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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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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Jan 12. 2019

현장이 지옥이라면, 탈출하면 낙원일까

와이씨. 꿈에 선배가 나왔다. "야 현모야 ㅎㅎ 조회수 왜 이따구냐 어?"라고 나를 살벌하게 쪼셨다. 난 선배를 많이 무서워하긴 한다. 선배한테 이 이야기를 하니 일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건 니 시기에 좋은 일이라고 했다. 내가 100% 기획하고 제작하는 영상이라면 모르겠지만, 클라이언트로서 어떻게 콘텐츠를 붐업시킬 수 있을지 물었다. 작가와 피디와 마케터를 들들 볶아야 하는데 하필 생방송이라 그것도 어렵다. 보릿고개를 어떻게 버텨야 하나.


이 라이브가 망하는 것보다 두려운 건 남 탓하는 내 모습이다. 피디가, 작가가, 마케터가, 출연진이 어쩌고 하면서 나는 뒤로 숨지 않을까 말이다. 잘됐을 때 뿌듯할 거라면 망했을 때 부끄러워하는 것도 내 몫이다. 숨고 싶어 하는 건 본능이라 그 본능과 싸워야 한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고들 한다. 가츠는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했다. 난 후자다.


기존보다 큰 곳에서 일해서 좋은 점은, 큰 곳이 무엇을 기준으로 돈을 얼마나 쓰냐는 걸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산업 규모는 이 정도고, 이 정도 산업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이런 루트로 판매가 진행되고 등등. 내가 굴릴 수 있는 돈도, 책임도 훨씬 커졌다. 무엇보다 바깥에서 묘사하는 산업과 실제로 굴러가는 산업은 괴리가 크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직접 만드는 곳이 아닌 이상 나와 내가 있는 곳을 동일시할 이유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올라탄 어깨가 그리 낮지만은 않다는 사실은 내가 여기서 굴릴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걸 상기시킨다. 내 명함에 박혀있는 로고가 내가 아니며, 그저 잠시 빌린 이름이라는 건 잊지 말되, 여기서 보이는 풍경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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