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종구 Aug 27. 2018

조금 다른 요가 이야기 #3

요가는 여자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에게 #3

이 글은, "요가는 여자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에게"라는 제목으로, "특정한 방식으로 요가를 상상하고 그것을 매우 성차별적인 여성관과 연결시키는 소수의 남성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세 번째 글이다. 원래는 두 편으로 이루어진 글로 마무리하려고 했으나, 이런저런 사람들과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통해, 기존 글의 대상이 되는 사람 수가 생각보다 많으며, 이들은 생각보다 더 비뚤어진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생각보다 더 적극적으로 세상에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이유로, "요가는 여자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에게" 시리즈를 앞으로도 꾸준히 조금씩 적어가기로 했다.


10년 남짓한 시간 동안 요가를 해오며 많은 것이 변했다. 어깨가 많이 넓어져 몇 차례나 가지고 있던 상의를 모두 바꿔야 했고, 쇄골도 놀라울 정도로 반듯하고 이쁘게 펴졌으며, 전체적으로 굽어있던 발가락도 모두 펴져 신발 사이즈를 하나 올렸다. 척추부터 골반까지 항상 운동이 어느 정도 되어있고 복근과 기립근도 많이 발달해, 거의 종일 책상에 앉아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목이나 어깨, 허리 등의 통증이나 척추 측만 같은 문제는 전혀 없다. 몸의 구석구석 많이 유연해졌고 많이 단단해졌다. 물론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매일 같이 꾸준히 해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1~2달, 심지어는 1~2년씩 요가 매트 한 번 안 펴고 지나간 시간도 많다), 그래도 시간, 긴 시간이 주는 결과는 무시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유연하고 골반 구조 등이 요가에 적합하다는 인식과는 별개로, 그리고 일반적인 입문/초급 수준의 요가 수업에 여성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과 별개로,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이 되면 남성의 수도 꽤나 늘어난다. 내게 그랬던 것처럼, 다행히 그들에게도 본인들의 성별이나 주변의 인식, 신체적 조건/차이 등이 요가에 대한 그들의 선택과 수련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었나 보다.




물론 위의 사진의 사람들이 남성의 가능성을 일반화할 수 있는 예는 아니다. 모두에게는 다른 조건들과 다른 선택들이 있는 것인 데다가, 일반론 - 혹은 조금 더 세련된 방식으로 '통계 자료' - 을 각각의 경우에 적용할 때면 늘 다양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무식한 방식으로 말해, 54.8%의 사람이 요가 수련 중 부상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 내가 오늘 수련 때 다칠 확률이 54.8%라는 건 아니잖은가 https://goo.gl/iuMMxM). 게다가 다시 말하지만, 당신이 요가를 하든말든, 운동을 하든말든, 내게 수수료가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알게 무언가. 그건 당신의 선택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요가는 여자들이나 하는 거'라고 말하면, 그것은 더 이상 당신의 개인적 취향/차이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언어 선택의 문제는 진영을 선택하는 문제이고, 당신의 문장은 당신이 누구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요가는 여자들이나 하는 거'라는 문장을 조합하는 순간 - 혹은 그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당신은 당신이 여성을 차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당신과 같은 진영에 속해있지 않다.


굉장히 '여성적'으로 포장된 상업적 이미지와 흔히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육체적으로 격렬한 운동'이라는 사실 사이에서, 요가라는 활동은 무척 미묘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상업화 초기에 왜, 어떤 방식으로 '여성적 이미지'가 주된 포인트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 아직까지 딱히 깊은 관심을 기울여본 적은 없다. 80-90년대에, 현대적 요가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주역들에 남성 요기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아마도 미국에서의 상업화/산업화가 큰 영향을 주었을 것 같은데, 그저 내 막연한 추측에 불과하다). 이유가 어쨌든, 저 두 가지 테마는 적지 않은 경우에 있어 남성과 요가 사이의 관계에 복잡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리즈의 앞의 두 글에서 적은 것처럼, 한편으로는 요가원의 문턱을 넘는 것 자체에 있어, 다른 한편으로는 수업에서 느끼게 되는 어려움과 좌절감을 소화하는 방식에 있어, 남성들은 자신들이 만들고 교육받은 남성적 문화로 인한 어려움을 어떤 방식으로든 통과해야만 한다 (물론 요가 산업에는 여성을 억압하는 코드들이 훨씬 많이 존재한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가도록 하겠다).


하지만 다시 한번, 해당 '장벽'들은 외부적인 제약으로 존재하기보다는 개인들과 주변인들의 세계관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듯하다. '요가는 여성들이나 하는 것'이라 이야기하는 사람은,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만 놓아두지 않는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타인들을 배척함으로써만 만들어 낼 수 있는 이 사람들은, 요가를 '여자들이나'하는 활동으로 정의하지 않는 남성들을 본인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인식하게 된다.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이러한 위협적인 존재들을 공격함으로써만 스스로의 성적 정체성을 만들 수 있는 이 불안정한 사람들. 물론 '강자의 언어 https://brunch.co.kr/@jongustory/15'는 이러한 사람들을 돕는데, 이 언어 자체가 가지는 강력한 힘은, 한편으로는 '요가를 여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것을 용이하게 해줌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본인과 본인에게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든 위협을 잊고 다시 안락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도와준다. '여자들이나 하는 것을 하는 남자'라니, 쯧쯧.


누차 반복하는 이야기지만, 여성 문제는 곧 남성 문제이고, 출생과 동시에 주어지는 조건들은 매우 강력하지만 삶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들도 적지 않다. 한 명의 독립된 인간으로서, 당신이 요가를 할지 말지, 운동을 할지 말지, '여자나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할지 말지, 주변에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의견을 나누고 어떤 세계관을 가질지는, 상당 부분 당신이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 문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여자들이나 하는 것을 하는 남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애당초 잘못된 질문이다. 훨씬 옳은 질문은, '(요가뿐 아니라) 무언가를 여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이다. 앞의 글들에서 적은 것처럼, 머리로 생각을 할지 하반신으로 생각을 할지, 스스로가 만들어낸 굴욕감에 분노를할지 그야말로 불필요한 이러한 스트레스에서 자신을 풀어줄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각자의 몫이다.





(생각과 실력의 부족으로, 세계적으로 요가 산업이 가지는 또 하나의 큰 질문 - 인종/언어/국적과 관련한 부분은 전혀 다루지 못했다. 앞으로도 다뤄갈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금 다른 요가 이야기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