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현모 Jul 23. 2018

비인간적 인간 세상

소셜 공간에 있을 때, 넷에 있을 때, 아주 가끔, 아니 종종 두려움에 몸서리가 처진다. 죽음을 희화화하고, 기꺼이 죽어야 할 사람이었다고 저주한다. 죽어도 싼 사람이며, 그의 이름이 조롱의 단어로 쓰여도 괜찮고 기꺼이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의 말과 글에 담긴 그 저주와 폭력성 단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그 감정의 결들이 느껴질 때마다 두렵다.


나에겐 너무나 관대하고 타인에겐 너무나 엄격한, 너무나 엄격한 나머지 잣대가 폭력이 되는 이 공간에서 남는 건 우리 각자의 정의, 아니 기꺼이 타인을 욕하고 저주하게 만드는 자기합리화뿐이다. 남은, 남겨진 사람에 대한 존중과 예의는 아주 저멀리 갖다 버리고 자신의 정의를 위해 "이정도는 괜찮아"라며 합리화하는 사람들. 


두렵다. 만약 내게 안좋은 일이 생긴다면, 사람들은 댓글과 페북에 "걔는 그럴 만했어"라며 낄낄대고 그제서야 "사실 걔 알고 보면.." 이렇게 말할 텐가. 누군가의 불행을 유희로 소비하고, 누군가의 죽음을 스트레스 해소 통로로 사용하는 시대에 나를 드러내는 일은 너무나 힘들 뿐이다. 아니, 나를 드러낼수록 약점이 되는 세상에 그 누가 창의성과 개성 그리고 자아를 말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스스로를 감추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말로는 서로에 대한 연민과 이해를 말하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겐 그 누구보다 엄격하고 강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로 가득찬 세상에 공감은 공이며, 연대는 허울이다. 이 세상이 인간적이고 사람 사는 곳이라면, 그 인간과 사람은 분명히 비인간적이다. 


냉정하고 정확하게 선을 긋는 일이 쿨하고 멋지고 합리적인 것으로 보이며 타인에 공감하는 것이 사치가 된 세상. 얼굴을 내보내고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은 남에게 기꺼이 욕먹는 일을 감수, 아니 욕먹어야 한다.


엄지손가락에 담긴 같잖은 증오는 사이버불링으로, 그저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이버 스토킹으로 괴롭힌다. 소셜에 저런 말을 했기 때문에 해고해야 하고, 나를 무시했기 때문에 욕을 먹어야 하고, 가족은 유명인 내지 공인의 가족이기에 감수해야 한다느니. 정치인이자 공인이기 때문에 그런 욕설도 감수해야 한다느니. 말 같지 않은 말이 활개친다. 사람의 입과 손가락에서 나오는 말과 글인데, 도저히 사람 같지 않다. 


페이스북은 사람을 연결한다고 하고, 인스타는 소중한 순간을 담는단다. 우리의 연결은 서로의 저주로, 소중한 순간을 담은 공간은 가장 사적인 인신공격을 받는 곳이 됐다. 


비단 오늘 일 뿐만이 아니다. 비단, 그들만이 아니다. 손가락은 날 향해야 하고, 분노의 눈초리는 거울을 향해야 한다. 나라고 다를까. 

작가의 이전글 다시 쓰는 저녁이 있는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