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불효할게요.
아일랜드의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되면서 학교도 잠시 방학에 들어갔다. 돌덩이 같던 마음도 아주 조금은 가벼워지고, 숨 다운 숨이 쉬어졌다. 이 어두운 세상과 내 맘에 예수님이 오신 것에도 기뻤지만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을 주신 것에 감사했다. 어느 때보다 절박하게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방학이 끝나자마자 시험 기간이라는 아주 야속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기는 했지만 이를 받아들일 힘도 그 사이 조금은 생겼다.
그렇게 새해를 맞았고 정신없이 시험을 치르고 나니 대학원 1학기가 끝났다.
Fail 없이 한 학기를 마친 건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연출과 각본대로 움직이는 드라마였다면 이쯤에 놀라운 반전이 하나 나올 타이밍이다. 우울증까지 걸렸던 1학기를 지나 2학기도 어찌어찌 버텨서 우여곡절 끝에 졸업을 하게 되고 졸업식에서 학사모를 던지는 장면을 보여 주며 감동적으로 막이 내리는 짠내 나는 인생 드라마.
그러나 현실의 나는 휴학계를 제출하러 학교에 갔다.
학장과 잠깐의 면담이 있었다. 나에게 휴학하려는 이유를 물었다. 이미 그에게 내민 휴학계에 휴학하는 이유를 체크하는 칸이 있었고, 나의 대답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정말 들어주고자 묻는 것이었다면 풀어놓을 얘기는 많았다. 하지만 그 많은 얘기들은 개인적 사정, 경제적 사정 딱 두 가지로 함축됐다. 더 이상 질문이 이어지지 않는 아주 짧은 면담이었다.
학교에서 나와 아르바이트하는 레스토랑까지 걸어갔다. 천천히 걸어도 20여 분 거리. 아주 느리게 가도 늦지 않을 만큼 시간이 충분했다. 휴학만 하면 날아갈 듯 마음이 후련해질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후련함 뒤에는 어느 정도의 실패감과 자책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떼어내기 위해 얼마 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도.
그동안 내가 고민하고 씨름했던 시간들을 하나하나 구슬로 만들어 꿰면 어떤 색의 목걸이가 될까 궁금해졌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 목걸이도 한 알 한 알 가까이서 보면 빛이 나지 않고, 거무칙칙하게 보일지도 모르지.
그런데 멀리서 빛을 비추어 보면 가까이서는 볼 수 없던 전혀 다른 색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화려하고 눈에 띄는 색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대신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오묘한 색 있잖아, 아니, 어디에서 본 것 같으면서도 본 적 없는 그런 묘한 색.
그래서 뒤돌아서면 '무슨 색이었더라'하고 생각나서 다시 보고 싶은,
그런 색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우리 부부가 제일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다. 바로 프러포즈에 관한 질문이다.
프러포즈를 누가 했냐고 묻는 다면, 프러포즈가 어땠냐고 묻는다면 우리 모두 할 말이 없다.
결혼은 우리에게 스며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쯤 결혼식에 갈 일이 많아졌고, 아일랜드에 떠나오기 직전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부부가 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결혼에 대해서도 상상해 보고는 했다.
한국의 전형적인 결혼식을 볼 때마다 솔직히 약간의 회의감이 들었다. 여러 커플의 결혼식이 짧은 시간 동안, 한 날에 치러지는 탓에 웨딩홀과 식당은 늘 붐빈다. 결혼식의 주인공들도 하객들도 시간 내에 클리어해야 하는 미션을 받은 것처럼 바쁘게 움직인다. 비용이나 효율면에서 당사자들과 혼주들에게 가장 적은 부담을 안겨주면서도 짜인 틀 안에서 쉽고 편하고 아름답게 결혼식을 진행하고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으니 나부터도 이런 결혼식을 할 거라고 당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문득 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아주 소박하게 결혼식을 올리는 것도 참 멋지겠다는 생각이 떠오르곤 했다.
아름답게 끝나지 못했던 두 번의 연애 이후 20대 후반부터는 결혼이나 연애에 대한 기대감이 별로 없었다. 30대가 되고부터는 들어오는 대로 족족 소개팅을 나갔다. 소개팅이 안 들어오는 비수기에는 소개팅 어플까지 깔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일념이 투철했다. 이렇게 만나다 보면 그래도 한 명과는 이어지겠지, 연애를 하다 보면 결혼에 대해 얘기하게 되겠지, 그러다 보면 나도 어느새 혼자가 아닌 둘이 되어 있을 거고, 조금 지나서 셋이든 넷이든 그렇게 다복한 가정이라는 걸 꾸리고 있겠지, 이런 생각을 늘 하긴 했다. 그런데 무슨 청개구리 심보인지 마음 한편에서는 '몸과 마음이 자유로운 지금 이때에 인생에서 조금 더 도전해 볼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솔직히 당장 결혼하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결혼... 정말 하고 싶은 거야?'라는 소리가 공명이 되어 울렸다.
"엄마, 저 결혼해요."
Nick의 존재를 알려드린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 부모님께 결혼 소식을 전했다.
대학원을 휴학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결혼을 얘기했다. 우리가 내년 이맘때쯤 이렇게 결혼 얘기를 하고 있을 거라면 그것이 올해가 되어도 큰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우리 안에 언제 결혼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서로 간의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모님께 남자 친구가 있다는 것을 처음 말씀드렸을 때, 그리고 외국인이라고 말씀드리며 사진을 보내드렸을 때. 어느 정도의 반대를 예상하고 시나리오를 세웠던 것이 무색할 만큼 덤덤하셨다. 부모님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멀리 까지 가서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를 생각할 때마다 그렇게 마음이 속상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오히려 누군가 옆에 있다고 하니 이제야 안심이 된다고 하셨다.
결혼을 말씀드렸을 때는 너에게 가장 맞는 사람을 너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 아니냐며, 네가 좋으면 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건 정말 각본과 연출이 있는 드라마였어도 나올 수 없는 장면이었다.
한국에 들어가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도 생각하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최소한의 것만 한다고 생각해도 결혼의 기쁨이 날아가는 것만 같은 두통이 찾아오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남자 친구 고향의 시청에서 가까운 분들만 초대해 소박하게 올리기로 했다.
부모님께 남자 친구를 직접 보여드리지 않고 결혼을 결정한 것, 처음 부부의 연을 맺는 그 자리에는 거리가 너무 멀어 우리 부모님이 오실 수 없었던 것이 지금까지도 너무 죄송스럽다. 죄송한 마음이 들 때마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번 딱 한 번만 마지막으로 불효하자고, 그러고 나서 부모님께는 이전에 보여드리지 못했던 정말 행복한 모습을 보여드려서 꼭 효도하자고. 아직까지 그 다짐이 지켜지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Nick과 이탈리아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두 달 후 한국에 가서 피로연을 했다. 그 후에도 함께 한국에 방문했고, Nick은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었으며, 부모님이 사시는 본가가 있는 곳이자 내가 태어난 나의 고향을 그는 무척이나 좋아하고 언젠가는 살아보고 싶다고 한다.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수학 문제의 정답을 찾아 내신 것 같은 표정으로 어느 날 엄마가 나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네가 Nick을 만나려고 그 먼데까지 갔나 보다."
"그러게요. 엄마. 진짜 우리가 만나려고 그랬나 봐요."
아일랜드를 간다고 했을 때에도 그리고 아일랜드에 온 이후에도 나를 생각하며 매일 같이 속을 끓이셨을 엄마의 마음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엄마와 나는 서로 늘 아주 깊게 연결되어 있었다. 엄마의 가장 기쁜 순간에도 가장 슬픈 순간에도 가장 분노하는 순간에도 옆에 있었던 건 나였다.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 주어진 인생을 사는 것이 서로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 엄마도 나도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결혼하고 처음 한국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아일랜드에 돌아갈 출국일만 되면 그렇게 눈물이 난다.
어떤 날은 엄마라는 두 글자만 보아도, 엄마 얼굴을 잠깐만 떠올려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버릴 것 같았고, 서로 연결된 마음이 깊다는 것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슬픔과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때도 있었다.
엄마이기 때문에, 딸이기 때문에.
이제는 이 프레임에서 조금 자유로워진 것 같은 느낌이다. 나의 결혼을 계기로 엄마와 딸만의 관계가 아닌 때론 여자 대 여자로,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얘기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자녀가 생기면 또 엄마 대 엄마로서 나눌 얘기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 날이 온다면 감히 엄마에게 말하고 싶다.
엄마, 우리 같이 아름답게 나이 먹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