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글.
http://v.media.daum.net/v/20171203093617044
한국 재벌 대기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의 결론은 대부분 아래와 같다.
"“한국은 1997년 이전에는 제조업에 집중한 반면, 외환위기 이후에는 소프트웨어, 온라인 서비스, 휴대전화 등 창조적인 산업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상당수 기업들은 기존 제조업에 적용됐던 군대식 기업 문화를 고스란히 유지했다. 삼성의 경우에도 ‘삼성 스타트업’이라는 사내 정책을 통해 기업 문화를 조금이라도 독립적으로 만들어보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구식 문화가 뼈대를 이루고 있다. 당분간 큰 변화는 어렵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가 그나마 ‘변수’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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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는 맞는 말, 일부는 틀린 말이라고 본다. 아직까지 전근대적 문화가 뼈대를 이룬 것은 맞는 말이며, 하지만 그로 인해 성장을 못했다거나 그로 인해 뒤쳐졌다는 식의 뉘앙스는 틀린 말이다. 좋으나싫으나, 미우나고우나 삼성과 LG 등 한국의 여러 기업은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재벌 대기업의 조직문화를 꼬집는 글의 대안은 수평적 조직문화, 연공서열폐지 등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한국 대기업이야말로 남들과는 다르게 빨아먹고 누구보다 빠르게 뱉어내는 구조 아닌가. 물론,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식회사 내지 기업의 본질은 종업원이 아닌 주주의 이익에 복무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한국 같은 경우 iMF 이전까지 회사가 종업원을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오히려 따뜻한 곳이 아니었나 싶다.
재벌 대기업을 저평가하고, 조직문화를 까는 반면에 실리콘 밸리에 대한 무한찬양이 이어진다. 그것도 반은 맞는 말이고, 반은 틀린 말이라고 본다. 한국에 비해 실패에 관용적이고, 도전을 장려하는 문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실리콘밸리도 한국만큼 나이 차별과 성차별이 만연하다. 관련 연구도 있다.
https://www.theguardian.com/technology/2017/apr/27/tech-industry-sexism-racism-silicon-valley-study
https://www.ft.com/content/d54b6fb4-624c-11e7-91a7-502f7ee26895
https://www.wired.com/story/surviving-as-an-old-in-the-tech-world/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17/11/20/the-tech-industrys-gender-discrimination-problem
https://www.theatlantic.com/magazine/archive/2017/04/why-is-silicon-valley-so-awful-to-women/517788/
https://www.nytimes.com/2017/08/31/opinion/sunday/silicon-valley-work-life-balance-.html?_r=0
출퇴근이 자유로운 실리콘 밸리 기업의 장점을 이야기하는데, 거긴 클라이언트가 전세계 각기 다른 시간대에 있고, 기업 베이스가 IT기술분야다. 한국 기업은 주 분야도 다르고, 더군다나 클라이언트가 한국 기업이다. 워라밸을 존중하는 한국 구글도 클라이언트가 한국 기업이면 한국 기업의 지옥과 같은 시간대에 맞춰진다는데, 그것부터 고려하자. 9 to 6가 사회 문화의 기둥으로 있는데, 저것만 말하는 건 반쪽짜리다.
마와리 문화가 있는 한국 언론사에게 무작정 뉴욕타임즈와 WSJ나 WP 따라하라는 느낌이다. 시청역과 광화문에 있는 언론사에게 갑자기 실리콘밸리 따라하라는 게 말이나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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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그곳의 논리가 있고, 여기엔 여기의 논리가 있다는 식으로 현재의 부조리를 옹호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스타트업이든 창업이든 뭐든 결국 회사 문화가 가장 중요하고, 좋은 대기업이 좋은 사원을 만들고, 좋은 사원이 좋은 스타트업 내지 창업으로 사회에 기여한다고 생각하기에 기업 문화 개선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마냥 실리콘 밸리를 찬양하면서 그곳을 배우자는 것은 마치 한국 사회에 노르딕 모델 도입하자는 거랑 같은 이야기 아닌가.
내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무한한 찬양과 무한한 자괴 내지 비판이다. '한국이 싫어서' 실리콘 밸리라는 환상에 젖고, '실리콘 밸리라는 환상'에 젖어 한국이 싫어지는 이런 현상 말이다. 문제에 대한 정확한 해결방안은 정확한 인식에 있으며,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선 정확한 상황판단이 필요하다.
2012년 전후엔 노르딕 모델이 한국을 휩쓸었고, 최근엔 실리콘밸리가 한국을 휩쓰는 듯하다. 내 감상은 처음엔 "오, 역시"였다가 "감당할 수 있겠어(라이즈 톤)" 이었다가 "그냥 적당히 뽕에 취한 건가" 정도로 바뀌었다. 오히려 저런 환상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차라리 일본이나 대만이나 싱가폴을 열심히 뒤지는 게 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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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생각이 든 계기는 모든 조직문화는 결국 그 사회문화의 산물이란 점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개선할 의지가 없는데, 기업한테 알아서 개선하라는 게 말이 되나.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두 곳 모두 협력하면서 나아져야 하는데, 모든 원죄를 기업에게만 떠넘기는 건 좋은 원인 분석이 아니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듯, 결국 한 놈만 완-즈이 개새끼인 경우는 의외로 별로 없다. 한국의 부족한 사회보장제도는 결국 세금이 부족해서 문제인 거고, 특정 계층의 세금 저항도 그 원인 중 하나 아닌가.
별개로, 한국에서 가장 세계화되어야 하는데 세계화되지 않은 곳은 대학교와 대학원이다. 한국어 논문은 취급도 안해주고, 해외에서 박사를 하거나 영어 논문 퍼블리쉬 개수로 평가하는 마당에 정작 대학(원) 문화는 지극히 동아시아적 아닌가. 글로벌지수를 평가하면서 정작 글로벌한 문화는 없는 느낌이다. '명문대'라 불리는 유수의 대학도 하루가 멀다하고 문제가 터지니까 말이다.
물론, 대학교와 대학(원)생 역시 사회의 산물이니 다같이 노-오력해야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