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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구 Aug 20. 2018

조금 다른 요가 이야기 #2

요가는 여자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에게 2/2

'요가는 여성들이 하는 운동이지'라는 말의 이면에 담겨 있는 두 번째 의미는, '그건 솔직히 운동이라고 하기 어렵지. 폼나 보이는 자세 두어 개 잡아보고 자리에 눈 감고 앉아 명상 좀 하는 걸 뭘 굳이 운동이라고'라 생각한다. 자신은 그런 생각 해본 적 결코 없다고 입에서 불 뿜으며 억울해하는 척 말자.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거라 했다.


요가원에는 생각보다는 많은 남성들이 온다. 그중에는 물론 나이가 지긋한 사람도, 젊은 사람도 있고, 평소에 운동을 꽤 해온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운동이란 걸 이제 시작하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요가를 해온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요가를 어느 정도 해 본 사람도 있고, 처음 접해보는 사람도 있다. 선생이 시키는 모든 동작을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하면 집에 보내주지 않는다거나 다음 수업에 안 받아 준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학기별로 시험을 봐서 진급이나 유급이 결정되는 것도 아니니, 자기가 원하는 만큼 가능한 만큼만 하면 되니, 무리해서 억지로 할 필요도 없고 옆사람보다 잘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뭐든 만족할 만큼 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유난히, 요가 수업에서의 본인의 상태/수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짜증과 분노, 좌절 등을 표출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의외로, 혹은 당연하게도, '아마도 이런저런 운동을 어느 정도는 해 왔고 스스로의 육체적 조건에 꽤나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온 남성들'이다. 맘 같이 움직이지 않는 스스로의 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혼자 성질을 내는 젊은 남성들을 다양하게 봐왔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 사람들은 다시 요가원을 찾지 않는다. 물론 갑작스럽게 삶이 너무 바빠져서였을 수도 있지만, 아마도 보통은 '난 그 운동과 맞지 않아서'라고 대답하겠지. 그러면 지난 수업 시간 때 짜증이나 내지 말고 가던가.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10년 전 요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 많은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있었으니까. 나 스스로의 몸이 '뻣뻣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내 주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뻣뻣했다), 기본적인 운동 능력에는 꽤나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순발력은 누구 못지않게 좋은 편이었고 균형 감각도 꽤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고 기타 등등. 하지만 막상 요가 수업에 들어가 보니, 이건 웬걸. 나의 몸은 내 모든 기대를 정말이지 무지막지하게 배신했다.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도 몇 초를 제대로 하지 못해 몸을 부들부들 떨며 땀을 흘리기 시작했고,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려 하면 숨은 컥컥 막히고 다리는 맥없이 풀려 넘어지고 구르고...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선생님은 차분하게 - 혹은 즐겁게 수업을 진행했고, 나를 제외한 주변 사람들은 아무 탈 없이 잘 따라 하고 있었다. 아, 내가 요가를 시작한 요가원은 서울 홍대 앞에 있었다. 따라서 나를 제외한 절대다수의 회원은 물론 젊은 여성들이었다. 그분들은 이렇게 저렇게 참 잘들 따라 하더라. 오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쪽팔림이여.


평소에 육체적 능력에 자신이 없지 않던 젊은 남성으로서 요가 수업에서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은 호흡을 이어가기 어렵다거나 뻣뻣한 다리가 펴지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내 옆의 여자가 나보다 센 것 같다"는 느낌, 그리고 그것을 부정하기 어려운 상황들이다. 어찌 된 노릇인지 나는 이미 다리가 후들거려서 다리를 벌리고 그냥 서있기도 힘든 상황인데 옆의 여성은 한 다리를 깊게 굽히고도 흔들림 하나 없이 팔로는 다른 동작을 하고 있지를 않나, 나는 주저앉아서 숨고르기도 힘들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기분인데 앞의 여성은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온몸을 들어 올리지를 않나... 게다가 선생이 가르쳐준 요가식 팔 굽혀 펴기는 나로선 한 개도 못하겠는데 뒤의 여성은 무슨 로봇이라도 되는지 칼 같은 각도로 척척척...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른 운동들 배울 때처럼 힘으로 악으로 깡으로 덤빈다고 해결되는 것 같지도 않고. 신체 건강한 남성으로서 나보다 늙은/어린/뚱뚱한/마른/뭔가 있어 보이는/뭐 없어 보이는/평범해 보이는 여성보다, 뭐가 어쨌든 '옆의 여성'보다 내 육체가 약한 것 같다는 굴욕감. 이 사람들이 무슨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고수들도 아닐 텐데.


여성들의 육체적 능력은 당신이 인정하고 싶어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 왜 동등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건가?


'요가는 여성들이 하는 운동'이라는 표현과 '여성들로 가득한 요가원에 가는 것이 딱히 내키지 않음'의 사이에는, '육체적으로 여성보다 못하면 어쩌지'라는 '남성'으로서의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마초적 남성관 - 남자는 여자보다 키가 커야 하고 어깨도 넓어야 하고 힘도 세야 하고 운동도 잘해야 하고 기타 등등 - 이 주는 무시무시한 스트레스. 선택한 적도 없고, 바꿀 수도 없는 조건들. 남성들 사이에서 어깨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여성들에게도 부족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 같은 느낌. 낯부끄러운 요가복의 여성들로 가득하다고 알고 있는 요가원에 쿨한 척 용기 내어 왔건만, 힘으로조차 당당할 수 없는 현실이라니.


하지만, 왜? 당신은 왜 남성이 당연히 육체적으로 '일반적인 여성들'보다 더 강하고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그 믿음이 당신에게 어떤 삶을 주는가? 당신은 왜 스스로 당신을 억압하는 사고방식을 믿으며 사는가? 왜 그걸 믿고 싶어 하고, 다른 이들도 그 믿음을 따르길 바라는가? 왜?


다시 반복하는 이야기이지만, 여성 문제는 남성 문제이고, 양자는 인간 전체의 문제이다. 남성으로서 여성보다 강해야 한다는 생각, 여성은 남성보다 연약해야 한다는 생각, 그게 '남성다움'이고 '여성다움'이라는 생각은, 남성과 여성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 남성이 여성보다 육체적으로 뛰어나다/뛰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만큼, 당신은 많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고, 그만큼 더 나아질 수 있다. 여성보다 약한 당신을 초라하게 느낄 필요도, 당신보다 강한 여성으로 인해 분노를 느낄 필요도 없는 거다. 만약 당신이 '남자는... 여자는...'하는 근거 없는 구분만 버릴 수 있다면.


한편, 남성 우위 사회에서 주류로 살고 있는 남성의 한 명으로서, 스스로조차 힘들게 하는 저런 불행한 생각을 떨쳐내고, 저런 사고방식들은 잘못되었다고 소리칠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 여성들을 향한 분노의 삿대질을 거두고, 정말로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분노들이 누구를 향해 왔는지, 어떤 결과들을 가지고 왔을 것 같은지, 한 번만 찬찬히 생각해 보라. 매일 가까이 지내는 남성 친구들이나 정체불명의 분노에 휩싸여 있는 인터넷 댓글들이 아닌, 당신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싶어 했던 다른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보거나, 혹은 누군가가 추천했던 기억은 나지만 읽을 생각은 없었던 '좋다는 유명한 책'을 읽어보며 시간을 보내 보라. 세상이 조금 달라질지도 모른다. 조금 자유로워진 당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말 큰 용기를 내어 문턱을 넘은 요가원에서 당신보다 강해 보이는 여성들을 보았을 때, 스스로의 못남에 분노하는 대신, '나보다 오래 배운 선배/숙련자가 하는 걸 보고 배우면 좋지 뭐'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솔직히 생각해 보면, 무엇이든 처음 배울 때는 주변 모든 사람들이 당신보다 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당신이 남성이라는 단순한 이유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몇 달, 몇 년을 노력해온 여성들보다 한 방에 더 잘할 거라는,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한 거다. '여자들이나 하는 그런 거'라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여자보다 잘나야 하는 남자'라는 생각을 멀찌감치 밀어 버리면, 당신은 많은 것들을 배우고 즐기며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 나면, 다시는 '요가는 여자들이나 하는 거'라는 방식의 표현을 할 필요가 없어질 거다. 당신이 요가를 하던 하지 않던. 요가는 요가를 하는 사람들이 하는 거고, 당신은 당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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