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하우징(Housing) 이슈
비행기에서 내리니 아직 7월인데도 더블린 특유의 쌀쌀한 바람이 몸을 에워쌌다. 그리고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말하는 듯했다.
“자, 이제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야.”
연인이 아닌 부부가 되어 더블린에 다시
돌아왔다. 현실로의 첫걸음을 함께 내딛는 순간이었다.
신혼의 재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신혼집을 예쁘게 단장하고 둘만의 공간에서 단란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안타깝지만 더블린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 우리 부부에게는 그 보통의 행복이 허락되지 않았다.
더블린에서의 주거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처음 더블린에 왔던 2016년부터 현재까지 더블린의 렌트는 계속 올랐고, 하우징 이슈는 끊임없이 제기됐다. 당연한 얘기지만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때문이다.
더블린은 인구 100만의 작은 수도이지만 취업과 학업을 위해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집은 부족하고 구하려는 사람은 많으니 집주인이 렌트를 비싸게 받거나 올려도 늘 아쉬운 쪽은 집을 구하려는 사람들과 세입자들이다.
RTE 기사에 따르면 2020년에 방 세 개가 있는 아파트 기준, 유럽에서 다섯 번째로 렌트가 비싼 도시로 더블린이 꼽혔다.
평균 렌트가 한 달에 3,713유로인데 이는 한화로 약 500여 만원이다. 아일랜드에는 우리나라처럼 전세가 없어서 월세를 지불하거나 집을 사야 한다. 처음 입주할 때 월세 한 달분에 해당하는 보증금과 첫 달의 월세를 지불한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는 더블린 권역 내에서 방 1개, 화장실, 거실, 부엌이 있는 집을 구하려면 최소 1,600유로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우리나라 원룸 개념의 스튜디오도 신축이거나 관리가 잘된 깨끗한 집이면 1,000유로가 넘어간다. 자가가 아니면 월급의 상당 부분이 렌트로 나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랜드로드와 직접, 또는 에이전시를 통해 정식으로 계약하는 것이 제일 안전하지만 전에 살았던 곳의 랜드로드 추천서나 재직 증명서 등 요구하는 서류를 반드시 제출해야 해야 후보로 들어갈 수 있다. 더욱이 안전한 지역에 있고 관리가 잘 된 집이라면 요구 조건이 까다로워도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다 보니 계약서를 쓰지 않고 집을 구하는 경우도 많은데 정말 별의별 일들이 생긴다.
악독한 랜드로드를 만나 계약 기간이 끝난 후에도 보증금을 받지 못하거나, 자신의 보증금을 랜드로드에게서 못 받을 것 같으니 다른 사람을 구해 놓고 그 사람에게서 보증금을 받고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한 방에 두세 개의 벙커 침대를 놓고 세입자를 무리하게 받아 15명이 넘게 살고 있는 집이 뉴스에 나온 적도 있으며, 아파트를 렌트한 후 랜드로드에게 알리지 않고 전대(Sublet)해서 원래 아파트 렌트비보다 비싸게 받고 본인은 거실에서 생활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있다.
이뿐 아니다. 인터넷에서 퍼온 가짜 집 사진을 올려놓고 저렴한 가격으로 현혹한 후 보증금을 미리 보내라고 하는 스캠도 많이 일어나고, 싱글룸에 살 여자를 구한다고 해놓고 막상 뷰잉을 가면 자신이랑 방을 같이 쓰는 것이라고 하는 제정신이 아닌 남자들도 있다.
렌트도 비싸고 뷰잉의 기회를 얻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인데 낯선 이방 땅에 와서 이런 상황까지 닥친다면 정말 하늘이 노래질 일이다.
실제로 내 주위에도 집과 관련해 큰 상처를 입고 더블린을 떠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나 역시도 집을 구하며 더블린에 계속 있는 것이 정말 옳은 선택일까 여러 번 생각했었다.
복권이라도 당첨되면 여러 채의 집을 사서 당장 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저렴하게 임대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어쨌든 우리 부부도 이러한 연유로 우리 둘만의 공간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없었다.
셰어하우스의 더블룸을 구하는 것도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다. 우리와 같은 마음으로 방을 구하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뷰잉을 갈 때마다 우리와 같은 커플들이 길게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다들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와있겠나 싶었다.
우리는 매일 같이 강박적으로 렌트 관련 사이트와 페이스북 페이지,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며 메시지를 보냈고, 뷰잉 기회를 겨우 잡은 끝에 화장실이 딸린 깔끔한 더블룸을 구할 수 있었다. 방 하나에 월세 800유로, 한화로 100만 원이 조금 넘었다. 방 세 개짜리 아파트에서 다른 두 커플과 부엌, 거실을 공유하는 것이었는데 다소 불편함이 예상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구한 것이 어딘가 싶었다. 이마저 구할 수 없었다면 장기방을 구할 때까지 단기 숙소를 전전해야 했을 테니 말이다.
넓지는 않았어도 우리에게 참 소중한 공간이었다. 큰 창문과 발코니가 있어서 방이 환했고, 빨래를 널기에도 좋았다.
이사하자마자 남편은 화장실 문에 운동 기구를 고정시켜 놓고 그 좁은 공간에서도 열심히 운동을 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방 한쪽에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워놓았는데 덕분에 방이 참 근사하고 아늑해졌다.
어떤 날은 누군가가 방 크기에 아주 적당한 작은 책상과 의자를 팔고 있길래 냉큼 사서 가지고 왔는데 책상과 화장대 또 가끔은 식탁 역할도 훌륭히 해주었다.
그렇게 방구석 구석 우리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이 오롯한 우리만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방 한 칸의 신혼. 한국에서라면 생각지도 못했을 삶이었다. 상황이 나아지면 우리 둘만의 집으로 이사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불행하지는 않았다.
함께 장을 보고 맛있는 것을 요리해서 나눠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 집 앞 공원에서 함께 산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가끔은 집 앞에 있는 펍에 가서 맥주 한 잔씩 시켜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뒤에도 집으로 같이 돌아올 사람이 있다는 것.
고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말려있던 어깨가 펴지는 것.
비교하고 자책하며 주눅 들기 쉬운 세상에서 내 편 하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기운이 나던지.
대학원 공부를 하며 나를 집어삼켰던 우울의 깊은 그늘이 그렇게 조금씩 물러나고 있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애쓰는 인생을 살지 않고 싶어졌다. 대신 내 안에 있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 무엇으로도 빼앗기지 않을,
그 무엇도 빼앗을 수 없는 그것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