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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Jul 12. 2018

배달의 민족이 보여준 디자인 경영 / 스타트업

한명수 디자이너 강연 후기

오늘 배달의 민족 한명수 디자이너의 강연을 들었다. 아래 글은 해당 강연을 듣고 내가 끄적이는 글. 



디자인이란, 백종원 만능간장 


무난한 문과이던 내게 디자인이란 단어는 백종원 만능간장과 같았다. 사용자, 디자인, UI/UX 등 요즘 유행하는 단어는 진짜 온갖 데나 갖다 붙여도 말이 되는 그런 특징이 있다. 그 말인 즉슨, 그 말에 대한 정의가 아직까지 세밀하고 엄격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내 머리 속에 디자인은 그림이었다. 2D에 그림을 그려 무언가를 표현하고, 3D로 캐릭터를 만드는 게 디자인의 전부였다. 이때의 나는 읽고 쓰는 일이 내 삶의 업이라 생각했고, 기꺼이 누군가의 확성기이자 펜이 되고자 했다. 미스핏츠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글쓰기 연습이었다. 


아이러니하게 디자인에 대한 관점이 깨진 시기는, 그렇게 글을 쓰고 다양한 글을 읽기 위해 참여한 미스핏츠 활동 덕분이었다 (뒤에 나오는 필리즘, 청춘씨, 알트, 뉴스랩까지 포함). 디자인이란 단어 안엔 브랜드 로고, 어투, 홈페이지 UI 등이 있지만, 무엇보다 내게 와닿은 디자인은 바로 시스템 설계다. 


미스핏츠를 하면서 조직 구조에 대해 고민하(는 척을 하)고, 알트 등을 하며 홈페이지 레이아웃을 고민하(는 척하)고, 내부 문서 틀과 슬로건 등을 짰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 모든 게 디자인이었다.  


아, 나는 설계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디자인이란? 설계다. 


미스핏츠는 초창기에 글쓰는 사람만 있었다. 그러다가 사진팀이 생기고, 영상팀이 생기고, 카드뉴스 팀이 생기고 뭐가 많아졌다. 심지어 카드뉴스 하나를 만들어도 서로 케미가 맞는 조합이 있으니, 그런 조합을 최대한 발굴하기 위해 처음에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다. 예를 들어, 내게 포토샵을 가르치려했는데 이건 실패하고 결국 사람 하나를 붙였다. 이것도 조직도 아닌가!


한명수 디자이너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지금 우아한 형제들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배달의 민족과 관련된 모든 광고, 제품 디자인을 도맡을 것 같지만, 그걸 넘어선 또다른 무언가를 챙기고 있다. 


바로, 조직문화다. 실제로 구글에 ‘한명수’를 치면 조직문화와 관련된 동영상과 인터뷰 기사가 나온다. 실제로 많은 기업에서 배달의 민족의 조직문화를 탐방하고자 한명수 디자이너에게 연락한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5wK6LtiLsik


한명수 디자이너는 조직 문화와 우아한 형제들의 여러 광고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 대화 중에 “디자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걸 보이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여기 들어오게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철학이 있어야 해요”라고 했다. “너무 매스하게 다가가지 말고, 니치한 타겟 하나를 무너뜨리면 그 사람이 바이럴이 되어서 우릴 알아봐주고, 매스하게 퍼져요”라고도 했다.  


이걸 좀만 그럴싸하게 풀어보자면, 결국 디자인은 커뮤니케이션 경로를 설계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이 내게 다가오게 하는 과정이며 그 과정을 어떻게 잘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제품 마케팅이라면, 제품의 핵심 기능을 어떻게 알릴지를 설계하는 일이며 이 과정에서 프로모션, 지면 광고, 영상 광고 등을 짜는 일이다.  


디자인 경영이란? 조직의 핵심 가치를 퍼뜨리는 일.  


한명수 디자이너는 우아한 형제들의 디자인 경영에 대해 이야기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모든 책임은 결정하는 사람이 지며 그 사람음 바로 김봉진 대표라는 사실이다. 또한 의사결정은 매우 TOP-DOWN이지만, 그 이외의 모든 것은 수평적으로 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상급자가 하급자 테이블에 가서 보고를 듣고, 컵 설거지는 알아서 하고. 이런 업무 방침을 사람들이 모여서 그저 달달달달 외웠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읊어보자. 디자인은 사람들로 하여금 내 가치에 공감하게 만드는 과정이며, 그 과정엔 개인의 철학(핵심 가치)이 필요하다. 여기에 기업 문화를 섞고, 대표 카리스마가 큰 영향을 끼치는 스타트업이라는 특징을 넣는다면? 


즉, 김봉진 개인의 카리스마가 배달의 민족의 정수라는 뜻이다. 그 기업에서 기업문화 커뮤니케이션이라면 김봉진이 바라는 가치를 내부 구성원에게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달할지에 대한 설계다. 비즈니스 의사결정은 탑다운으로 이뤄지지만, 내부 구성원이 지치지 않게끔 인간관계는 수평적으로 다가가며 애사심과 소위 주인의식이 생기게끔, TV광고를 보면 “어 우리회사 광고다”라는 말이 나오게끔 회사 모든 결정을 내부 구성원에게 가장 먼저 알린다고 한다. 한명수 디자이너는 “우리 회사 일은 우리 직원이 가장 먼저 알아야죠. 내 팀 이야기를 남의 입 통해서 들으면 기분이 좋겠어요”라고 했다.  


다시 한 번, 디자인이란 설계다. 


이런 기업 문화를 내부에 퍼뜨리기 위해, 내부 구성원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여러 문구를 스티커로 붙였다고 한다. 너도 회사다,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 퇴근할 때 인사하지 말자 등등의 슬로건이 그 예시다. 한명수 디자이너는 이 부분을 언급하면서 “내부 구성원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슬쩍 보이는 곳에 붙였어요”라며 그 모든 일을 김봉진 대표와 함께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김대표와 한명수 디자이너는 분명히 1) 구성원들이 오고 다니는 길목을 분석했고 2) 해당 길목에 맞는 슬로건을 작성했고 3) 가장 어울리는 곳에 붙였을 거다. 관찰력이 뛰어나야 한다. 


사원증 역시 신기했다. 배민의 사원증은 “본인이 남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과 “본인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찍어 담는다고 한다. 이유는 그 사원증을 보면서 서로 웃을 수 있고, 말을 한 마디라도 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아지 키우세요? 워, 누구예요? 등등. 어색한 사이에 말을 한두 마디 꺼낼 수 있고, 그 때문에 더 좋은 분위기가 조성된다. 사원증에 대한 재정의와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용에 대한 훌륭한 상상력.  


물론 이건 정말 사소한 부분일 거다. 조직도를 개편하고, 하나하나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기업가치를 전파하기 위한다. A라는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조직을 끊임없이 개편하는 것은 결국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편과 똑같은 작업이다. 다시 한 번, 디자인은 설계다. 가장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통로를 만드는 일 말이다. 


한명수 디자이너는 사용자가 보내준 다양한 문구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그들과 관계 맺기 위해 한국민속촌, TV광고, SNS (미디어) 를 활용했고 그걸 통해 깊은 관계를 맺어 일종의 ‘팬덤’을 가졌다고 한다. 여기서 인상 깊은 점은 관계를 맺기 위해선 단순히 무언가를 줄 게 아니라, 그들이 이 관계에 참여하게끔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개념의 커뮤니케이션. 단순 사용자 참여 유도가 아니라 그들과 진중한 관계를 맺기 위해선 상상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한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면 그저 행복한 회사로 들리겠지만, 이정도 꾸려주면 진짜 일 개빡세게 한다는 향이 풀풀 풍겼다. 그래도 다른 쓸데 없는 걸로 고민하지 않게 조성해놨으니 퍼포먼스를 바랄 수밖에 없다.  


한명수 디자이너는 곧 있으면 1,000명이 넘을 배달의 민족 구성원을 위한 조직 디자인은 또다른 문제라서 걱정된다고 했다.  


개인 기업의 시대. 


내 눈을 가장 잡아끈 문구는 “나도 회사다”였다. 보통 사람들이 “너희 회사 어때?”라고 할 때, 누구도 기업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같이 일하는 사람에 대해 말한다. 아, 뛰어난 관찰력. 결국, 나 역시 회사의 구성원이며 누군가의 개새끼가 될 수 있기에 서로 조심하자는 뜻이 아닐까.  


배달의 민족이 김봉진 개인 카리스마와 철학에 좌지우지된다면, 결국 회사는 김봉진이다. 이걸 기업에 대입하자면, 결국 개인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어필하는 방법은 결국 스타트업이다. 하다못해 유튜브 채널도 크리에이터의 카리스마에 좌지우지되는데, 스타트업은 얼마나 그렇겠는가. 물론, 모두가 스타트업을 할 수 없으니 투잡, 쓰리잡, 내지 프리랜서로서 회사로서 규정되지 않는 직업을 가지면서 개인의 카리스마를 내뿜을 수 있겠다. 


흥미로운 개인의 시대엔, 결국 개인의 철학과 카리스마가 중요하다. 회사는 책임지지 않기에, 직장 바깥으로 행군에서 쓰러지지 않기 위해 개인을 갈고 닦고 이걸 가장 잘 퍼뜨릴 수 있게끔 본인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뜻 말이다. 스스로 경영하라는 말은 지금에서야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나를 어떻게 설계할래?


그렇다면, 개인의 철학을 가장 잘 퍼뜨리고 타인의 공감을 살 수 있는 최고의 설계는 무엇일까? 다양한 도구와 기술의 시대지만, 그럼에도 글이 아닐까 싶다. 가장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에, 가장 이해하기 쉬우며, 어쩌면 사고력와 논리력의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공감받는 글쓰기. 물론, 이건 아주 기본이고 말이다.  


나라는 브랜드를 설계하는 가장 기본은 무엇일까? 내 근간은 무엇일까? 계속 생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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