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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Dec 18. 2018

도시화 이후에, 사회주의.

<도시화 이후의 도시>

서울은 무슨 색일까


내가 사는 도시는 어떤 색깔일까. 하루에도 몇 번이고 마주하는, 아니 내 평생 주야장천 마주하고 사는 공간이지만 서울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자 난 강동구를 벗어났다. 강동구를 벗어나니 송파구가, 성북구가, 서대문구가 보였다. 그렇게 내 동네는 강동구에서 서울로 넓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이 가까워지자 그제야 서울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참 여러 단어와 얽힌다. 부동산, 박정희, 재개발, 갭 투자, 그린벨트, 욕망, 이선희, 조용필, 김건모까지. 예전에 필리즘을 시작했을 때, ‘당신에게 서울이란’을 물었다. 누구는 꿈을 이루기 위해, 누구는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누구는 그저 서울에서 태어났기에 서울에 머물렀다. 멀리서 보면 전부 성냥갑 같은 아파트가 모여있는 서울이지만, 그 안에 있는 성냥의 모양은 각기 다르다. 


서울, 정말 대단한 도시다. 동아시아, 아니 전 세계에서 서울만큼 발전한 도시가 없다. 서울보다 고풍스러운 도시는 있을지언정 메트로폴리스는 없다. 끽해야 뉴욕? 


빠르게 발전한 만큼, 여러 문제도 있다. 지속가능성, 주거빈곤, 청년 주거,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디자인 등등 말이다. 서울은 빠르게 발전하고, 집값은 꾸준히 올라가고, 우리네 지갑은 그대로다. 서울의 한 축으로 생계활동을 잇는 노동자 중 적지 않은 수가 서울에서 쫓겨나 경기도로 이동한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교통비는 늘어난다. 


도시화 이후엔 사회주의


<도시화 이후의 도시>는 자본주의 도시가 겪는 여러 문제의 대안으로 사회주의 도시를 논한다. 정확히, 사회주의 도시의 이상을 이야기한다. 책에 따르면, 사회주의 도시는 주거와 생산 그리고 도시와 농촌을 결합한 모델이다. 소비와 생산이 분리된 산업화 도시와 대비되며 지속가능성 관점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주장한다. 도시가 산업화되고 주거비가 빠르게 올라서 빈부격차가 커진 산업화 도시에 비해 사회주의 도시는 그 격차가 적다고 말한다. 


실제로, 사회주의 국가들은 도시를 설계할 때 도시의 공공성과 평등한 접근성을 중요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도서관과 광장 건설을 적극적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사회 전체의 관점을 강조하다 보니 공평하게 나누는 게 먼저였을까. 어쩌면, 이런 개발방식은 사회주의 때문이 아니라 독재 체제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저자는 도시를 자본 축적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자본주의 도시와 대비된다고 말한다. 


사회주의 관점에서 접근한 도시 이야기라 흥미로웠다. 내가 태어나는 해에 소련이 망해서,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국가를 제대로 접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더 흥미로웠다. 도시는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지, 사회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다. 그래서 더 신기했다. 


난 지역공동체가 제일 무서워


지속가능성 관점에서 사회주의 대책이 도움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수정자본주의 사회에 살지 않는가. 하지만, 저자의 시선이 아파트의 거주 문화에 대해 비판적이고, 공동체와 마을 등에 너무 낭만적이었다. 저자는 "지금의 아파트 단지에는 마을 공동체나 골목길, 자투리 마당처럼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할 공간이 없다"라고 한다거나 "복도가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거나 어른들이 이웃을 만나는 공간처럼 쓰였지만 이젠 그것마저 없앤다"라고 아쉬움을 표한다. 


여기서 나와 대비된다. 난 마을로 대표되는 소규모 공동체 문화가 싫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거주하는 지역을 기반으로 구성된 지역 사회 커뮤니티 활동에 상당히 부정적이다. 광역시라면 모를까, 구와 동 단위 활동은 정말로 싫다. 소규모 공동체는 폐쇄적이고, 그 집단의 질서와 문화를 강요받는다. 


서울시를 중심으로 모인 청년 및 직능 단체라면 모를까, 마을 단위 단체 활동은 더욱 꺼려진다. 내가 자유롭게 떠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너무나 크다.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사이'는 여러 번 겪었지만, 그게 주거 지역으로 구성된다면 너무나 답답할 듯하다. 우리 세대는 이전보다 더더욱 자유롭게 접속하고 단절하는데, 지역은 그 자유로움이 없다. 마을 문화는 더욱 그렇다. 내가 귀농과 탈서울 그리고 사람 없는 동네를 싫어하는 이유기도 하다. 난 군중 속에서 자유롭게 접속하는 커뮤니티가 좋지, 서로밖에 없는 커뮤니티는 너무나 싫다.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동의할 수 없었다. 아파트가 그렇게 나쁠까? 이 기사에 따르면, 아파트의 건폐율은 15% 미만이며 나머지 공간을 녹지와 주차장으로 활용한다. 서울이라는 정해진 땅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가장 효과적으로 모아두기 위한 수단이 아파트다. 원전 사태를 막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원전 기술 투자고, 도시 내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좋은 정책은 개발이라 생각하는 나라 그런지 더 물음표가 떴다. 


느슨한 도시를 위해


난, 작은 마을보다 거대한 동네가 좋다. 이웃이라 불리는 애매한 공동체보다 느슨한 개인의 거주지 연합이 좋다.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고, 복도에서 이웃을 만나는 풍경보다 조용히 내 방에서 내 삶을 꾸리는 풍경이 더 좋다. 지역공동체와 마을공동체라는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연으로 묶이는 것보다 서로의 삶에 철문만큼 거리를 둔 아파트 거주민이 좋다. 아파트는 내가 사는 곳이고 쉬는 곳이다. 이웃과 마을 그리고 공동체라는 낭만주의적 시선보다 개인주의적 시선이 더 편하다. 하드 드라이브도 클라우드로 바뀌는 판에, 고정된 공동체를 너무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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