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인 적 있어요?"
엘레나의 질문은 숲에 오래 남았다.
바람 없는 섬인데도, 그 말만은 나뭇잎 사이를 지나 폐제단의 갈라진 돌 틈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카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이 늦어질수록, 엘레나의 손 안에서 뛰는 태양석 조각이 더 뜨거워졌다.
"카이."
이요라가 낮게 불렀다.
"지금은..."
"또 지금은 아니라고요?"
엘레나는 이요라를 돌아보았다.
"마스터도 들었잖아요. 정령이 뭐라고 했는지."
이요라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그녀는 정령을 바라보았다. 깨진 유리 조각 같은 작은 새는 폐제단 위에서 날개를 접은 채 세 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말해도 기억하지 못할 텐데.
정령이 말했다.
카이의 왼손이 움찔했다.
엘레나는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장갑 아래 금빛 조각. 태양석과 닮은 빛. 그것이 방금 정령의 말에 반응했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정령은 대답 대신 고개를 틀었다.
늦었다.
그 말과 동시에 숲의 유리잎들이 일제히 울었다.
맑은 소리가 아니었다. 깨지는 소리였다.
숲 가장자리에서 검은 실들이 솟아올랐다. 나무껍질을 뚫고, 모래를 찢고, 공기 속에서 서로 엮이며 사람의 팔처럼 길어졌다. 스톰엔드의 제단과 금서실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실이었다.
그림자 교단.
이요라가 곧장 주문을 펼쳤다.
"뒤로!"
푸른 결계가 폐제단 주위를 감쌌다. 검은 실들이 결계에 부딪히며 타들어 갔다. 그러나 타들어 간 자리마다 더 많은 실이 돋아났다.
카이가 검을 뽑았다.
"배까지 돌아가야 해."
"태양석 조각은요?"
"쥐고 있어. 절대 떨어뜨리지 마."
그의 목소리가 급해졌다.
"그리고 피 묻히지 마."
엘레나는 그를 보았다.
"왜요?"
검은 실 하나가 결계를 뚫고 들어왔다.
카이가 엘레나 앞으로 뛰어들었다. 검이 실을 갈랐다. 잘린 실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검은 재로 변했다.
하지만 뒤쪽에서 또 다른 실이 튀어나왔다.
엘레나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카이는 보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몸을 돌렸다. 검은 실이 그의 옆구리를 스쳤다. 옷이 찢기고 피가 튀었다.
피 한 방울이 엘레나의 손등에 떨어졌다.
그리고 태양석 조각 위로 굴러갔다.
카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안 돼."
태양석 조각이 빛났다.
처음에는 작은 불씨였다. 곧 그것은 엘레나의 손바닥 전체를 채웠고, 폐제단의 홈과 카이의 왼손에 박힌 금빛
까지 하나의 선으로 이어졌다.
정령이 날개를 펼쳤다.
기억이 열린다.
엘레나는 손을 뗄 수 없었다.
태양석은 그녀의 손바닥을 태우지 않았다. 대신 안쪽을 열었다. 피부 아래에 숨겨져 있던 혈관과 신경, 이름과 기억이 한꺼번에 다른 방향으로 당겨졌다. 엘레나는 자기 몸이 섬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이미 수많은 장소에 떨어져 있었다.
카이의 피가 열쇠였다.
그 사실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태양석 조각은 엘레나의 피보다 카이의 피에 더 깊게 반응했다. 그가 단순한 호위나 감시자가 아니라, 같은 실패를 지나온 매개라는 뜻이었다. 엘레나는 그것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이해하면 방금 물은 질문의 답도 가까워질 것 같았다.
세계가 뒤집혔다.
아니, 세계들이 열렸다.
첫 번째 엘레나는 스톰엔드 광장에서 죽었다. 검은 바람이 제단을 터뜨렸고, 마라의 손을 잡기도 전에 돌기둥이 그녀를 덮쳤다.
두 번째 엘레나는 하늘 계단에서 떨어졌다. 카이가 손을 뻗었지만 한 호흡 늦었다.
세 번째 엘레나는 지하 시험장에서 바닥 아래 바람에 삼켜졌다.
네 번째 엘레나는 금서실에서 책장이 되어 넘겨졌다.
다섯 번째 엘레나는 잊혀진 섬의 안개 속에서 마라의 이름을 잊고, 자신의 이름도 잊었다.
그 다음은 너무 빨랐다.
죽음들이 몰려왔다.
화살.
폭풍.
금서의 잉크.
검은 실.
카이의 검.
카이의 품.
카이의 울음.
카이의 손이 자신을 밀어내는 장면.
카이가 자신 대신 죽는 장면.
카이가 자신을 죽이는 장면.
엘레나는 비명을 질렀지만,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모든 죽음에서 카이가 있었다. 늦거나, 막거나, 실패하거나, 선택하거나.
그리고 매번 그는 같은 말을 했다.
이번에는.
이번에는.
이번에는.
그 말은 처음에는 기도였다. 아직 따뜻했고, 아직 사람의 목소리였다. 첫 몇 번의 카이는 엘레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놀랐고, 실패가 반복될 때마다 자기 손을 믿지 못했다. 그는 이요라에게 따졌고, 금서실을 뒤졌고, 마라에게 도움을 청했고, 스톰엔드의 바다를 건넜다.
그러나 숫자가 늘어날수록 말의 온도는 떨어졌다.
이번에는, 이 문을 먼저 닫는다.
이번에는, 마라에게 알리지 않는다.
이번에는, 엘레나에게 묻지 않는다.
이번에는, 내가 결정한다.
엘레나는 그 변화가 죽음보다 아팠다. 카이가 괴물이 된 것이 아니었다. 괴물이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조금씩 사람의 말을 줄여 가는 과정이었다. 사랑이 계획이 되고, 계획이 통제가 되고, 통제가 칼끝이 되는 과정을 그녀는 한꺼번에 보았다.
엘레나는 눈을 감고 싶었다. 하지만 태양석은 눈꺼풀 안쪽까지 빛을 밀어 넣었다.
숫자가 떠올랐다.
숫자들은 죽음 위에 찍힌 기록처럼 지나갔다. 마지막 숫자가 가까워질수록 카이의 얼굴은 더 지쳐갔다. 어린 얼굴은 청년이 되고, 청년의 눈은 늙은 사람처럼 비어갔다.
엘레나는 태양석 조각을 놓치지 않으려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 숫자가 뜨는 순간, 그녀는 폐제단으로 돌아왔다.
돌아오기 직전 마지막 장면이 그녀를 붙잡았다.
카이가 아주 조용한 방에 앉아 있었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고, 탁자 위에는 낡은 종이가 가득했다. 종이마다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엘레나 윈드리프.
엘레나 윈드리프.
엘레나 윈드리프.
그는 이름을 잊지 않으려고 쓰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손이 멈췄다. 카이는 종이를 내려다보며 낮게 물었다.
"이 사람을 왜 살려야 하지?"
엘레나는 그 방 안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유를 잊었으면 멈추라고, 방법만 남은 사랑은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장면은 대답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섬은 더 이상 같은 섬이 아니었다.
폐제단 중앙이 갈라지고 있었다. 갈라진 틈 아래에는 어둠이 아니라 하늘이 있었다. 폭풍이 뒤집힌 채 아래에서 돌고 있었다. 검은 구름 사이로 푸른 빛의 심장이 뛰었다.
폭풍의 심장.
그것은 장소가 아니었다.
열린 상처였다.
카이가 엘레나의 손을 잡았다.
"보지 마."
그의 목소리는 부서져 있었다.
엘레나는 그를 보았다. 방금 본 수백 개의 죽음이 눈앞의 카이와 겹쳤다. 그가 자신을 죽이는 장면도, 자신을 안고 우는 장면도, 모두 같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999번."
카이의 손이 굳었다.
"당신은 999번 기억하고 있어."
그 말이 숲의 깨진 소리보다 크게 울렸다. 이요라의 결계가 흔들렸고, 작은 새 정령이 날개를 접었다. 카이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아니, 숨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다 기억하는 건 아니야."
카이가 겨우 말했다.
"어떤 건 장면만 남았고, 어떤 건 이름만 남았고, 어떤 건 내가 왜 그렇게 했는지 사라졌어."
엘레나는 한 걸음 물러섰다.
"그래서요?"
"그래서 더 위험해졌어."
그는 자기 왼손을 보았다. 장갑 아래 금빛이 더 또렷해졌다.
"기억이 많은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착각하기 쉬워. 나는 여러 번 그랬다."
그 인정은 변명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차가웠다. 엘레나는 그가 자신을 속여 온 사실보다, 그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 크게 흔들렸다.
이요라의 결계 지팡이 끝이 한 번 흔들렸다.
카이는 눈을 감았다.
그 인정이 대답이었다.
검은 실들이 다시 몰려왔다. 이번에는 결계를 뚫지 않았다. 오히려 폭풍의 심장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누군가 반대편에서 실들을 당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틈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
"드디어."
엘레나는 몸이 굳었다.
목소리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마지막 열쇠가 심장을 찾았군."
이요라가 결계를 더 세게 펼쳤다.
"듣지 마!"
하지만 목소리는 바람이 아니었다. 귀를 막아도 들어오는 종류의 말이었다.
"엘레나."
그 이름을 부르는 방식은 카이와 달랐다. 카이는 잃어버린 이름처럼 불렀다. 저 목소리는 오래 준비한 문장을 읽는 사람처럼 불렀다.
"문이 되어라."
폭풍의 심장이 한 번 더 뛰었다.
태양석 조각이 엘레나의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고통이 번졌지만, 그녀는 놓지 않았다. 놓으면 무언가가 완전히 열릴 것 같았다.
카이가 피 묻은 손으로 그녀의 손을 감쌌다.
"엘레나, 나를 봐."
엘레나는 그를 보았다.
"네가 본 것 중에 전부가 진실은 아니야."
"그럼 뭔데요?"
"실패."
그는 이를 악물었다.
"가능했던 실패들."
"당신이 나를 죽인 것도요?"
카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엘레나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폭풍의 심장이 점점 더 크게 뛰고 있었다. 섬 전체가 그 박동에 맞춰 흔들렸다. 폐제단의 나선 문양이 푸른빛으로 타올랐고, 정령은 비명을 지르듯 날개를 떨었다.
이요라가 외쳤다.
"제단에서 떨어져!"
그때 그림자 교단의 실들이 폭발하듯 끊어졌다. 숲 바깥에서 누군가의 비명과 함께 검은 불꽃이 솟았다. 교단도 이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엘레나는 손바닥의 태양석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숫자 999가 그 위에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새로운 금이 생겼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숫자.
이번 실패가 시작되고 있었다.
"싫어."
작은 목소리였지만, 폭풍의 심장이 잠깐 멈췄다.
카이가 그녀를 보았다.
엘레나는 손을 움켜쥐었다.
"나는 당신들의 예언도, 실패도, 숫자도 아니야."
태양석 조각이 손바닥 안에서 깨질 듯 빛났다.
"문이 되라고?"
그녀는 폭풍 아래의 목소리를 향해 말했다.
"그럼 내가 닫을 수도 있겠네."
엘레나는 제단 홈에 태양석 조각을 밀어 넣었다.
폭풍의 심장이 뒤집혔다.
푸른 빛이 폐제단을 삼키고, 검은 실을 태우고, 섬의 안개를 하늘로 끌어올렸다. 카이가 엘레나를 붙잡았고, 이요라가 두 사람 위로 결계를 덮었다.
정령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기억해.
무엇을?
엘레나는 묻고 싶었지만, 빛이 먼저 그녀를 삼켰다.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태양석 표면이었다.
그 숫자가 깨지며, 그 안쪽에서 다른 장면이 열렸다.
스카이 아카데미의 아침.
아무도 섬을 기억하지 못하는 얼굴들.
그리고 카이만이 피 묻은 손으로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엘레나."
"이번에는, 제발 기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