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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Nov 21. 2018

외계인처럼 살자

장기하는 느리게 걷고, 우리는 외계인처럼 살자

요가는 참 변덕스럽다. 비슷비슷한 몸뚱아리라도, 되는 자세가 다 다르다. 같은 180/70이라도 누구는 전골 자세가, 누구는 후골 자세가 잘 된다. 근육이 많다고 잘 되지도 않고, 없다고 해서 유리하지도 않다. 근육이 많으면 잘 안 구부려지고, 없으면 버틸 수 없다. 만능 운동맨인 인선누나도 안 되는 자세가 있다.  


그러다보니 “야 넌 그게 안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내 몸뚱아리로는 너무나 잘되는데, 저 친구는 반의 반의, 반도 못한다. 내 눈에 뼈가 없는 연골 기인으로 보이는 우리 요가 선생님도 유난히 안 되는 자세가 있단다. 내 몸으로 잘 된다고 해서 모두가 잘 되는 건 아니다. 그게 안되냐는 왈가왈부가 타인에게 외계어로 들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사실, 내가 된다고 해서 남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페이커가 챌린저 찍었다고 내가 챌린저 되리? 근데 참 말이 많다. 내가 보기엔 저런데, 왜 너는 이런 관계를 가지고 이렇게 만나고 있냐고.  


왈가왈부는 시선이다. 타인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근데, 참 웃긴다. 내가 어떻게 생기든, 내가 뭐가 되든 안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누군가의 관계를 평가한다. 한쪽이 돈이 많으면 그걸로 수군수군, 나이 차이가 있으면 그걸로 수군수군, 나라면 못 만날 거 같은데 만나는 걸 보니 어쩌고저쩌고 구시렁구시렁. 저런 사람을 만나야 한다더라, 조건을 봐야 한다더라, 저런 사람은 만나면 안된다더라, 저런 직업을 가진 사람은 만나면 안된다더라 어쩌고저쩌고.  


한 아나운서가 재벌가 형을 만났다. 그 아나운서는 예전 방송에서 배우자가 돈이 없어도 큰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어라, 근데 재벌가를 만나는 걸 보니 저 아나운서는 거짓말을 했고, 돈 때문에 저 남자를 만난 거구나라고 왈가왈부한다. 그 둘이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사랑을 했고, 둘 사이의 감정이 나이와 배경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깊었냐는 묻지 않는다.  


관계를 평가하더니, 이제 선택을 평가한다. 2년 만에 퇴사하는 걸 보니 책임감이 없구나 어쩌고저쩌고. 그 경쟁률을 뚫고 올라간 여자 아나운서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의 선택에 대한 존중은 없고, 어쩌고저쩌고 말만 한다.  


개인의 관계는 줄자로 이리저리 재고 평가한다. 개인의 선택엔 수많은 짐을 올려둔다. 개인은 부족하고, 집단은 과잉된다. 모두가 설날과 추석의 큰집을 싫어하면서, 이런 일만 생기면 너나 할 것 없이 기꺼이 큰엄마와 큰아빠가 되어 서로를 평가한다. 자기가 들으면 잘 알지도 못한다고 구시렁댈 거면서, 기어코 말을 덧붙인다.  


누구답게가 아니라 나답게 살아야 한단다. 그냥 자기 생긴 대로 살아야 행복하다고 한다. 자기답게 살라고 독려하는 목소리는 커졌지만 정작 그 사람의 관계나 선택을 존중하는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 내 세게와 너의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 눈에는 이쁜 옷이, 누구 눈에는 돈받아야 겨우 입을까 하는 옷이다. 그 사람이 누구를 만나든, 무엇을 하든 그냥 외계인처럼 멀뚱멀뚱하게 바라봐야 한다. 제발. 처음 보는 외계인처럼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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