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배우고 찾아보고 생각 좀 하면서 살자.
사회를 돌아가게 하고 회사를 위해 일하는 구성원으로서, 가정을 꾸리고 가족을 돌보는 가장으로서, 우리 시회의 남성들은 많은 짐을 지고 있다. 나 또한 나를 좀 아끼고 돌볼 시간을 가지고 싶은 하나의 평범하고 약한 개인에 불과한데, 사회도 회사도 가족도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모두가 나를 필요로 하니, 나는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남성이기 때문에 세상을 망치고 있는 주범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사회를 먹여 살리고 있는 것도 나고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는 것도 난데, 이건 무슨 배은망덕한 헛소리인가. 물론, 사회생활이란 걸 하다 보면 야한 농담도 좀 할 수 있는 거고 예쁜 여자가 지나가면 쳐다보거나 할 수도 있는 거지 그걸 범죄라고까지 할 수 있나? 건강한 사내가 젊고 예쁜 여자 좋아하는 건 자연의 섭리인데 그걸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 하나? 먹여 살리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알아?
슈퍼맨처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와중에 욕까지 먹고 있는 것 같아 심기가 몹시 불편한 그대에게 좋은 (혹은 안 좋은) 소식이 하나 있다 : 사회와 가족을 꾸리고 지켜가기 위한 조금 더 쉬운 방법이 있다. 게다가 그 방향을 선택하면 당신은 더 이상 배은망덕하게 느껴지는 비난을 받지 않아도 된다. 힘들게 살아온 당신에게 조금 미안한 이야기지만, 지금이라도 조금 편해진다면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 방법이라는 것이...?
짐을 나눠 들면 된다. 얼굴에 인상 좀 풀고, 어깨에 힘 좀 빼고. 세상의 모든 걸 고민할 필요도 없고 가족을 혼자서 책임지고 떠받들 필요도 없다. 당신은 슈퍼맨도 아니고 혼자도 아니다. 남성들에게 다른 남성들만이 동료가 아니다. 인류의 절반은 여성이고 그녀들을 당신들만큼 세상을 받치고 있다. 함께 할 수 있다면 짐은 조금 가벼워질 거다. 물론 모든 개인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외로운 슈퍼맨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를 위해선, 남성으로서 당신이 지고 있는 '짐'을 여성과 나눠지기 위해서, 당신이 생각해봐야 할, 지지하고 해나가야 할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사회에서 남성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가? 여성들에게도 기회를 주어보자. 쓸만한 여성 인재가 너무 적은가? 여성들이 같은 수준/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자. 여성들은 결혼이나 개인 사정을 핑계로 쉽게 회사를 그만두는 것 같은가? 남성과 같은 수준의 임금과 승진 기회를 주어보자. 여성들이 당신을 전혀 이해해주지 않는가? 남성과 여성은 그저 다른 존재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가? 잠시만 그 생각을 내려놓고 인간대 인간으로서 그녀와 차분히 이야기해 보자. 남성으로서 자연히 가지게 되는 성적 욕구? 포르노 사이트와 야동을 끄고 당신의 욕구를 함께 충족시킬 파트너를 찾아보자 ('당신의 욕구를 풀기 위한'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함께'하자는 생각을 해보자). 그리고 군대와 출산 얘기로 그만 좀 투닥거리자. 그건 그저 유치원생 수준이다. 한국 남성의 병역 문제는 여성과 싸울 문제가 아니다. 어떤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국방비를 소비하고 최첨단 장비들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구시대적인 군대 경영 방식을 바꾸지 않고 무조건 징병제를 고집하고 있는 국가/군대가 문제의 원인이다. 남성과 여성 모두 손을 잡고 구시대적 군대 운영을 바꾸자고 국가에 요구하자.
여성은 당신이 지켜야 할 공주도, 먹여 살려야 할 약자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인형도 아니다.
당신과 같이 우리 사회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사회 구성원이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그녀들에게 당신과 같은 정도의 교육, 임금, 채용/승진 기회, 사회활동 가능성 등을 주기로 했다면 - 혹은 그런 의견을 지지하기로 했다면, 그것은 당신이 착해서도, 그녀들이 불쌍해서도 아니다.
그 권리들, 그 기회들은 당신들이 지금까지 그녀들로부터 빼앗아왔던 것들이고, 당신들이 독점적으로 누려왔던 것들에 불과하다. 훔친 것, 빼앗은 것은 애당초 당신의 것이 아니다.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억울한가?
이 글의 첫 부분을 다시 생각해보라. 당신이 짊어진 짐들, 당신이 해야 하는 일들, 끝없는 책임들, 그럼에도 당신에게 쏟아지는 비난들. 이 모든 것들이, 당신들이 여성들로부터 권리들을 빼앗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였다. 당신은 당신의 삶과 행복을 모두 바쳐가며 여성들의 권리를 빼앗아왔다. 모두가 피해자이고 모두가 빼앗겨왔다니, 어딘가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이상하다고 생각이 든다면, 조금 바꿔보자.
'여성 문제'라고 불리는 것들을 고민하고 바꿔가는 것은, 남성으로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과 어려움들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여성 문제는, 남성 문제다.
*그리고, 부탁이다, 모르면 배우고 찾아보고 생각 좀 하면서 살자.
경제/교육/건강/정치 분야의 기회 및 참여 가능성에 있어 양성 불평등을 평가한 세계 경제 포럼 Gender Gap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조사에 포함된 144개국 중 한국은 118위에 랭크되었다. 양성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117개국이 한국보다 좋은 상황이고, 여성 차별이라는 관점에서 한국보다 못한 나라는 26개국이다. 144개국 중 118위. 리스트를 한 번 봐라. 한국 아래로 있는 국가들은 사우디 아라비아 같은 이슬람 통치 국가나 시리아 같은 전쟁 중인 국가들이다.
*이 글, 그리고 본 블로그의 글들에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LGBT의 이야기는 다루지 않습니다. 해당되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거부하기 때문이 결코 아니고, 남성/여성의 문제에 LGBT이야기까지 한꺼번에 다루기에는, 제 지식도 글쓰기 능력도 너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