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현모 May 12. 2016

<Gravity>

치유계 끝판왕

    누구나 한 번쯤 "어?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란 생각을 한다. 가 본 거리가 어디선가 본 거리 같고, 이 사람과의 대화가 어디선가 들었던 대화 같은, 그런 느낌말이다. 그 느낌을 영어로 'Deja-vu', 한국어로 '기시감현상'이라 부른다. 다음 사전에선 '처음 해보는 일이나 처음 보는 대상, 장소 따위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영화 Gravity(그래비티)는 하나의 데자뷰였다.


    '우주 조난을 당한 박사와 항해사의 생존기'라는 간략한 줄거리의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시종일관 관객을 압도한다. 아바타로 시작된 3D영화가 그래비티에서 그 절정을 맞이했다. 우주 위성의 잔해, 광활한 우주 그리고 티끌만한 인간의 모습을 3D효과는 물론이요, 웅장한 소리를 통해 구현한다.



  직관적 줄거리에 압도적 비주얼로 중무장한 영화를 90분 간 겪다보면 누구나 이 영화는 '볼거리'밖에 없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은 바로 '메시지'에 있다. 그간 나온 헐리우드 SF영화가 빈약한 주제의식을 풍만한 특수효과로 '감췄'다면, 그래비티는 특수효과를 통해 메시지에 '보색효과'를 더했다. 화려하지만 산만하지 않은 특수효과가 관객으로 하여금 간략하고 감성적인 메시지에 집중을 하게 했다.


    자식을 허무한 사고로 잃은 라이언 스톤은 하루하루 무력한 생활을 보내다가 NASA에 지원해 우주로 오게 된다. 그녀에게 우주는 '도피처'다. 무중력 상태의 우주에서 그녀를 괴롭히는 것은 없다. 완전한 고요에서 그녀는 조용히 침전한다. 그녀는 삶의 이유를 모른다. 그녀에게 삶은 죽지 못해 사는 그저 그런 시공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에게 삶의 열망을 불러일으킨 건 무엇도 아닌 '죽음' 그리고 누군지 모를 '아난강'이었다. 죽지 못해 살고 있던, 사회적 동물로서의 '죽음'을 미리 맛 본 그녀에게도 생물학적 '죽음'은 공포였다. 그 공포 끝에서야 그녀는 삶의 의지를 불태운다. 그런 그녀의 열망은 '맷'으로 형상화된다. 'Sit back and Enjoy your run' 말을 남긴 맷. 삶이란 달리기에 이유는 필요 없다. 우리는 존재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달리는 거란 맷의 말은 그녀 생의 불꽃을 다시 태운다(* 틀린 대사일 수도 있음).



    외딴 우주에서의 '고독'을 치유해준 건 누구도 아닌 타인, 우연찮게 라디오에 잡힌 이누이트족 '아난강'이었다. '지구'에 사는 아난강이 '우주'의 스톤에게 희망을 준다.  '우주'는 그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뿐, 그녀를 치유해주지 못 했다. 오히려 그녀를 더 병들게, 외롭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녀는 '우주'에서 '지구'로, '침전'이 아닌 '상승'을 향한다. 지구에 추락한 그녀는 지구 가장 깊은 곳인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다. 자신의 발로 한 걸음 한걸음 육지로 향한다. 그렇게 그녀는 '육지'위에 굳건히 선다. 그 굳건함은 개인을 뛰어넘어 집단으로 집단을 뛰어넘어 '인간'의 올바른 자세를 보여준다.


    '그래비티'를 보자마자 '에반게리온'이 떠올랐다. 당시 일본의 사회문제였던 '외톨이'에게 '세상으로 뛰어나와라'라는 메시지를 던지던 만화(웃기게도 그 만화에 빠져 외톨이가 된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았다고 한다). 에반게리온과 그래비티는 일맥상통한 메시지를 갖고 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오라!' 는 메시지를 던진 에반게리온처럼, 그래비티도 지친 자들에게 한 마디를 던진다. ''Sit back and Enjoy your run'. 삶의 주변에서 중심으로 돌아오라는 이 메시지가 구구절절하게 들려온다. 가슴에 꽂히다 못해 중심으로 이끈다. 그토록 이 영화의 메시지는 강력하고 묵직하다.



    이 세상엔 60억 개의 외로움이 있다는 말처럼,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고독하고, 상처받는다. 그럴수록 사람은 문을 닫고 자기 자신을 가둔다. 멀리 떨어져 있음은 상처를 주지 않을지언정 그 상처를 치유시켜주지 못 한다. 오히려 그 상처는 곪고, 썩고, 짓무른다. 최고의 살균은 햇빛이란 말처럼 사람의 상처는 사람에게서만 치유받는다. 아프면 아플수록,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사람은 밖으로 나가고 문을 열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사람의 상처에 딱지가 앉고, 새 살이 돋는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 본 글 051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