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는 자기 방 천장을 보고 있었다.
흰 회반죽 천장. 동쪽 기숙사의 좁은 방. 창밖에는 멈춘 풍향계가 보였고, 책상 위에는 임시 등록 패가 놓여 있었다.
섬이 아니었다.
폐제단도, 검은 실도, 폭풍의 심장도 없었다.
엘레나는 벌떡 일어났다. 숨이 목 안에서 걸렸다. 손바닥을 펼쳤다. 태양석 조각은 없었다. 999라는 숫자도 없었다. 하지만 검푸른 문양은 남아 있었다. 그 위로 아주 얇은 금빛 금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숫자.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카이의 피.
섬의 정령.
이번에는 그 아이를 죽이지 않을 거야?
수백 개의 죽음.
이번에는, 제발 기억해.
엘레나는 침대에서 내려오다 비틀거렸다. 발바닥이 차가운 바닥에 닿자 현실감이 조금 돌아왔다. 그녀는 책상으로 달려가 임시 등록 패를 집어 들었다.
날짜가 새겨져 있었다.
섬으로 떠나기 전 아침.
예언의 문장을 확인한 다음 날.
"아니야."
엘레나는 패를 뒤집었다. 뒷면에는 아직 항구 출입 허가 문양이 찍혀 있지 않았다. 어제, 아니 섬으로 떠나던 새벽에 이요라가 새겨준 문양이었다.
없었다.
누가 하루를 지웠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엘레나는 문을 열었다. 복도를 지나던 학생이 깜짝 놀라 멈췄다. 같은 동쪽 기숙사의 학생이었다. 어제까지, 아니 며칠 전까지 엘레나를 기록 없는 애라고 수군거리던 아이.
"왜 그렇게 봐?"
학생이 물었다.
엘레나는 숨을 골랐다.
"오늘 며칠이야?"
"뭐?"
"날짜."
학생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엘레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확인해야 했다. 학생이 말한 날짜는 등록 패에 새겨진 날짜와 같았다.
섬으로 떠나기 전 아침.
"잊혀진 섬은?"
"뭐?"
"어제 항구로 간 학생들 없어?"
학생은 엘레나를 더 낯선 눈으로 보았다.
"너 꿈꿨어? 오늘 첫 고급 이론 수업이잖아. 다들 강의실 가는 중인데."
그 말에 엘레나는 더 이상 붙잡지 못했다.
그녀는 복도를 달렸다.
아카데미는 평화로웠다.
너무 평화로웠다.
학생들은 책을 들고 수업으로 향했고, 교수들은 평소처럼 회랑을 가로질렀다. 어제 외벽에 번졌던 그림자 교단의 문양은 없었다. 섬에서 돌아오기는커녕, 아무도 섬으로 떠난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엘레나는 이요라의 집무실 문을 두드리지 않고 열었다.
이요라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놀라지도 않았다. 다만 시계를 보았다.
"엘레나. 수업 시간까지 아직 삼십 분 남았단다."
"섬은요?"
이요라의 손이 멈췄다.
"무슨 섬?"
"잊혀진 섬."
엘레나는 책상까지 다가갔다.
"마스터가 저한테 원반을 줬잖아요. 안개를 통과하려면 바람의 결을 읽어야 한다고. 카이랑 선장도 있었고, 섬의 정령이 카이를 알아봤고..."
말을 할수록 이요라의 표정이 닫혀갔다.
처음엔 의아함.
그 다음엔 걱정.
마지막엔 경계.
"엘레나."
이요라가 천천히 말했다.
"너는 어젯밤 금서실 사건 이후 방에서 쉬고 있었다. 섬 탐사 명령은 내려진 적 없다."
"아니에요."
"그림자 교단의 외벽 표식도 확인되지 않았다."
"아니라고요."
"태양석 조각도..."
"말하지 마세요."
엘레나는 책상 위를 짚었다.
"없다고 말하지 마세요."
이요라는 손끝으로 찻잔 가장자리를 더듬었다.
부정하려는 얼굴이 아니었다.
기억 속에서 같은 장면을 찾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엘레나는 등줄기를 타고 식은 감각이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이요라가 숨기는 것이 아니라, 정말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스터는 기억 못 해요."
"정말로."
이요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천천히 말해보렴."
"말하면 믿을 건가요?"
"확인하겠다."
"기록으로요?"
그 말에 이요라의 눈빛이 흔들렸다.
엘레나는 웃고 싶지 않은데 웃음이 나왔다.
"아카데미는 기록으로 학생을 보호한다면서요."
이요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결국 둘은 기록 보관실로 갔다.
금서실 침입 기록은 남아 있었다. 엘레나의 이름, 카이의 이름, 금서 접촉, 봉인 대상 확인. 지하 시험장 사고 기록도 남아 있었다. 푸른 바람, 봉인 재가동, 이요라의 명령으로 "학생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고 정리된 문장까지.
하지만 섬은 없었다.
항구 출입 기록 없음.
선박 대여 기록 없음.
잊혀진 섬 관련 탐사 명령 없음.
그림자 교단 외벽 표식 없음.
이요라가 기록판을 내려놓았다.
"이상하군."
"이상하다고요?"
엘레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마스터가 이상하다고 말하면 안 되잖아요. 적어도 무섭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요라는 엘레나를 보았다.
"무섭다."
그 한마디에 엘레나의 화가 잠시 길을 잃었다.
이요라는 손등의 문장을 더듬었다.
"기록이 사라지는 건 가능하다. 누군가 조작할 수도 있지. 하지만 네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기록 삭제가 아니다. 사건 자체가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정리된 거야."
"시간이요."
엘레나는 손바닥의 금빛 금을 보였다.
"태양석이 시간을 건드렸어요."
이요라의 손끝이 찻잔에서 멈췄다.
"태양석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들었지?"
엘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카이.
그가 필요했다.
그녀는 기록 보관실을 뛰쳐나갔다.
카이는 훈련장에 없었다. 기숙사에도 없었다. 검술장에도, 도서관에도, 하늘 계단 입구에도 없었다. 엘레나는 점점 숨이 가빠졌다. 혹시 그마저 기억하지 못한다면? 혹시 카이도 평범한 얼굴로 "무슨 섬?"이라고 묻는다면?
그 생각이 가장 깊이 파고들었다.
아카데미 북쪽 회랑 끝에서 피 냄새가 났다.
엘레나는 멈췄다.
금서실 방향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걸어갔다. 닫힌 눈 문양 아래, 카이가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오른쪽 소매에는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옆구리 쪽 옷도 찢겨 있었다.
그는 잠들어 있지 않았다.
엘레나가 다가가자 카이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 밑은 검었다. 왼손 장갑은 사라져 있었다. 손등에서 손목까지, 금빛 균열 같은 흉터가 뻗어 있었다. 그 균열 사이에 작은 숫자가 떠 있었다.
엘레나는 무릎을 꿇었다.
"기억해요?"
카이는 그녀를 오래 보았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엘레나는 대답을 알았다.
"섬."
"정령."
카이가 이어 말했다.
"태양석 조각."
"폭풍의 심장."
"999."
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이 처음으로 둘 사이의 벽이 아니라, 같은 지붕 같았다. 무너지는 것을 함께 막고 있는 아주 얇은 지붕.
엘레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모두가 잊었어요."
"알아."
"마스터도요."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그럼 당신은 왜 기억해요?"
카이는 자신의 손등을 보았다.
"태양석은 기억을 붙잡아. 대신 붙잡힌 쪽도 대가를 치러."
"대가가 이거예요?"
엘레나는 그의 손등 숫자를 보았다.
카이는 손을 감추지 않았다.
"일부는."
"왜 나도 기억하죠?"
카이의 시선이 그녀의 손바닥으로 향했다.
"네가 태양석 조각을 제단에 넣었으니까. 그리고..."
"그리고?"
"네가 닫겠다고 했으니까."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박혔다.
문이 되라는 목소리.
그럼 내가 닫을 수도 있겠네.
그녀의 선택이 기억을 붙잡은 것일까. 아니면 1000번째 실패를 시작한 것일까.
엘레나는 벽에 기대앉았다. 카이와 조금 떨어진 거리였다. 용서할 만큼 가깝지는 않고, 혼자 견디기엔 너무 먼 거리.
"나를 죽인 적 있냐고 물었죠."
카이의 왼손이 장갑 안에서 접혔다.
"대답 못 들었어요."
"지금은..."
"그 말 하지 말라고 했어요."
카이는 눈을 감았다.
"있어."
엘레나는 숨을 멈췄다.
알고 있었다. 태양석 안에서 봤다. 그래도 실제 목소리로 듣는 건 달랐다.
"왜요?"
"그때는 네가 이미 문이 되고 있었어."
"그래서 죽였어요?"
"죽인 내가 있었어."
"말장난하지 마요."
카이는 고개를 저었다.
"말장난 아니야. 변명도 아니고. 내가 한 선택이 맞아.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선택까지 기억하는 사람이지, 그 선택을 반복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야."
엘레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번에는?"
"막을 거야."
"나를요, 아니면 문을요?"
카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종탑이 울렸다.
한 번.
아카데미의 아침 여덟 시 종이었다.
학생들이 멀리서 웅성거리며 강의실로 향하는 소리가 들렸다. 엘레나는 무심코 창밖을 보았다. 햇빛은 평온했고, 풍향계는 여전히 멈춰 있었다.
종이 다시 울렸다.
한 번.
같은 음.
같은 길이.
같은 시각.
엘레나는 카이를 보았다.
카이도 이미 종탑을 보고 있었다.
"방금..."
"두 번 울렸어."
아카데미 종탑은 같은 시각을 두 번 울리지 않는다.
카이가 천천히 일어섰다.
손등의 999가 금빛으로 달아올랐다.
엘레나의 손바닥에서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1000이 뜨겁게 뛰었다.
그리고 북쪽 지하에서, 아주 멀리서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도 늦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