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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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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Feb 18. 2019

난, 엄마아빠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부모란 걱정을 사서 하는 사람이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는다고, 살이 빠지면 살빠진다고, 살이 찌면 살찐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걱정이 직업이라면, 적어도 이분들의 자식에 대한 직업정신 하나는 마에스트로와 마이스터라는 단어가 부끄럽지 않다. 아니, 차고 넘친다. 




자식에게 부모의 걱정이란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짜증스럽기도 한 그런 짐이다.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만큼 늘어나는 걱정이란 애정의 증명인 동시에 내가 안고 살아가야하는 부담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랬다. 몇 년 전까지는.




어느 때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부모님이 나를 걱정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미안했다. 부모란 직업의 패시브 스킬이 걱정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24시간과 마음은 노코스트 패시브 스킬에도 비용을 쓴다. 




왜 미안할까 생각해보니, 부모님이 날 신경쓰느라 본인의 행복과 취향을 뒤로 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죄송했다. 60년생의 남자로서, 63년생의 여자로서 쌓아왔을 취향과 감각은 91년도부터 시작된 육아라는 이 지난한 마라톤 때문에 뒤로 가버렸다. 그동안 꿋꿋하게 이겨내온 부모님의 삶에 안타깝거나 애잔하다는 감정은 예의가 아니고 그렇지도 않다. 다만, 내가 그들의 행복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너무나 미안할 때가 있다. 




몇 년 전부터, 난 부모님의 생신날에 항상 그런 말을 한다. 이제, 엄마 아빠가 행복하게 살라고. 엄마 아빠의 선택에 날 신경쓰지 말고 본인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예전부터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너무 미안하다고. 




시집을 좋아하고 소설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책을 선물하고, 조금의 반주를 좋아하는 아빠에겐 두 분이 마시라고 술을 선물했다 (난 술을 겁나 너무나도 심각하게 못한다). 부끄럽게도 이제서야 집에서 독립을 꿈꾸는 나로서는, 모든 의사결정을 나혼자 하는 독단적 아들내미가 그동안 봐주신 부모님에게 할 수 있는 내 나름의 예의이자 최선이었다. 고작 이거라니, 시대가 바뀌어도 아들내미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격언은 틀리지 않았다.... 




내가 1조 원의 자산가가 되거나 세상불멸 초건강한 슈퍼맨이 되어도 부모님은 날 걱정하고 해준 게 부족하다고 죄책감을 가지실 분들이다. 부모란 그런 것 같다. 자식이란 어떤 걸까. 부모를 미워하면서 좋아하고, 좋아하면서 미워하는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 알고보니 그냥 가증스럽고 약은 놈들 아닌가. 그렇게 등골을 뺏어먹고도 너무나 가증스럽고 뻔뻔하게도 "이제 나에게서 독립해, 부모님몬!" 을 외치는 그런 존재. 




나 하나를 불태워도 그들이 젊은 날에 나를 중심에 두고 본인을 주변부에 둔 그런 시절을 갚을 수 없다는 게 가끔은 슬프기도 하고, 가끔은 무섭기도 하고, 가끔은 흠. 그냥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정에 충만해질 때가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x4Y68LO_t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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