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샌드위치 좀 만들 줄 압니다

샌드위치 1도 모르는 내가 샌드위치의 달인이 되다

by 이모리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배우자 비자 신청이었다. 준비해야 할 여러 서류가 있었는데 혼인증명서를 영어로 번역하는 것은 전문 번역업체에 맡겼고, 우리가 처음에 어떻게 만나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는지에 대한 증거 자료는 어학원 수료증부터 연애 시절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결혼사진 등을 첨부해서 가능한 상세하게 만들었다.


우리 선에서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당장은 어렵게 느껴져도 어쨌든 시간을 가지고 하면 되는 것들이었는데 가장 어려운 것은 집과 관련된 서류였다. 우리의 이름이 들어간 집 계약서와 역시 우리의 이름이 수신자로 들어간 공과금 내역서를 제출해야 하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셰어하우스에서는 불가능했다. 다행히 준비가 된 서류를 먼저 제출하여 혼인관계에 대해 검증이 되면 일을 할 수 있는 임시 비자를 먼저 받을 수 있고, 나머지 집과 관련된 서류를 내면 정식 비자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어 조금은 숨통이 트였다.


이 과정에서의 모든 서류는 무조건 우편으로 주고받는다. 물론 등기로 부쳤지만 여권 사본, 혼인증명서 등 개인적인 정보가 가득한 이 두툼한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려니 찜찜함이 올라왔다. 더 나아가 이들이 잘 받았는지, 그리고 받은 이후에 내게 언제 답장을 보내줄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메일 주소가 있기는 하지만 문의해도 답장이 바로 오지 않는다는 건 아일랜드 생활 1년 차부터 이미 체념하고 또 체념한 일.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시간이 흘러 임시 비자를 받으러 오라는 편지를 받았고, 이민국에서 도장을 받자마자 풀타임 일을 구하기 시작했다. 사무직부터 카페, 레스토랑 다 지원했는데 생각보다 취직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친한 언니가 자신이 예전에 일했던 곳의 친구가 매니저로 있으니 사람을 구하는지 물어보겠다고 했고, 바로 연락을 해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트라이얼 연락까지 받게 되었다.


'아침 8시까지 검은색 상의를 입고 OOO로 오세요.'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시간이었다. 사실 많이 이른 시간이 아닌데도 당시 백수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아침 8시가 무척 이른 시간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11월 겨울이어서 아침 8시에도 아주 깜깜하던 때였다.


아침인지 밤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깜깜한 어둠을 뚫고 구글맵을 보며 그곳에 도착했다. 알고 보니 그곳은 오전 7시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델리 겸 마켓이었다. 일부 직원들은 오전 6시부터 일찌감치 출근해서 아침 장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친한 언니의 친구는 그 마켓 전체를 관리하는 매니저였고, 델리 파트만 담당하는 매니저는 따로 있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매니저가 누구인지 모르는 건 당연했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직원에게 물었다.


“오늘 트라이얼 왔는데요.”

“캐롤리나! 여기 트라이얼 왔다는데.”


캐롤리나는 트라이얼을 하러 온 나와 또 다른 한 명을 탈의실로 데리고 갔다. 물건이 가득 쌓여있는 창고 같은 통로를 지나 나무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머리카락 전체를 덮을 수 있는 망과 셰프들이 쓸법한 모자를 쓰고 거기에 비치되어 있는 검정 바지로 갈아입고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봤는데 처음 만난 사람을 보는 듯한 어색함이 불쑥 올라왔다.


샌드위치를 평소에 좋아하지도 않고 만들어 본 적도 없는 내가 하루 종일 샌드위치를 만드는 일을 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 아이러니했다.


캐롤리나는 우리에게 가장 기본적인 샌드위치를 어떻게 만드는지 직접 보여주었고 그대로 몇 개 만들어서 박스에 넣는 것까지 해보라고 시켰다. 제일 어렵게 느껴진 건 스터핑을 적당히 넣은 후 샌드위치를 깔끔하게 자르고 박스에 넣는 것이었다. 스터핑은 흡사 빵가루 같이 생겼는데 양 조절을 못하면 샌드위치에 전체에 묻어 지저분해 보인다.


잘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그 순간만큼은 온 심혈을 기울여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잘 만드는 것은 50%, 만든 것을 반으로 잘라 깔끔하게 박스에 넣는 것은 또 다른 관문이었다. 그렇게 30분이나 지났을까. 매니저가 와서 이제 그만해도 된다며 사무실로 올라가자고 했다.


출처 : https://www.bestrecipes.com.au/recipes/basic-bread-stuffing-recipe/p2smhdks


“아직 몇 명 더 트라이얼 할 사람들이 있으니까 나중에 결정되면 연락 줄게요.”


그리고 그다음 날, 채용이 되었다는 문자가 왔고 그다음 주부터 바로 일을 시작했다. 샌드위치의 1도 모르는 내가 얼떨결에 샌드위치 세계의 초입도 아닌 정중앙 한복판에 놓인 것이다.


더블린에 있는 모든 샌드위치 가게가 이곳과 같지는 않다. 이곳은 맞춤형 샌드위치를 만들어주는 곳으로 유명한 서브웨이를 두 세배쯤 확장시켜놓은 버전 같았다. 샌드위치에 사용되는 빵, 치즈, 채소, 소스, 햄류, 절임류 등이 대략 세어봐도 최소 10가지는 되었다.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만들 수 있는 샌드위치의 경우의 수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레시피가 정해져 있어 메뉴판에 아예 이름이 들어가 있는 샌드위치의 종류는 열 가지 정도 되었고, 이외에도 손님들은 각자의 취향대로 원하는 빵과 재료를 고를 수 있었다.


하루의 루틴은 대략 이랬다.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해 오전에는 마켓에서 판매될 샌드위치를 부지런히 만들어 냉장고에 진열해 놓았고, 가장 바쁜 시간대인 11시부터 2시 정도까지는 점심을 먹으러 몰려든 인근 회사 직장인들이 주문하는 대로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재료 준비와 청소를 하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가 마무리됐다.


"What would you like? (어떤 샌드위치를 만들어 드릴까요?)"

"Toasted?(데워드릴까요?)"


이 말을 하루에 100번은 족히 했을 것이다. 당연히 처음에는 모든 레시피나 재료를 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점점하다 보면 속도가 붙는다. 사실 만드는 것보다 더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은 각 재료의 가격을 외우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치즈 중에서도 고트 치즈가 가장 비싸고, 체다 치즈나 모차렐라 치즈는 가장 저렴한데 1유로가 넘게 차이가 난다. 치즈 하나만 달라져도 샌드위치의 가격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가격이 너무나 헷갈렸다. 내가 만든 샌드위치에 들어간 재료의 가격을 합산해 가격표를 출력한 후 손님에게 주어야 했는데 헷갈릴 때마다 물어보면서 하느라 애를 먹었다. 신입이니 뭐든지 물어보며 하라고 하긴 했지만 점심시간에는 모두 눈코 틀새 없이 바쁘기 때문에 어떻게든 물어보는 것을 줄이고 스스로 해야만 했다. 그래서 짬이 날 때마다 가격표를 수시로 보고, 재료와 가격표를 번갈아 확인하며 외웠다.


점심시간에는 매일 다른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는데 맛있게 만들어 먹긴 했어도 샌드위치가 좀처럼 좋아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반작용으로 밥과 김치, 얼큰한 찌개가 너무 그리워서 저녁 식사로는 매콤한 한식을 제대로 챙겨 먹었다.


어쨌든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종류의 치즈가 있고, 빵의 종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샌드위치에 이렇게 다양한 재료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일에 대한 재미도 생기고 샌드위치를 만들 때 손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했다. 샌드위치를 만드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진 것이다.


나 스스로도 샌드위치를 제법 잘 만든다고 느껴질 때쯤 매니저는 나에게 Gourmet 샌드위치를 맡기기 시작했다. 가격이 다소 높은 만큼 좋은 재료가 들어가고, 레시피도 조금 특별한 샌드위치였다. 매일 한정 수량으로 만들었는데 일반 레스토랑 한 끼보다는 많이 저렴하지만 꽤 괜찮은 수제 버거를 먹은 것 같고, 왜인지 건강해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샌드위치였다. 샌드위치가 다 같은 샌드위치가 아니라는 것은 이곳에서 일하자마자 깨달았고 샌드위치도 어떤 재료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근사한 한 끼의 식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Gourmet 샌드위치를 만들면서 알게 되었다.




샌드위치를 좋아하지 않는 나도 맛있게 잘 먹었고, 사람들에게도 대체로 인기가 많았던 샌드위치 레시피를 소개한다.


1. 렐리쉬 + 고기류(햄, 소고기, 치킨, 베이컨 등) + 양파 + 샐러드 + 코울슬로 + 체다치즈


토마토로 만들어진 렐리쉬는 가장 인기가 많은 스프레드다. 샌드위치에 렐리쉬 + 햄 류 + 치즈만 들어가도 기본 이상은 한다. 개인적으로 코울슬로는 오븐에 넣어 따뜻해지면 별로라서 나머지는 오븐에 먼저 구운 뒤 따로 넣어 먹고는 했다. 손님들도 샐러드나 코울슬로는 나중에 따로 넣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많았다.






2. 치킨 필렛 + 마요네즈 + 치즈 + 샐러드

바삭하게 튀겨진 짭조름한 치킨 필렛과 마요네즈는 언제나 좋은 조합이다. 여기에 치즈나 샐러드를 추가해도 좋다. 저렴하면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어 인기가 많았던 샌드위치. 여기에서만 파는 것은 아니고 Hot chicken roll이라고 해서 일반 편의점 같은 곳에서도 파는 샌드위치다. 보통 바게트에 넣어서 먹는다.


3. 페스토 + 햄 + 모차렐라 치즈 + 토마토 + 로켓

개인적으로 페스토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요네즈, 렐리쉬, 버터 등 뻔하게 맛있는 맛 말고 조금 색다른 맛이 당길 때 이런 조합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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