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필요한 병사

Life

by 행운


사랑이 필요한 병사


‘인기그룹 엑소였구나.’ 상상도 못 했다. 어떤 영화에서 관심병사 역할을 한 배우가 유명가수일 줄. 그가 연기를 잘한 덕분일까? 신인배우로 착각했다. 내가 군 생활을 오래 한 덕분일까? 군 장교 시절 경험이 떠올랐다.

우리 부대는 ‘관심사병’이라는 어감이 좋지 않은 탓에 ‘사랑이 필요한 병사’라고 불렀다. 본질은 같았다. 단지, 달라진 것은 어감뿐이었다. 내가 인사장교로 보직을 변경한 지 3개월 된 시점, 연대에서 ‘사랑이 필요한 병사’로 분류된 신병이 전입해왔다.

그 병사는 아침 점호가 끝나고 “쓰레기 좀 주워라”라는 말에 눈물을 보였고 청소시간에 “걸래 좀 빨아라”라는 말에 손을 떨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았다. 생활지도 기록부를 봐도 문제가 없었다. 연대에서 그를 사랑이 필요한 병사로 분류한 이유는 ‘소극적인 태도와 불안한 눈빛 그리고 가정환경.’이었다. 부모님이 안 계셨고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는 많은 사건 속에 자신감을 잃었고 동료들의 신뢰도 잃었다. 그 병사를 담당한 소대장은 이를 갈았고, 같은 생활실을 쓰는 동기 및 선임들도 눈에서 레이저를 쏘았다. 결국 간부들 사이에서 복무 부적합 심사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관련 서류작성을 위해 내가 그 병사를 행정반으로 불렀다.

그는 주황색 생활복에 때가 탄 운동화를 신고 행정반으로 들어왔다.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는 그의 어깨는 움츠려있었다. 행정반에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자 안도하는 눈치였다. “저를 미친놈으로 볼까 봐 아무한테도 말 못 했어요”. 복무 부적합 심사 관련 면담이라는 말에 떨리는 음성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쓰레기를 볼 때, 걸레를 빨 때, 그리고 모포를 덮을 때 지렁이 수천 마리가 지나가고 있어요. 저도 제가 미친놈 같아요.”

본인이 위생상 더럽다고 생각되면 어김없이 지렁이들이 나온단다. 증상은 중학교 때부터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계속되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군 면제 사유가 정신병이라면 취직이 힘들 수 있기에. 그는 말하면서도 계속 떨고 있었다. 나는 군 병원은 보안이 철저함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치료받아도 취직에 불이익은 없다고 설득하였다. 결국 그를 국군병원 정신의학과로 데려갈 수 있었다. 그는 묵묵히 치료를 받았다. 입원 치료가 아닌 통원 치료를 했다. 지휘관에게 말씀드려 소대와 보직을 바꿨다. 눈이 내리는 12월, 그는 무사히 전역했다. 증상도 없어졌다. 전역하는 날, 목도리를 선물해줬다.

“감사합니다. 인사 장교님.” 밝게 웃으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손을 한번 크게 흔들고 하얀 눈 위로 뽀드득뽀드득 발소리를 내며 위병소 밖으로 멀어져 갔다. 멀어져 가는 그의 목에는 내가 준 목도리가 감겨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가 울컥했다.

상념에 젖어있는데 주머니에서 핸드폰 진동이 느껴졌다. 연대 인사과장이었다.

“충성! 인사장교입니다.”

“빨리 와서 신병 받아라. 사랑이 필요한 병사다.”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정말 군 생활 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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