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문제, 어딜 가나 똑같다
대학원에 들어가서 나를 잘 연마하고 2년의 졸업 비자를 받아 번듯한 직장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그런데 그 결실은 대학원에 들어간다고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들이 아니었다. 입학도 쉽지 않지만 졸업은 더 어렵고 한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그걸 모두 영어로 해야 하니. 이미 고생 역으로 가는 기차에 타버렸고 내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학과마다 다르기는 하나 아일랜드에서 석사 과정은 보통 1년 과정이다. 1년 안에 학과 수업, 과제, 시험은 물론 논문까지 완성해야 한다. 주변의 다른 유학생들도 고생은 많이 하지만 어떻게든 졸업은 하길래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막연하고 근거 없는 기대감이 있었다. 처음에 오퍼를 받았을 때는 아일랜드에서 내가 대학원을 다닐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기뻐서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어떤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선수로서의 자격이 생긴 것도 기뻐할 일이고 잘한 일이다. 그러나 실전은 다르다. 출발선은 같지만 나보다 앞서 나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한 명이 내 옆으로 또 앞서 나간다. 좌절한다. 그러는 순간 또 다른 한 명이 앞서 나간다. 어느 순간 내가 왜 뛰고 있는지 모르겠다. 포기하고 싶어 진다.
입학 전 학과 오리엔테이션에 갔다. 대학원 과정이라 한 과에 학생 수가 많지 않아서 서로 소개를 하고 연락처를 주고받는 자리였는데 몹시 낯설고 어색했다. 그중에는 나처럼 외국에서 온 학생들도 있었고, 아일랜드에서 대학 과정을 마치고 바로 대학원으로 입학한 아이리쉬 학생들, 그리고 일부는 현업 종사자로 커리어 계발을 위해 대학원 과정을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원어민이 아닌 데다 학부 전공과 아예 다른 과로 입학해서 준비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첫 수업을 듣기도 전에 주눅이 들어버렸다. 앞으로의 나의 1년을 생각하니 아득해졌다.
대학원도 대학원이지만 그때부터 나의 삶의 모습은 확 달라졌다. 생활전선에 뛰어든 것이다. 당장 다음 달 월세도 어떻게 낼 수 있을지 막막할 정도였다. 절대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벌어야만 대학원 공부가 가능했다.
당시 2017년에도 아일랜드의 시급은 거의 10유로 정도였고, 지금은 10유로가 넘는다. 그러니 5년 전에도 이미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만원이 넘었다. 많은 외국인들이 아일랜드로 오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면서 궁금하신 분이 있을까 해서 주 아일랜드 한국 대사관 자료를 첨부한다.)
학생 비자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법적으로 학기 동안에는 주 20시간, 방학 동안에는 주 40시간이다. 모든 수업과 과제, 그리고 논문을 영어로 소화해야 하며, 매 수업 전후에 읽어야 하는 자료가 상당한데 풀타임 석사 과정을 아르바이트와 병행하면서 하는 것이 무척 고되리라는 것은 자명했다. 주변에서도 걱정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회사 경력은 모두 빼고 그나마 몇 개 되지도 않는 서비스직 경험에 설명을 좀 추가한 후 글씨 크기를 키워 A4 1장의 CV를 만들었다.
지원한 곳은 주로 카페, 레스토랑이었다. 파트든 풀이든 꾸준히 사람이 필요한 곳이기도 할뿐더러 외국인 입장에서 그나마 일자리를 구하기 쉬운 쪽이었다. 온라인으로 지원을 하면 누군가와 대면하지 않고 쉽게 제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을 구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경우는 오프라인이다.
어느 날은 Nick과 함께 닥치는 대로 CV를 뿌리리라고 작심을 하며 시내에 나갔다. 같이 있으면 좀 더 용기가 날 줄 알았는데….
막상 매장 앞에만 가면 발도 안 떨어지고, 제출하면서도 내가 무슨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도 하는 듯, 업무 방해라도 하는 듯 매니저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 슬쩍 주고 오는 정도였다. 준비한 CV의 반도 못 뿌리고 집에 돌아왔다.
더블린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하려면 온라인, 오프라인 둘 다 적극적으로 지원하되 직접 제출을 할 경우에는 매니저를 먼저 찾는 것이 중요하다. 매니저가 아닌 직원에게 주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매니저가 없으면 매니저가 있는 시간을 물어보고 다시 방문하는 것이 좋다. 그 매장에 사람이 급하게 필요한 경우라면 운 좋게 매니저와 바로 면접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포지션마다 다르겠으나 일반적으로 물어보는 것은 '비자의 종류, 일할 수 있는 시간대와 요일'이다. 경력에 대해서는 의외로 별로 질문하지 않는다. 고급 기술을 요하는 일도 아니고, 어차피 트레이닝을 거쳐야하기 때문이다. 단, 트라이얼에서 통과되어야 최종 합격이 된다. 직원 한 명을 붙여서 몇 시간 정도 같이 일을 해보게 하는 것이다. 매니저도 그 짧은 시간 안에 완벽히 해내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의 태도와 일을 배우는 능력을 본다. 또 손님을 응대해야 하는 일이라면 영어 실력도 체크할 것이다.
온라인 한인 커뮤니티도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당연히 주시해야 했다. 한국으로 떠나거나 사정으로 그만두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물려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 주변에 내가 일을 구하고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소개로 일을 구하는 경우도 꽤 있다.
겨우 처음 트라이얼 기회를 잡은 곳은 중국인 사장과 매니저가 있는 한식 레스토랑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한 번도 식당이나 카페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었다. 주문을 받는 것도, 서빙을 하는 것도, 뒷정리를 하는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2시간 정도 정신없이
일하니 매니저가 그만하면 됐다며 연락을 준다고 했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니 그날 입었던 흰색 셔츠에 빨간 국물이 묻어있었다. 떨어졌구나 생각했고, 역시나 연락이 오지 않았다.
두 번째로 트라이얼을 한 곳은 시내 중심의
유명한 로컬 카페였다. 3시간 동안 그야말로 카페의 모든 잡일을 해야 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컵과 접시들을 세척하고 건조한 후 다시 커피 바에 가져다주는 것부터 설거지 양이 줄면 손님한테 커피 서빙에 테이블 정리까지. 오전부터 시작해서 끝나고 나니 딱 점심시간. 배가 무척 고팠는데 샌드위치 하나라도 먹고 가라는 말이 없었다. 매정한 사람들 같으니. 떨어지고 나니 더 분했다.
결국 내가 일을 구한 곳은 아일랜드 전역 곳곳에 분점이 많은 태국 레스토랑이었다. 우연히 온라인으로 광고를 보게 되었는데 경력도 필요 없다고 해서 CV를 보냈던 것이 면접으로 이어졌고, 더블린 7 구역에 있는 지점에서 2시간 트라이얼 후 일을 구하게 됐다.
앞으로 나의 일터가 될 이곳. 한 명 한 명 일하는 사람들을 보니 제대로 다국적이었다. 인도, 중국, 태국, 아일랜드, 파키스탄, 프랑스, 리투아니아, 그리고 한국까지.
셰프로 들어간 건 아니지만 주방과의 소통이 중요한 일이었다. 같이 주로 일하게 될 셰프들을 보니 모두 태국 사람이었다. 아이리쉬와 결혼해서 자녀가 있거나 아일랜드에 이민 온 지 10년이 넘었거나, 부모님을 따라 아주 어릴 적에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에 비해 나는 아일랜드에 온 지 막 1년이 넘은 햇병아리였다.
아일랜드에서 세금을 내고 정식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PPSN(Personal Public Service Number)가 필요한데 무작정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채용된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레터가 필요하다.
트라이얼을 마치고, 매니저에게 레터를 받았다. 그리고 메뉴 중에 먹고 싶은 것을 하나 고르라고 해서 팟타이를 골랐다. 눈물 나게 맛있었다. 태국 레스토랑에서 일하니 스태프 식사도 태국 요리구나 싶어 감동했다.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하기 싫어 괜찮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안정된 직장을 꿈꿨고, 어느 정도의 안정감이 느껴졌을 때 아일랜드로 떠났다. 그리고 한국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모든 것이 리셋되어 0부터 시작하는 것 같은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모든 것이 어떤 식으로든 내 인생에서 좋은 경험과 배움이 될 거라고 생각할 만큼 낙천적이지도, 혈기가 왕성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체력이 강한 편도 아니라 몸이 고생스러울 건 뻔한데 그 보다 내 멘탈이 어느 정도 버텨줄지 알 수 없었다.
뭐,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아일랜드에
온 이후 내 삶 자체가 불확실의 연속이었으니까.
그중 확실한 건 적어도 렌트 낼 걱정, 끼니 챙겨 먹을 걱정은 좀 덜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어쩌겠나.
여기서도 먹고는 살아야 하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