람이라면 믿기 어려울 정도의 변화를 이뤄왔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헴.


요가를 취미로 삼는 것이 조깅만큼이나 흔한 일이 되었고 요가원들에서 남성 강사를 마주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된 지 오래인 2018년이지만, 여전히 많은 남성들이 요가에 대한 잘못된 믿음들을 마치 상식인 것처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꽤나 자주 들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예들 중 하나로는, '요가는 여성들이 주로 하는 운동', '요가는 정적인 운동'등을 들 수 있겠다. 때문에 남성들은 흔히 '여성들이 가득한 요가원에 가기 좀 꺼려진다'라던가 '나는 조금 더 활동적인 운동을 좋아한다'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물론 운동을 하는 것, 그리고 다양한 활동 중 요가라는 종목을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들의 취향과 선택에 달린 문제이긴 하겠다. 그럼에도, 요가를 취미로 하는 남자가 여전히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는 사실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한다.


"요가는 여성들이 하는 운동"이라는 표현의 이면에는 두 가지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매우 제한된 상상력이고, 다른 하나는 본인의 육체적 능력이 여성보다 기본적으로 우월하다는 사고방식이다. 이 글에서는 우선 첫 번째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남성인 당신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자동적으로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가져오는 생각해보지 않은 결과들에 대해.


요가가 주로 여성들이 하는 운동이고 요가원에는 여성들이 많다는 사실이 왜 '나'라는 사람이 해당 운동을 선택/시도하는데 왜 장애물이 되는 걸까? 초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뭐든 처음 시작할 때는 모두 초보이다. 주변 사람들 - 남성 친구들, 혹은 요가원의 다른 여성들 - 의 시선이 무섭고 부끄러워서? 이건 결국 '여성들이 많이 해서 여성들이 많이 한다'는 동어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 혹시, 타인의 시선이 문제가 아니라, 당신 본인의 '타인에 대한' 시선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가? 다시 말해, '요가복'을 입고 있는 여성들을 마주 했을 때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어떻게 해야 '요가복을 입은 여성들' 사이에서 평정을 유지하는 척할 수 있을지 모르겠기 때문이 아닌지.

눈 앞에서 이런 장면들이 펼쳐질거라는 생각만 해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건 당신의 머릿 속에 있는 '여성의 몸 = 성적 대상'이라는, 매우 잘못된 등식 때문이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어느 곳에서든 무슨 일을 하고 있든, 주변 사람들이 남자건 여자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행동들을 하고 있건, 기본적으로 당신은 그저 스스로에게 집중해 당신이 하는/하고자 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 따라서 요가원에서는 선생의 지도에 따라 요가를 열심히 하면 된다. 여성으로 가득하든, 그 여성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자세들을 취하고 있든, 당신이 어찌할 바를 모를 일이 전혀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은데, 왜냐하면 당신은, 상당히 높은 확률로, 여성의 '몸'을 성적인 대상으로 밖에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상대가 당신보다 터무니없이 어리든, 또래이든 간에.


아내에게 들은 (아, 얘기하지 않았던가. 내 아내는 2000년대 초중반부터 요가계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평범한 스타일의 중년 남자 회원 한 명이 새로 등록을 하셨단다. 요가원 입장에선 비교적 낯선 타입의 손님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크게 독특하거나 한 것도 아닌지라 별생각 없었다고 한다. 물론 처음 해보는 운동인지라 수업을 따라 하는데 애를 먹는 모습이었지만, 초보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고. 그런데 문제는 수업의 마무리 단계에서 발생했다. 모든 회원들이 매트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 편안한 분위기(사바사나)에서 그 남성 회원의 부풀어 오른 바지가 아내의 시선을 강타했단다. 요가 수업 동안 받은 시각적 자극이 지나쳤었는지, 쉬라고 할 때 쉬지는 않고 눈감고 누워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는지. 단지 바지 정리를 잘 안 해서 조금 구겨져 있는 상태를 보고 발기한 모습으로 아내가 착각한 것 아니냐고? 오, 그건 아니다. 아무리 심하게 구겨진 바지라도 보통은 누운 자세에서 그리 눈에 띄게 우뚝 솟아있지는 않을뿐더러, 수업이 끝난 후 바람과 같이 사라진 후 두 번 다시 요가원에 나타나지 않으셨다고 하니. 게다가 그녀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게 처음 있었던 일도 아니고,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고. '서서하는 동작들은 어떻게 적당히 따라하는 척 하는데, 자리에 누우라고 하면 갑자기 눕지를 못하는 거지, 티가 확 나니까'란다.


많은 남성들이 여성의 몸을 잠재적 성적 대상으로 밖에 인식하지 못해 운동을 배우고 가르치는데 문제가 생기는 것이 비단 요가에서만 발생하는 문제는 아닌 듯하다. 학생/선수들을 상대로 악질적인 방식의 성폭력을 일삼는 적지 않은 수의 체육계 관련 성범죄자들의 경우들에 대해선 여기서 굳이 다시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한편으로는 잘못된 방식의 '여성의 몸에 대한 조심', 혹은 '회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예를 들어 Goffman은, 가라데를 배우기 위해 도장을 찾았던 한 20대 여성의 경험담을 소개한다(굳이 나이를 명시하는 이유는, 이 경험담에서 '나이'라는 요소가 꽤나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가라데 초보인 여성이 참여했던 수업의 사범은 젊은 남성이었다고 한다. 처음 한동안은 별생각 없이 수업을 받던 이 여성은 몇 달 후 조금 이상한 점을 발견했는데, 사범이 자신의 몸에 전혀 손을 대지 않더라는 것. 반듯한 자세를 중요하게 여기는 무도 수업 관계로 말과 시범뿐 아니라 자세를 바로잡아 주기 위한 직접적 지도 - 즉, 사범과 제자의 신체적 접촉 - 가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이 젊은 남성 사범은 자신의 몸에 어떠한 접촉도 하지 않더란다. 처음에는 자신이 오해를 하고 있거나, 본인의 레벨이 아직 더 많은 지도를 받을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자기보다 훨씬 나중에 시작한 남성 수련생들, 그리고 훨씬 어린 여자 아이들은 그 사범에게 지극히 '정상적'으로 지도를 받고 있는 것을 목격한 후 무엇이 원인인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 젊은 남성 사범이 '젊은 여성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는 것을. 다시 말해, 그 남성 사범에게 젊은 여성의 몸은 '잠재적 성적 대상'일뿐, '가르쳐야 하는 제자의 신체'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을.


'여성 회원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한 사범의 배려였다'는 변명은 결코 핑계가 될 수 없다. 타인을 성적 대상으로 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사범으로 인해 이 여성은 돈과 시간을 낭비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몸이 대상화 되는 불쾌한 경험을 '또' 한 번 겪어야 했다. 다른 한편으로 이 '남성'은 잠재적 성범죄자로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일 확률이 낮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손해를 입게 되는 것은 비뚤어진 세계관을 가진 저 남성 사범이 아니라 일반적인 여성들, 그리고 저 남자와 다른 '정상적'인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남성들이다.


다시 요가에 대한 '당신의 취향' 이야기로 돌아가자. 몇 차례 반복하지만, 당신이 운동을 하든 말든, 그 중에서 요가를 하든 말든은 나와 하등 상관이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혹시라도, '요가는 여성들이 주로 하는 활동이니까'라는 생각이, 혹은 요가라는 단어에 조건 반사적으로 눈 앞을 스치는 늘씬하고 예쁜 요가복 모델들의 이미지가 당신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 놓을 필요 없는 당신 혼자만의 생각이니 정말 솔직하게 한 번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고 생각된다면, 그건 당신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성의 몸을 대상화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물론 당신과 같은 사람이 당신 혼자만은 아니지만 (불행히도 매우 많다), 그런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당신의 비뚫어진 여성관을 '정상'인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 사회에 여성관에 결함이 있는 남성이 아주 많다는 불행한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머리가 아닌 아랫도리로 생각하는 사람을 가급적 멀리하고, 좋은 글을 많이 읽고, 여성들의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일 것을 당신에게 권한다.


여성의 몸은 성과 모성의 관점에서만 결정지워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여성들이 '노출이 심한' 요가복을 입고 운동을 하는 것이 당신의 욕망을 자극하기 위한 것도, 그녀들이 요가 수련을 하는 것이 당신에게 잘 보이기 위한 예쁜 몸매를 만들기 위해서도 아니다. 물론 당신이 '여성들이 많이 있는 곳'이라는 이유로 요가원을 꺼려하는 것이 단순히 '부끄러워서'라던가 여성들에게 그녀들만의 공간을 보장해 주고자 하는 젠틀함에서 비롯된 것도 전혀 아니다. '여자만 북적이는 곳인데 부끄러워서'라고 말할 때 당신의 진짜 속내는 무엇인지 한 번쯤 깊고 솔직하게 생각해 보길. 스스로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이자 유일한 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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