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졸지에 레즈비언이 되었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해

by 이모리

일종의 오리엔테이션이었던 대학원에서의 첫 주가 지나자마자 학과 수업, 조별 발표, 에세이 작성, 논문 준비 등이 휘몰아치듯 맞물리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는 레스토랑이 제일 바쁜 목~일, 저녁부터 마감시간(자정) 사이에 근무 스케줄이 잡혔다. 이로써 월요일부터 수요일은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하는 그야말로 고학생의 삶이 시작됐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은 역시나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수업 중간중간 학생들에게서 튀어나오는 질문들, 그 질문들에 대한 교수님의 대답. 수업은 마치 탁구 경기 같이 진행되는데 나의 시선은 파워포인트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열심히 필기를 하고, 그날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으면 옆자리 학생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그렇게 겨우 하나하나 따라가기는 했지만 이것으로 대학원생이 갖춰야 할 학문의 깊이라는 것이 생길지는 여전히 물음표였다.


나는 20ml 크기의 물병이다.

1리터의 물이 내 위로 부어져도
나는 20ml만 담을 수 있다.

대부분의 물은 내 밖으로 쏟아진다.

슬픈 건
쏟아지고 흘러가 버리는 것이 눈에 보일 때다.

더 슬픈 건
손으로 붙잡고 싶지만 붙잡을 손이 없을 때다.

더 더 슬픈 건
손이 있어도 붙잡아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업을 들을수록 내가 이 공부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 과연 잘 한 선택이었냐는 질문이 들었다. 하지만 누구도 정답을 알려줄 수는 없었다. 마침내 그 정답이 긍정에 다다르든, 부정에 다다르든 끝까지 가봐야 내 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일을 하는 곳의 분위기는 꽤 활기찼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있어서 인지 Diversity(다양성)가 주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었다. 나는 주방팀과 주로 일을 하는 Packer였는데, 워낙 테이크어웨이 주문이 많은 곳이다 보니 주방에서 셰프들이 요리를 건네주면 나는 정해진 용기에 포장을 했고, 주문서에 맞게 음식이 잘 담아져 있는지 확인한 후 라이더에게 전달했다. 나는 파트타임으로 가장 바쁜 시간에만 일했기 때문에 차분하게 일을 배울 시간도 없이 동료가 하는 것을 열심히 따라 하며 바로바로 익혀야 했다.


주문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주말 저녁 시간에는 그야말로 카오스의 한가운데 있었다.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기계에서 주문서가 출력되는데 어떤 주말에는 그 주문이 어찌나 쉼 없이 들어오는지 하나하나 이어진 주문서만 거의 3미터였다. 무슨 한 마리 뱀도 아니고, 어쩜 그렇게 끊어지지도 않고 들어오는지 나중에는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삐삐 삐삐-' 모두가 다 극도로 예민해지는 상황. 주문을 쳐내느라 주방에서는 불이 나고, 패커들도 끊임없이 나오는 음식이 잘못 섞이지 않도록 초집중해서 주문서와 음식을 확인해야 한다. 이쯤 되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려고 온 손님들은 왜 이렇게 음식이 안 나오냐는 항의를 하기 시작한다. 음식이 나와야 배달할 수 있는 라이더들은 한쪽에서 발만 동동 굴리고 있다.



무엇보다 밥이 떨어지면 대형사고다. 태국 음식이라 거의 모든 음식에 밥이 같이 나가야 하는데 카레나 볶음밥, 누들 등을 조리하는 것보다 밥이 완성되는데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다. 바빠지기 전에 미리 대형 밥솥 여러 개에 밥을 짓고, 팩에 포장된 밥 수십 개를 온장고에 넣어 만반의 준비를 하는데도 한 시간이면 동이 난다. 바쁠 때는 모든 셰프가 웍을 하나씩 들고 요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패커가 밥을 지어야 한다. 밥이 떨어지고 주문이 밀리는 상황에서 빨리 해야 한다는 긴장과 부담이 있었는지 물이 담긴 대형 밥솥 통을 들고 밥솥 쪽으로 거의 반 뛰어가다시피 하다 바닥이 미끄러워 넘어지고 말았다. 동료들이 괜찮냐고 물으며, 바닥에 흩어진 쌀과 물을 치워주었고, 그 사이 셰프 한 명이 쌀을 새로 씻어 담았다. 그 순간 아프고 창피한 것보다 이런 바쁜 와중에 무슨 민폐인가 싶어 민망하기도 하고,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마감을 하고 집에 가면 자정 시간. 기름 냄새 가득 벤 옷을 벗고, 씻고, 부은 다리를 주무르고 자려고 하면 이미 한 시가 넘어있었다. 아무 생각도 안 했다. 한 번에 두 개를 할 수 없었다.


생각이 많아지려는 것을 겨우 붙잡고 잠을 청했다.




일하는 곳에서 나는 과묵한 편이었다. 필요한 말만 하고 필요하지 않은 말은 하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다.


태국인 셰프들은 서로 정말 친하고 가까운 관계였다. 쉬는 날에도 자주 만나고, 가족들끼리도 모두 알고 있었다. 헤드 셰프가 추천해서 들어온 사람들도 그 안에 꽤 되는 것 같았다.


다행히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어서 트라이얼 때부터 내 이름을 몇 번이나 부르면서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아무래도 같은 아시아에서 왔기 때문인지 나부터도 그들에게는 한 마디라도 더 하게 됐다.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의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가까워지지 말았어야 했다.


어느 날, 헤드 셰프가 차를 퇴고 퇴근하는 길에 비를 맞고 집에 가는 나를 보게 됐다. 그때 비가 억수로 퍼붓고 있었고, 난 우산 없이 모자가 있는 점퍼를 푹 눌러쓰고 앞만 보며 가고 있었다. 일하는 곳에서 집 까지는 걸어서 45분 정도의 거리였는데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주로 걸어 다녔다.


도움을 받아 괜히 빚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지만 비가 너무 많이 내리고 있었기에 '딱 한 번만'이라는 마음으로 차에 탔다. 역시나 10분도 안돼서 집에 편안하게 도착했고,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때부터였다. 그 셰프는 내 매니저에게 부탁해서 나와 그의 퇴근 시간이 같도록 스케줄을 조정했다. 퇴근 시간이 같으면, 당연히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시간도 비슷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는 매번 일이 끝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집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그때 나는 천근만근 무거운 몸으로 걸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 생각밖에 안 들었다. 돌이켜보면, 좀 더 돌더라도 버스를 탔어야 했다. 가끔은 비싼 택시를 이용할 줄도 알아야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것의 시작을 막았어야 했다.


어느 날은 주방팀과 패커들 중심으로 회식을 한다고 해서 일 마치고 근처 펍에서 모두 만나기로 했는데 가장 먼저 퇴근한 그 셰프와 나 외에는 아무리 기다려도, 근무를 마친 시간이 훌쩍 지나도 오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계속 불안해져서 다른 셰프들은 언제 오는지 연락해보라고 재촉했고, 그들은 전화 상으로 온다는 말만 하고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몇 시간을 그렇게 둘만 기다리고 있도록 꾸민 상황이 몹시 불쾌하게 느껴졌다.


이건 아니다 싶어 집에 가고 싶다고 했고 그렇게 늦은 시간 집에 도착하니 그 셰프가 보낸 메시지가 와있었다. ‘보고 싶다.’는 등의 다분히 사적인 감정이 들어간 문자였다.


그에게 어린 아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의 아내는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일어났다는 것이 너무 역겨웠다. 그동안 그의 차를 타며 별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만큼 소름이 끼쳤지만 그런 상황을 애초에 원천 차단하지 않았던 나 자신에 대해서도 자책이 밀려왔다. ‘나는 남자 친구가 있고, 이런 문자를 보내면 매우 곤란하다. 이런 식으로 연락 안 했으면 좋겠다.'라고 차갑게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그 셰프는 그다음 날부터 휴가를 핑계로 일주일 이상 레스토랑에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만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일하면서 마음에 항상 걸렸던 것은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는 성희롱과 성적 농담이었다. 헤드 셰프 다음으로 가장 오래 일한 40대 중반의 여자 셰프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지만 괄괄한 성격에 남자로 치면 마초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심심하면 20대 초반의 어린 남자 셰프들의 엉덩이를 아무렇지 않게 쥐어잡아 놀라게 하거나 장난을 쳤다. 그걸 보고 같이 시시닥 거리는 사람들이 양 옆에 무리로 있으니 그녀에게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게다가 그 무리에는 이를 가장 심각한 사안으로 바라보아야 할 매니저도 있었다. 당한 사람들은 모두 당황하며 웃고 있었지만, 나는 그들의 웃음에서 저항을 보았다.


그 화살이 나에게 돌아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 이름을 하루에도 몇 번을 부르며, 자신이 바쁘지 않을 때는 내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음식에 대해 가르쳐주기도 하고, 스태프 식사 때도 뭘 먹을 거냐고 물어보며, 직접 요리를 해주기도 했다. 영어로 대화다운 대화를 하기는 어려웠지만 고마운 마음이 있으니 나도 좀 더 마음을 열고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어느 날, 주방 쪽에서 무엇인가를 세척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다가와서 내 엉덩이를 만졌다. 그날 나는 생리 중이었다.


어느 날, 나에게 남자 친구가 있냐고 물었다. 남자 친구가 있다고 대답했다. 그날은 그냥 넘어갔다.


어느 날, 비가 정말 세차게 내려서 비에 젖은 박시한 점퍼를 입고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그날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있었는데 나에게 다가오며 내 가슴을 만지려고 했다. 가슴이 어떻게 이렇게 작냐며 나에게 정말 여자가 맞냐고 했다.


그녀는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잠시 후에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다시 물었다.


“정말 남자 친구 맞아? 여자 친구 아니고? 레즈비언인 거 아니야?”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었다. 침묵했다. 온몸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는 오히려 나를 아주 차갑고 차분하게 만들었다. 그날 겨우 일을 마치고, 이건 절대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집에 왔다


Sexual Harrasment(성희롱)는 아일랜드 직장 내에서도 아주 엄격하게 다뤄진다. 보통 일을 구하게 되면 계약서 외에도 직원 매뉴얼이나 직원 핸드북을 주는데 거기에 Sexual Harrasment가 직장 내에서 발생할 경우 어떤 단계를 거쳐야 하는지 아주 상세하게 나와있다. 남자 친구는 거기에 나와있는 매뉴얼대로 가장 먼저 매니저에게 이 상황을 상세하게 얘기하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알았다. 그렇게 따지면 그 매니저도 가해자 중 한 명이라는 것을. 나에게 직접 하지 않았다 해도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했던 성적 농담들, 누군가에게 불쾌할 수도 있는 담화들을 주도하기도 했다는 것을 아는 이상 도저히 그녀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영어로라도 대화가 되면 그 여자 셰프와 1:1로 대화를 해서 사과를 받는 쪽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었지만 그녀와 영어로는 정상적인 소통을 할 수 없었다.


정말 잠을 이룰 수 없이 고민하다가 그다음 날, 그 셰프와도 친하고 나와도 어느 정도 친한 다른 셰프에게 어제 상황과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그녀는 그 여자 셰프와도 언니 동생 하는 사이였기에, 이런 상황에 딱 들어맞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가지고 있는 강단을 알고 있었고,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매니저보다는 더 똑바로 전달해줄 수 있으리라는 아주 작은 믿음이 있었다. 상황뿐 아니라 이런 일이 한 번이라도 더 일어나면 직원 매뉴얼에 나와있는 대로 매니저나 본사에 바로 얘기하겠다는 것도 덧붙였다. 그녀는 알았다며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자기가 그 셰프에게 잘 얘기하겠다고 몇 번을 얘기했다.


하지만 일을 그만둘 때까지 끝내 장본인에게는 사과를 받지 못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한 두달 지났을까. 그 여자 셰프의 얼굴에 민망한 기색이 가득했던 그 날이 생각난다. Nick이 퇴근 시간보다 조금 일찍 레스토랑에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는 퇴근하는 그녀에게 말했다.


“내 남자 친구 본 적 없죠? 저기 레스토랑에 앉아있는데 인사 할래요?”


그녀는 Nick한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멋쩍은 웃음만 짓고, 금방 자리를 떠나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싶은 일들이 일어났다. 본인이 직접 공개하지 않은 누군가의 성 정체성에 대해 뒤에서 행동이나 말투만으로 판단하며 농담의 소재로 삼고, 무리를 지어 은근히 따돌림을 하고, 신입 직원들을 그들만의 재미 요소로 만들어 버리는 그런 일들.


그때 총대를 메고 직장 내 성희롱을 제대로 본사에 고발했어야 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생각도 잠깐 했지만 겨우 구한 일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 두려웠고, 얼마간은 아일랜드에서 더 지내야 하는데 그 정도까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조금은 더 나아졌을까.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조금은 덜 일어났을까.


아니면 그렇다 해도 변하는 건 없었을까.


이런 일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런 일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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