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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May 13. 2019

일하는 요가 - 까마귀 자세

부장가 아사나, 한국말로 코브라 자세. 하타요가의 시작점이다. 하타요가는 척추와 하체를 뿌리 삼아 여러 동작을 깊고 길게 하기 때문에 척추 힘이 중요하다. 부장가 아사나는 이 척추 힘을 기를 수 있는 기초 자세다. 기초라고 쉽게 보지 말라. 뿌리를 단단하게 만들기에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자세다.



작년 9월부터 시작한 요가맨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한 점 하나는 이 기초 자세가 매우 편해졌다는 사실이다. 편한 요가 자세가 생겼다는 것은 그만큼 그 자세를 열심히 했다는 노력의 방증이다. 이렇게 쓰면 그럴싸하지만, 다른 자세보다 쉽고 해 볼 만해서 계속했기에 편해진 거다.



우리 요가 수업은 매달마다 그달의 자세가 있다. 언젠가는 머리 서기였고, 언젠가는 까마귀 자세였다. 둘 다 어려웠고, 둘 다 실패했다. 머리 서기를 할 때마다 정수리가 비벼져서 탈모가 오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까마귀 자세를 할 때마다 배에 힘주다가 방귀가 나오면 어떡하지?라는 인간적이고 비루한 고민이 겹친다.



나와 같이 요가를 시작한 J 누나는 그런 두려움이 하나도 없더라. 분명히 같이 시작했고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이 누나는 어느덧 머리 서기도 곧잘 해낸다. 자랑스럽게 인스타그램 스토리즈에 올리고 나를 태그 하는 걸 보니, 이미 나는 완벽히 패배했다.



누나는 참 꾸준히 했다. 되든 되지 않든 꾸준히 했다. 매일 해야겠다고 마음만 먹고 집에 오면 발라당 눕는 나와 달리 누나는 요가 수업을 끝낸 당일에도 하고, 평일에도 연습하고 인스타그램에 영상을 올렸다. 나는 뭐 했냐고? DM으로 박수만 보냈다.



다리를 쫙쫙 찢는 사람이 요가를 잘하는 걸까? 우악스럽게 상체를 앞으로 뻗어내 내 이마와 정강이를 인사시키면 잘하는 걸까? 선생님은 요가 매트 위에서 편안하게, 자신의 공간을 만들며 더 잘하는 자신을 상상하면서 하라던데,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걸까 고민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잘 뻗고, 얼마나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하느냐보다 어제의 나보다 얼마나 더 뻗어 나갔는지가 중요하다. 경쟁이 아니라, 나와의 대화다. 우리는 요가를 끝낼 때마다 나마스떼라며 서로에게 인사한다. 당신 안의 성령을 존중하고, 인사를 보낸다는 뜻이다.



자유로운 학생 신분에서,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 되어 달라진 점은 더는 도망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좋든 싫든 계속 부대끼는 사람이 생기고, 쉽든 어렵든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이런 고통은 개별적인 동시에 보편적이다. 개인의 고통은 온전히 그 사람의 것이지만, 우리 모두 비슷한 종류의 고통을 받는다. 밥벌이는 이렇게 힘든 일이다.





장거리 달리기는 50m 달리기와 달리 꾸준함이 중요하다. 잠깐의 폭발력으로 승부 내는 경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과도 비슷하다. 좋든 싫든 계속해야 하는 이 레이스를 완주하기 위해선, 꾸준히 내 페이스대로 최선을 다하는 일이 중요하다. 언제는 100으로 달리고, 언제는 60으로 달리는 게 아니라 꾸준한 80으로 달리는 자세 말이다.



내게 일하는 마음이 무어라 물으면, 내 페이스를 지키면서 자신에게 정직한 자세로 일하는 것이라 말하겠다. 요가 매트 위에서 내 페이스에 맞춰 공간을 지키듯, 내 일을 완수하면 된다. 장거리 경주를 뛰는 선수와 같이 꾸준하게 말이다. 하타요가가 척추와 하체에 기대어 여러 자세를 취하듯, 우리 역시 우리의 마음에 기대어 일하니까, 더욱 정직하게 말이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더 일을 잘하고 우리의 호기심을 완수하기 위해서.



그래서 난 정직하냐고? 까마귀 자세는 정직하게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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