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을 하고 나니 직업이 무엇일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직업이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리 크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사람들이 한 번씩은 들어본 회사를 가자.’가 저의 목표였습니다.
운이 좋게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다니던 중 취직이 되었어요. 26살에 한 번쯤은 다 들어봤을 법한 중견 기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나보다 10살, 20살은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서 대화를 나누고 일을 하는 것이 참 어색했던 것 같아요. 그때의 저는 지금보다 몇 배는 낯을 가리고 말을 잘하지 못해서 의사전달도 어려웠고, 흔히 말하는 예쁨 받는 행동을 하지도 못했고요.
첫 해는 무난히 지나갔고, 두 번째 해와 세 번째 해는 혹독하게 지나갔습니다. 장기 프로젝트에 잠을 하루에 3시간씩 자며, 새벽과 주말에 출근을 했었고, 매일 아픈 몸을 끌고 회사에 나가면서도 그게 당연한 거라 생각했어요. 네 번째 해에는 프로젝트가 끝이 나, 칼퇴가 가능했으나 이미 정신적으로 많이 예민해지고 직업에 대한 의심이 들었습니다.
모두 아시지만 지금은 여러 법이 많이 생겨, 회사 다니기가 조금은 수월해졌는데 5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잖아요. 일 외에도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았어요. 술을 따르라면 따라야 하고, 회식도 따라다녀야 되고, 못 마시는 술을 마셔야 되고, 늦은 밤에 귀가해야 되고, 비서도 아닌데 커피를 타고 설거지를 해야 하고, 에어컨은 언제 청소했는지 모르는데 그 공기를 다 미시고 있어야 되고, 가만히 앉아 있는데 예쁜 척하지 말라는 윗사람의 말에 상처 입고, 밖에선 모르는 아저씬데 손 한 번 잡아보자 하고 악수하시러 오시는 윗사람들... 지긋지긋했지요.
결국 더 큰 회사로 가면 좀 날까 싶어, 업계 1위인 대기업으로 이직을 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인드도 많이 달라졌고, 전 회사보다는 소통이 잘 되어서 상사와도 즐겁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너스레를 떨 수 있는 어른이 되기도 했고요. 어차피 밖에선 다 똑같은 사람인데요 뭐. 하지만 일이 정말 많았습니다. 하루에도 몇십 번씩 시간을 체크하며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조급하고 바빴어요. 그만큼 복지는 좋았지만 결국 공황장애였는지 모르겠지만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극도로 긴장해서 숨이 안 쉬어지고, 식은땀이 뻘뻘 나며 주저앉아 응급실에 실려가도 모자라겠다 싶을 때쯤, 위가 쪼여왔습니다. 눈물도 못 흘릴 정도로 정신이 아득해지고 죽는 줄 알았어요. 내릴 정거장이 아닌데 중간에 내려 구토를 하기도 했고, 이직한 6개월 동안 3번 정도 고비가 왔던 것 같아요.
결국 저는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래저래 너덜너덜해진 마음과 정신, 육체를 가다듬고 이제 4개월 정도가 되었는데요, 이상하게도 일은 또 바쁘게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좋아하는 일, 나에게 부담이 덜 되는 일을 하려고요. 그래서 요즘엔 비누도 만들고, 친구들에게 주문받은 그림 작업도 하고, 글을 끄적끄적 적기도 하고, 공예과 전공과 콘텐츠 에디터 경험을 살릴 직업을 찾아 매일을 달리고 있습니다.
아!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요, 내 체력과 마음가짐이 거기까지가 아닌데 주변의 기대에 맞춰 욕심내어 살 필요는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저는 학창 시절, 미술과 공부를 나름 열심히 했었고, 그 덕분에 원하는 대학에 갔었어요. 자연스레 주변 어른들과 친구들의 기대감이 커지고, 저도 욕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사실 제 체력과 마음가짐은 거기까지가 아닌데 말이에요. (능력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가 원하는 것을 얻을 능력이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미친 듯이 달리다 보면, 결승점이 보이는 것처럼 저에게 인생 1막의 마침표는 퇴사였습니다.
제 인생 2막은 지금 제가 갈고닦는 노력의 여부에 따라 똑같은 트랙을 돌거나, 다른 버전의 트랙을 찾아 돌며 시작하게 되겠죠?
이 글을 읽는 모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