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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Mar 08. 2018

단수는 약하고 복수는 강하다.

아마도.



인도 오르차를 여행할 때다. 오르차는 낙후되고 외진 지역이다. 마을 중심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있는 벌판에서 독수리가 소의 시체를 쪼아 먹었고, 현지인은 그 벌판에서 축구를 했다. 영어보다 힌디어가 많이 쓰였고, 인터넷도 잘 터지지 않았다. 이렇다보니 한국인은커녕 외지인이 나밖에 없었다.


어린 아이들이 나를 가장 신기하게 보았다. 가게에서 저녁을 먹고 인도 전통차인 짜이를 들고 길거리를 배회했다. 10살 내외로 보이는 인도 어린 아이 한 명이 보였다. 조용히 나를 따라왔는데, 곧이어 그 아이의 친구들도 따라붙었다. 멀찌감치 서서 자기네끼리 수군대는 그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서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르겠지만, 결심한 눈빛이었다. 아이들은 내게 다가와 영어로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고, 왜 왔냐,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다. 길거리에서 적당히 대화를 나눈 우리는 셀카 한 장을 찍고 헤어졌다. 


단수는 약하지만 복수는 강하다. 함께 있을 때 두려운 일이 없었다는 청춘 영화의 문구처럼, 그 아이들도 혼자 있을 때는 내게 말 걸지 못했다.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세 명이 되자 말할 수 있었다. 미투 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피해자 개인은 권력이 무서워 말하지 못했지만, 수십 명이 비슷한 일을 겪었기에 ‘나도 고발한다’며 얼굴을 비출 수 있었다. 


혹자는 왜 혼자서 고발하지 못했냐며, 이제 와서 고발하냐고 묻는다.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보부아르의 말처럼, 피해자가 말하지 못한 이유도 사회에 있다. 미투를 외치면 무고죄로 답하고, 당했다라고 외치면 꽃뱀 아니냐고 묻는 사회에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동료가 없이 동떨어진 개인도 피해를 고발할 수 있고,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어야만 한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대학에 성평등센터가 있고, 직장 내 성희롱 방지가 법으로 의무화됐지만 여가부에 따르면 여성 5명 중 1명이 성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단순 제도 미비가 아니라 교육 부재가 원인이다. 성범죄는 권력의 문제라고 말한 공익제보자 임은정 검사의 말처럼, 성범죄는 성인 동시에 권력 문제다. 하지만 초등학교부터 받는 성교육은 피임 등 재생산에 국한되어 있다. 의무교육 시기에 권력 관계에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지인이 문제를 겪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상세히 알려줘야 한다. 


혼자 있던 오르차의 아이가 내게 말걸지 못한 이유는 용기 부족만이 아니다. 말을 걸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경험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말걸 수 있는지 모른다. 성폭력이 묻혀 있던 이유도 비슷하다. 배우지 않았기에 어떻게 해야 이 권력 관계 하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지,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제도를 이용해야 하는지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은 좋은 선배, 좋은 후배 되는 법이 아니라 불쾌하지 않게 대화하는 법과 제대로 문제 제기 하는 법이다. 미투 운동의 종착지는 동떨어져 있는 개인도 성범죄를 고발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 종착점에 다다르기 위해 교육이 징검다리가 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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