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ang Class
"조니. 그렇게 차려 입고 어디 가니? 데이트 가니?”
매그가 나를 보고 씩 웃으며 물었다.
“아니. 영어수업 가.”
“조니. 영어수업은 대체 왜 가는 거야. 너는 존나게(Fucking) 영어 잘하잖아.”
스틸이 웃으며 말했다.
“그냥 영어가 아니라 오지슬랭 수업이야. 영어뿐만 아니라 새 친구도 만들고 좋잖아. 아무튼 나중에 봐!”
집을 나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저번 Legal Centre 방문했을 때 무료 영어수업을 추천 받은 바 있다.
“괜찮지 않아?”
이틀 전, 엘에게 이 수업에 관해 이야기해보았다.
“오지슬랭… 좋네. 아직 너 호주 오고 나서 한국인 만난 적 없잖아. 한국인 친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엘은 어딘지 모르게 석연찮은 표정이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엘은 날 노려보더니 조용히 경고했다.
“너 바람 피면 뒤진다.”
“어…… 뭐야. 여태 그걸 걱정한 거야?”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당연하지.”
“안 펴. 걱정 마.”
엘은 은근 불안했나 보다.
도서관은 우리 집에서 걸어 약 1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헝그리잭스, 맥도날드, 중고차매장, 비디오 가게 등을 지나 KFC 옆에 자리잡고 있는 도서관에 도착했다. 안쪽에 위치한 Young Adult Room 으로 들어서자 8인용 테이블에 앉은 남자 하나가 일어서 나를 맞았다.
“수업 오셨나요?”
“네.”
“반갑습니다. 난 데이브에요.”
“조니.”
그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 데이브는 성우를 해도 될 만큼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키가 크고 나이는 오십 대 초 중반으로 보였으며, 체크무늬 셔츠는 남산만한 배를 덮고 있어 꽤나 친근한 인상을 풍겼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한국에서 왔습니다.”
“그렇군요.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앉아서 조금 기다려보도록 하죠. 커피 마시고 싶으면 자판기에 4달러를 넣고 마실 수 있고 입구 근처에 있는 급수대에서 물은 무료로 제공합니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화장실에 잠깐 들렀다 다시 돌아왔다. 앉아 기다리니 하나 둘 새로운 학생들이 오기 시작했다.
피피. 여성. 워홀러. 대만 출신. Visitor Centre 옆 마사지샵에서 일한다.
레자. 남성. 이란 출신. 삼십 대 중 후반. 칼굴리 광업공대(Mining School) 4학년 재학 중. 기혼. 슬하에 아들 하나.
피오나. 여성. 이란 출신. 레자의 아내.
홍. 남성. 워홀러. 대만 출신. 레스토랑 종업원.
피터(정근수). 남성. 한국인. 광산에서 트럭 운전수로 근무중.
정각이 되자 데이브가 수업을 진행했다.
“반갑습니다. 정말 다양한 국적에서 다양한 분들이 왔군요. 피피와 홍은 서로 아는 사이인가요?”
“네. 친구에요.”
홍이 대답했다.
“그렇군요. 조니와 피터는요?”
“오늘 처음 봤어요. 한국인을 만난 적이 없는데 굉장히 반갑네요.”
내가 말했다.
“그래요. 모두 환영합니다. 저희 수업에 대해 다 알고 계시겠지만, 일반적 영어가 아닌 오지슬랭을 배워보는 시간이에요. 대표적으로 어떤 게 있을까요? 레자?”
손을 든 레자가 말했다.
“No worries.”
“맞아요. No worries 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통용되는 대표적인 슬랭입니다. No problem 과 같은 뜻이에요. 또 다른 건요?”
“Mate.”
내가 말했다.
“정확합니다. Mate는 친구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요. 호주에서 생활하다 보면, 여러분들이 일반적으로 배운 영어와 사뭇 다른 영어를 접하게 될 겁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비 영어권 국가에서 왔지요? 혹시 IELTS 성적을 가지고 계신 분 있나요?”
“Academic 8.0을 가지고 있습니다.”
레자가 손을 들어 말했다.
“굉장하군요 레자. 그 정도면 거의 원어민 수준이라고 봐도 될 것 같아요. 혹시 호주에 살면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나요?”
“일반적으론 어렵지 않았어요. 하지만 가끔 바에 간다거나, 친구들을 만날 때 어려움을 겪곤 하죠.”
“바에 자주 가나 봐?”
레자의 아내 피오나가 레자를 흘겨봤다. 모두 웃음이 터졌다.
“하하. 네. 어쨌든, 같은 언어를 쓰는, 예를 들면 캐나다나 미국에서 온 사람일지라도 호주에 오면 슬랭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앞으로 6주 동안, 우리는 호주 내에서 자주 사용하는 슬랭을 배워보게 될 거에요. 슬랭은 여러분들이 호주 생활을 하는 동안 사람들과 더 친근해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겁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수업은 한 시간 반 가량 진행되었다. 분위기는 꽤 화기애애했다. 각 학생들 모두는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을 만한 영어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수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하였다. 시간은 금새 흘러가 어느새 수업이 끝났다.
“조니. 여자친구랑 마트 가는 건 즐겁지만 아내랑 가는 건 끔찍하다고요?”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피오나가 나를 노려보며 씩 웃었다.
“피오나. 당연히 농담이죠. 당신 같은 아름다운 여자라면 레자도 마트 같이 가는 걸 행복해 할 거에요.”
“호호호. 조니. 나도 농담이에요. 살짝 삐치긴 했지만. 언제 한 번 우리 집에 놀러 와요. 페르시안 요리를 마련해 줄게요.”
“그래요 조니. 한 번 시간 날 때 들러요.”
레자가 말했다. 나는 수업 참가자들과 연락처를 교환했다.
“반갑습니다.”
한국인 근수씨가 한국어로 인사하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가 물었다.
“어쩌다 칼굴리까지 오셨어요? 대도시가 훨씬 재밌을텐데요.”
“한국인이 없는 곳 일부러 골라왔습니다. 영어 한 번 제대로 늘려보려고요.”
“아유 뭘 충분히 잘 하시던데요. 여기 일 구하기 어려운 걸로 알고 있는데 일도 벌써 구하시고, 대단하시네요.”
“아닙니다. 근수 씨께서는 트럭 운전 하신다고요?”
“네. 광산에서 트럭 운전합니다. Super Pit 관광 한 번 와 보셨나요?”
“아직 안 가봤어요.”
“광산 트럭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답니다. 꼭 한 번 보러 오세요.”
“네. 언제 한 번 술 한잔 같이 하죠?”
“그럽시다.”
대만에서 온 피피와 홍과도 인사했다.
“피피, 마사지 하러 가면 디스카운트 해주나요?”
“하하. 카운터에 내 이름 대면 해줄 거에요. 걱정 말고 오세요.”
피피가 웃으며 말했다.
모두는 다음 주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