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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Jul 26. 2018

삶이 작아보일 때

"현모야. 영어 신문 오더라? 한글 신문은 안되니? 영어 배우기엔 늦어서 말이야"


작년 말이었나, 올해 초였나. 집에 들어온 내게 아빠가 긁적이며 말했다. 무슨 말이지? 물음표 가득한 눈빛으로 아빠를 바라봤고 다시 신발장 앞을 봤다. 코리아 타임즈. 아니, 난 내 돈 내고 영자신문 구독하지 않았는데 대체 무슨 일이지? 뇌를 긁었다. 시간을 되돌이켰다. 대체 무슨 일이지. 아, 맞다. 한국일보. 


알고 보니 한국일보가 독자권익위원인 내게 한국일보를 구독시켜줬는데, 한국일보 대신 영자신문 코리아타임즈가 왔다. 


아, 그게 잘못 됐구나. 난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아마 다음 날부터 신문이 제대로 왔다. 어처구니없던 영자신문배달은 그대로 멈췄으나 내 생각은 깊어져만 갔다.


아빠는 애증이요, 엄마는 연민이었다. 내 존재는 죄악이었다. 원죄. 자식은 모든 부모의 원죄다. 아주 어릴 때의 기억부터 지금까지 그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블로그를 뒤적이면, 그런 글이 자주 보인다. 딱히 학대받지도 않았고, 딱히 힘든 가정도 아니었다. 그저 엄마는 첫째 딸로서 꿈을 접고 교직에 진출했고, 외할아버지라는 짐을 덜어내니 아빠라는 짐을 맞이했다. 아빠는 첫 단추, 그러니까 그 망할 놈의 첫 단추를 잘못 뀄을 뿐이다. 


그 장면. 그 망할 놈의 장면. 아빠가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이제 와서 영어 배우기엔 늦어서 말이야"(정확히 기억은 안난다) 말했던 그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고장난 게 있으면 쉬이 고쳐주고, 무엇이든지 대답해주고, 누구보다 운전을 잘하던 아빠가 없어졌다. 무언가 부끄럽다는 눈빛으로 말을 하던 아빠에게 난 속으로 "제발 그러지 말라고. 그만. 그만 무너지라고" 끊임없이 외쳤다. 겉으론 퉁명스럽게 "응, 알겠어. 알아볼게" 라고 말했지만. 


아, 아빠가 늙었구나. 산 같은 애정과 불 같은 증오가 섞인 애증이었던 그 사람은 너무나 늙었다. 내 젊음과 평행하는 그 사람의 늙음이 이토록 애처로울 줄이야. 그만. 제발 그만. 제발 그만 늙어달라고, 더이상 초라해지지 말라고, 내 기억 속에 영웅은 아니었을지언정 초라하지 않았던 당신이 이러면 나는 죄책감에 휩싸인다고. 당신의 주름 사이에 피어난 나란 꽃이 잡초가 아닐까 걱정하게 된다고. 


한 겨울에 흰눈이 소복소복 쌓이듯이, 아빠의 흰머리는 내 어깨에 쌓인다. 그 세월이, 큰일은 하지 못했을지언정 나를 키웠다고 말하는 그 시간이 내 어깨에 쌓인다. 그토록 무더웠던 1994년에 아빠는 잠실시영아파트에서 나를 안고 사진찍었고, 너무나 더운 2018년에 나는 그 세월이 - 육체노동자로서 끊임없이 일을 한 당신의 그 세월이 - 너무아 목에 매여 글을 쓴다. 


난 울컥하면 검지가 아프다. 오른손 검지가 둘째 마디가, 첫째 마디가 너무 아프다. 아마 그날 난 검지를 하루종일 싸잡고 있었다. 다른 감정이지만, 난 지금 검지를 잡고 있다. 이 감정은 무엇일까. 부모에 대한 연민과 애증 그리고 내가 가진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스스로에 대한 미안함. 누군가에게 준 상처가, 그 사람이 너무 아파서 생기는 소용돌이. 감정의 소용돌이를 풀어내는 과정. 나는 누군가가 그리울뿐이다. 그 그리움 속에서 나는 하염없이 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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