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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May 24. 2016

인식

강남역

이번 강남역 사건에 어느 정도의(어떤 형용사를 붙일지 고민했다) 남자들이 불편해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1) 남성이 여성혐오라니! 혐오가 얼마나 나쁜 건데! 난 그렇지 않아!


2) 내가 잠재적 가해자라니! 난 그렇지 않아! 나도 위험하고, 무력하고 그렇다고!


1) 번 같은 경우, 본인을 얼마나 ‘착하고, 완전하고, 틀리지 않은’ 존재로 상정했는지에 크게 영향받는다. 자신을 순수하고, 틀리지 않은 사람으로 생각할수록 본인에 대한 비판을 ‘음해’로 간주할 확률이 높다. 대통령을 봐라(…). 혐오가 얼마나 나쁜지 도덕적 세계관은 있으나, 본인 스스로를 너무나 완전무결한 신으로 간주해서 생기는 일


2) 번 같은 경우, 본인의 현실이 시궁창일지라도 본인 스스로 젠더 권력 관계에서 상위계층임을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 "내 인생이 이렇게 시궁창인데 내가 강자라고?” 이런 심리. 이해할 수 있다. 사실 폭력과 범죄는 죽창이라서 너도 한방, 나도 한방이거든. 다만, 맞을 확률이 남자들이 좀 더 낮다는 점.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점은, 인간 자체가 얼마나 불완전하고 틀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모르는 분들이 꽤 있다는 것. 특히나, 본인 스스로가 ‘정의’ 혹은 ‘나는 관대하다’ 혹은 ‘난 그런 거 안해! 난 정당하다구!’ 등등의 말을 하는 순진무구순수캐릭터로 자신을 착각한 사람들이 꽤나 많다. 뭐, 페미니즘 글로 진짜 유명한 사람도 까고 보면 조오오오오오온나 폭력적이고, 스토킹하고, 언피씨한 게 현실인데(누군지 물으면 그말싫). 저런 도덕적으로 항상 옳은, 완전무결한 캐릭터가 어디 있냐.


두번째는, 파괴가 진화의 시작이라는 에반게리온 파의 문구처럼(에반게리온 극장판은 파괴만 있었지 진화는 없었다^^ 보지마시길), 인식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점. 의외로, 젠더 권력 관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뭐, 페미니즘이나 권력 이런 논의가 대중에게 퍼진 시점이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것이지만. 사실, 권력은 일상이다. 우리가 맺는 관계는, 그러니까 사적관계와 공적관계 전부, 충분히 정치적이다. 권력관계는 당연하다. 당장 우리 중학교만 해도 운동능력이 권력아니었는가. 다만, 그런 권력관계에 대한 논의가 교실에서 사회로 진화하지 못해서 최근 페북의 그지같은 반응들이 나왔겠지. 


어쨌거나 인식과 드러내기는 모든 일의 시작이다. 젠더 권력 관계를 인식하고, 조심하는 일이 사소하지만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평소에 인식하지 못한다. 특히, 상위계층에 있는 분들은. 강남역 사건은 문제라기보단, 문제가 낳은 결과다. 이 결과에서 뭐 어떤 새로운 새싹들 - 그러니까 일베 행게이들 말고, 논의들 - 이 나올진 모르겠지만, 나오는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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