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내 밑바닥을 보고만 너에게

이런 나도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by 이모리

대학원에 입학한 그 해의 11월, 겨울.


어김없이 해는 오후 4시면 지고, 날씨는 스산해졌으며, 크리스마스 조명들이 거리 곳곳을 밝히기 시작하던 그때, 그러나 내 마음은 조금도 밝혀주지 못하던 그때. 우울증이 찾아왔다.


마음의 면역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버렸다. 연말을 앞두고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이상하리만치 미움의 감정을 느꼈고, 누가 치워주기만을 기다리는 듯 퇴색되어 쌓여있는 낙엽들을 보면 괜히 코끝이 시려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왜 이 공부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이 희미해졌다. 대학원 지원을 생각했을 때는 개인적인 진보를 위한 것도 있었지만 비자를 받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비자를 받으면 어떻게든 이곳에서 안정된 길이 열릴 거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힘들 것도 예상했다. 그냥 1년만 눈 딱 감고 죽었다 생각하자 싶었다. 비자가 목적이면 어떤가, 그냥 나를 어떻게든 내쳐서 그 길 위에서 달리게만 하면 어느 순간엔 목적지에 가까워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이 세상 누구보다 나에게 가장 가혹한 사람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일랜드의 겨울을 지나야 하는 것은 고문과도 같았다. 긴 밤이 지나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잿빛의 하늘. 새롭게 시작된 하루에 대한 기대감이 전혀 생기지 않는 상태에서 억지로 몸을 이끌고 학교로 갔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런 시간이 한 달이 넘도록 지속됐다. 다행히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학교를 일단 가기만 하면 과제에 대해 얘기하고, 도움도 받고, 힘든 마음을 조금은 나누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학원 과정은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시간 외에 스스로 해야 할 것이 훨씬 많았다.


에세이와 논문을 쓰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Literature review였는데 이것도 대학원 들어와서 처음 접하게 된 것이어서 나에게 무척 생소했다. 관련 문헌들을 찾는 것, 읽는 것, 학계에서 그 주제가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 분석하는 것, 어느 것 하나도 요령을 피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누가 대신해주지 않는 이상 나 스스로 하나하나 다 부딪혀야만 했다. 주어진 시간과 체력은 한정되어있고, 그 한계를 마주할수록 우울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미 우물은 바닥을 드러냈는데 거기서 물을 길어 올리겠다고 두레박줄을 내리고 있다.

물을 찾아 밑바닥까지 내려간 두레박이 우물의 바닥을 긁는 소리만 공허하게 울린다.

우물은 물을 스스로 내지 않는다. 채워지기만을 기다릴 뿐.

시커먼 어둠 속에 내려진 두레박을 한참 바라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려가야 했던 것은 두레박이 아니라 나였다고'


씨름에 씨름을 거듭해서 겨우 제출한 첫 에세이의 성적이 발표되었을 때 기분이 참 이상했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나쁘지 않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처음 써보는 에세이라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 그냥 이렇게 할 거면 내지 말까 수십 번도 더 생각했다. 그랬던 만큼 이상한 기분도, 또 기쁜 마음도 동시에 들었다. 하지만 이 경험이 우울감의 바다에서 나를 구조해 주지는 못했다.


비싼 학비를 내고 등록한 대학원 수업마저 빠져버리기 시작하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것 같았다. 멀리까지 생각하지 말고 일단 1학기만 무사히 끝내자 생각했다. 그래서 수업은 빠지지 않았지만 수업을 듣는 것이 고역이었다. 수업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자존감과 연결됐다. 그러면서 원어민 학생들에 대한 미움을 마음 속에 키우고 있었다. '내가 한국에 있었더라면, 내가 한국의 대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면.' 이런 부질없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음 한편에서는 증오가, 또 다른 한편에서는 자책이 올라왔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에는 계속 침대에 누워있었고, 아르바이트에 가서는 몸만 살아있는 채로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사람을 만나는 날과 웃는 날이 줄어들었다.


나에게도 힘든 시간이었지만 이런 나를 보는 Nick에게도 무척 힘든 시간이었다. 그는 말라버린 우물과 같은 나의 상태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Nick의 얼굴을 보면 정말 말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고, 눈물을 한바탕 터뜨리고 나서야 조금의 대화라도 이어갈 수 있었다.


조금만 더 힘내면 분명히 좋은 기회가 올 거라고 격려해주는 이도, 과제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는 나를 방에서 끌어내어 맛있는 것을 먹게 해주는 이도 그였다. 어떤 때는 말 한 마디 조차 뱉어 낼 수 없던 나를 묵묵히 기다려주며 안아주는 이도, 나를 유일하게 웃게 해주는 이도 그였다. 힘든 시간이 계속될수록 더 힘들었던 것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괴로움을 나누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샌가 우울감이 너무 커져서 휴학 혹은 자퇴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할 때쯤 그는 너무 힘들면 한국에 가서 시간을 좀 보내고 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하지만 대학원 진학 이후 나빠질 대로 나빠져버린 부모님과의 관계 때문에 휴학을 했다고 얘기하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정말 절벽 끝에 서있는 것 같았다.




이런 상태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버겁다고 생각했다. 이런 지랄 같은 모습을 매일 보는 사람은 무슨 죄인가 싶었다. 내 안에 돋아난 가시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찌르고, 상처를 낸 나는 정작 내 상처밖에 바라볼 줄 몰랐다. 차라리 누군가에게 아픔을 주지 않고, 외롭지만 나 혼자 사는 길을 택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가 나를 포기해 준다면, 나를 버거워해 준다면, 더 이상은 힘들겠다고 얘기해 준다면.

그렇게 말해준다면 그를 보내리라.


눈물이 철철 흘렀다.





나는 오늘도

그대가 건네준 이 온기를 신고서

그 어떤 슬픔도

그 어떤 눈물도

넉넉히 견뎌 걸어간다


포기할 용기보다 나아갈

용기가 커진 날 보며

이제 조금은 안심하고

널 응원할 수 있겠다 말해준

나보다 강한 마음으로 날 지켜봐줬던

너를 생각하며

이 노래를 부른다


- 강아솔, ‘매일의 고백’ 중




나의 모든 밑바닥을 본 한 사람, 그리고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켜준 한 사람, 사랑받아야 할 이유가 있지 않아도 내 존재만으로 나를 사랑하는 한 사람, 모두가 나의 반대편에 있어도 나와 등을 맞대고 있는 이 한 사람의 온기가 내 등으로, 온몸으로, 내 마음으로 전해져 내 몸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겨울이면 얼음장같이 차가워지는 그의 손을 붙잡고 녹였다. 내 손은 왜 이렇게 따뜻하냐고 그가 물었다.


우물 바닥에서 물이 퐁퐁퐁 올라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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