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페이와의 만남

by 바른





샤페이와의 만남


샤페이는 외모의 특징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쭈글쭈글한 모양을 하고 있는 강아지이다. 별명으로 쭈구리란 이름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털은 짧은 편이지만 특성상 털 빠짐이 심하며 더위와 추위에 약하다.


우리 집사람은 성격이 깔끔해서 집안에 지푸라기 한올이라로 떨어지는 걸 용납하지 않는 편이어서 , 그녀가 집안에서 강아지를 키운다는 행위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한 번은 아이들이 우리도 집에서 강아지를 키워보자고 졸라 댔지만 단칼에 거절한 그녀였다. 그러나 상상도 못 했던 일이 우리 집안에서 벌어지고야 말았다.


어느 날 딸아이의 방 안에서 웬 이상한 소리가 들려 방문을 열어젖혀 보니 방바닥에 깔아놓은 이불속에서 무언가 꿈틀대는 것이 있었다. 이불을 확 젖혀보니 그 안에 강아지가 있었는데, 초콜릿 색깔의 털과 온몸이 쭈글쭈글한 모습으로 이상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순간 '안돼'라고 소리는 질렀지만 , 하룻밤 지난 후부 터는 자포자기가 되며 점점 생각이 저절로 바뀌어 갔다.


걸음도 비틀비틀하니 어딘가 아파 보이는 불쌍한 모습이었다. 이때부터 강아지는 아내의 측은지심 속으로 깊게 자리를 잡아갔다. 어제 서울에서 고속버스 편으로 5시간이나 걸려서 택배 종이박스 속에 갇혀서 왔다고 했다. 이제 겨우 태어나서 방금 젖을 떼고 온 것 같았다. 아내는 즉각 이놈을 동네 동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수의사가 폐에 물이 차서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해서, 병원에 입원시켜서 치료하기로 했다. 딸아이는 몸값을 40만 원이라고 하였는데 며칠간의 입원 치료비가 40만 원이나 나왔다. 이때부터 강아지에 들어가는 모든 경비는 아내의 몫이 되었다.


딸아이는 방 안에서 강아지와 같이 생활을 했다. 문제는 대소변인데, 지시된 장소를 이용하는 방법을 훈련을 시켜주었다. 예전에 머리 나쁜 시츄를 집안에서 키운 적이 있었는데, 이놈은 아무리 가르쳐주어도 대소변을 거실 아무 곳에나 저질러서, 도저히 감당하기가 어려워 결국 남을 주어버렸다.


딸이 출근을 하고 나면 아내가 보호자 역할을 하게 되었고, 원래는 강아지에게 관심도 없었던 아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놈과 점점 정이 쌓아 가는 듯 보였다.


몇 년 후 딸아이는 결혼하여 집을 나가게 되었고, 이제 강아지에 대한 돌봄은 모두 아내의 몫이 되었다. 샤페이는 피부가 약해서 수시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해야 했고, 털이 많이 빠져서 온통 집안이 털로 범벅이 되어버렸다. 눈이 털에 찔려 벌겋게 염증이 생기게 되어 병원에 가서 쌍꺼풀 수술도 해주었다.


성견이 되어 그 크기가 중형견 크기가 되니 집안에서 키우기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되었지만, 그렇다고 밖에서 키우면 강아지가 적응을 못할 것 같아서 집안에서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목욕을 시키기로 하였는데, 개가 워낙 크고 무게가 있다 보니 남자인 내가 도움을 주지 않고서는 관리가 안되었다. 힘이 좋아서 바깥에 데리고 나가면 사람을 끌고 다녔다. 아침마다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 산책을 시켜주었고, 일주일에 한 번 목욕시켜 주는 일은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샤페이는 자기를 돌보는 사람들의 순위를 나름 정확히 정해 놓고 있었다. 1위는 아내, 2위는 나, 그리고 3위 이하는 모두 자기 아래로 보는 것 같았다.

눈치가 빨라서 아내와 나 사이에 약간의 언쟁이라도 벌어지면 , 아내 편에서 나를 공격해 대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자기를 목욕시켜 주는 사람에 에 대한 예우가 나로서는 섭섭했지만, 역시 식사 제공자를 최고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외부에서 한 번씩 가정일을 도와주러 찾아오는 아줌마에게는 절대복종하지 않았다. 어쩌다 아줌마가 집안의 물건을 만지는 모습을 보면, 왜 남의 물건을 만지느냐고 짖어 댔다.

집 안에서 샤 페이가 앉는 자리는 항상 정해져 있었다. 대문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바깥을 내다보거나 그 자리에서 잠을 잤다. 아내는 먹이도 개 사료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사서 먹였고, 개간식, 강아지 장난감 등을 종종 사주었다. 어떤 때는 나보다도 강아지를 더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정도로 시샘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떤 때는 사람이 개를 모시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개는 사람이 자기를 진심으로 좋아하는지 아니면 좋아하는 척만 하는지 알고 있었다. 인간에게도 오감을 뛰어넘어 육감이 있지만, 개에게는 더 뛰어난 육감이 있는 것 같았다. 진심으로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머리를 숙여 꼬리를 흔들지만, 좋아하는 척만 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고개를 엎드려는 법이 없었다.




샤페이 길들이기


수의사들은 종종 인간과 함께 사는 반려동물의 중성화 수술을 권유하기도 한다. 강아지가 한 살 되기 전에 수컷은 고환을 암컷은 난소를 수술해 절제해 버림으로써 성적인 문제로 인해서 일어나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게 되자는 의도이다 수컷의 경우에 공격성이 줄어들고, 성견이 되어 호르몬 활동이 활발해지면 암컷을 찾아 밖으로 뛰쳐나가는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생각이다. 이는 강아지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강아지를 관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관리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더구나 집안에서 사람과 같이 생활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강아지 중성화는 매우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수의사의 설명을 듣고 우리의 샤페이도 만만치 않은 비용을 들여서 중성화 수술을 해 주었다.

처음 강아지를 길들이는 방법은 '앉아, 일어서'라는 구령에 따라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구령에 따라서 잘 행동하면 그다음 방법이 진행된다. 그 보상으로 강아지 간식을 상으로 내려준다. 그다음에는 '손 '이라고 말하고 내 손위에 강아지 앞발을 얹어 놓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역시 잘 따라 하면 상으로 강아지 간식을 주었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때는. 자기가 하기 싫을 때에는 강아지 간식만 가로채서 가버려서 눈앞에 안 나타난다. 자기가 하기 싫은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는 것 같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샤페이의 성격은 주인에 대한 충성심은 강하나 독립심이 강하다고 되어 있다 여타 소형견은 주인 앞에서 재롱을 떨고 사랑의 애교를 무척 많이 떠는 것을 볼 수 있다. 샤페이는 주인에 대한 애정을 표하기는 하지만은 무덤덤한 편이다.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은 절대 안 하는 성질이 있다.


샤페이가 자라서 성견이 되면, 키가 대략 진돗개 성견 정도의 크기가 된다. 얼굴의 모양이 쭈글쭈글해서 매일 보는 사람에게는 이쁘게 보이겠지만 처음 보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움찔하게 된다. 만약 호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과 친하게 말을 주고받는 모습을 샤페이에게 보여주면 , 금방 알아차리고 경계를 느슨하게 한다.


우리 집 샤페이를 절대 길을 들일 수 없었던 한 가지는 강아지를 차에 태우는 일이었다. 샤페이를 차 뒷좌석에 태우기만 하면 괴상한 소리로 울부짖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사람 살려 달라고 소리치는 비명소리처럼 들렸다. 뒷좌석에 태운 채로 10분 이상을 갈 수가 없을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 원인을 잘 생각해 보니 갓 태어난 강아지가 사과 종이박스에 갇혀서 5시간 동안 덜컹거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오면서 죽을 뻔한 기억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추측이 든다. 즉 자동차에 대한 트라우마라고 생각된다. 자동차만 타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아닐까.


사람도 어린 시절에 주위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건은 나이 들도록 이어지면서 성격에 관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한번 형성된 성격이나 습관은 여간해서는 고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성장기에 있어서의 트라우마는 평생을 간다는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다.



샤페이와 의 이별


개는 사람처럼 말은 못 해도 스스로의 애정 표시를 정말 잘하는 것 같다. 이러니 사람이 개를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내가 개를 예뻐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10년 이상을 같이 거주하면서 집 안에서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용변이 필요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달려와 꼭 자기의 의사 표시를 틀림없이 하였다. 집마당에 용변을 본 후에는 발바닥을 마당 위에 박박 문질러대며 남은 물기를 스스로 제거할 줄을 알았다.


물론 마당에서 집안으로 들어올 때는 우리가 걸레를 문 앞에 놓아두었다가 발바닥을 닦아 주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샤페이는 어느덧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낯선 외부인이 들어오면 짖어서 경계를 하여 주고 , 주인이 집안에 들어오면 꼬리를 흔들며 달려들어 주인에게 즐거움을 전해주었다.


한 가지 불편한 점은 우리가 외부로 멀리 여행을 떠날 때이다. 빈집에 덩그러니 강아지만 혼자 놓아둘 수가 없으니 , 이때는 강아지 호텔을 이용해야만 했다. 말이 호텔이지 실제로는 박스모양의 쇠창살 안에 가두어 두는 것이었다

강아지는 쇠창살 안에 가두어지는 것을 못 견디어했다. 쇠창살 안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밤새도록 쇠창살을 이빨로 물어뜯었다. 다음날 가보면 코끝에서부터 입주위까지 피가 찰찰 흐르고 있었다. 박스 안에 갇히는 일은 도저히 허락이 안되니, 할 수 없이 방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그 속에 가두어 놓기로 했다. 이리하여 사람 하나 키우는 비용과 거의 비슷한 비용이 들어갔다.


샤페이는 힘이 좋아 바깥으로 산책을 나가면 사람을 질질 끌고 다닌다. 따라서 힘없는 여자의 경우 샤페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게 되면 위험한 상황에 마주 할 수도 있어, 산책은 나의 할 일이 되었다. 샤페이는 평균 수명을 약 10년으로 보는데, 확실히 10년이 넘어가니 목줄을 잡아보면 몸에 힘이 빠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주 관절이 부어올라 병원에 가서 물을 빼내 주어야 했다. 이런 현상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심해졌다. 개가 늙어 가고 있었다.


샤페이가 평균 수명을 넘어서게 되었지만, 우리가 지극정성으로 돌본 탓인지 14년이 되어도 잘 살았다 하지만 16 년째 되고부터는 기력이 완전히 쇠약해져 한번 생긴 병이 잘 낫지를 않았다. 뒷다리를 절뚝거리는 모습이 매우 안 되어 보였다. 수의사도 이별에 대한 언급을 하였다.

아내와 나는 마음속으로 이별을 준비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사실 아내와 나는 이미 각자의 소중한 분들 과의 작별을 경험한 후였기에, 또 한 번의 이별을 마음속으로 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것저것 알아보면서 개를 위한 장례식장이 있다는 것을 이때 처음으로 알았다. 장례식장은 도심에서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두 시간 거리에 있었지만 시간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것을 보고 딸아이에게도 연락을 해서 마지막으로 한번 보고 가라고 하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내가 한참 직장에서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중에 아내로부터 울먹이며 전화가 왔다. 이미 마음속에 준비는 하고 있었으므로 급히 모든 일을 중단하고 집으로 달려갔다. 몸에 약간의 온기는 남아 있었지만 이미 몸은 경직되어 있었다. 40킬로 남짓 나가는 몸 몸무게를 들쳐 안고 나는 시신을 차 뒷좌석에 실었다. 훌쩍이는 아내를 진정시키며 나는 애써 냉정해지며 자동차를 직접 조정하였다.


개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어떤 중년 여인이 거의 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터트리며 문 앞에 서 있었다. 아마도 애완견이 사망한 것 같은데 너무 티를 내는 것 같아서 보기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2층에는 납골당도 있었는데, 아내는 화장 후에 우리 집 앞마당에 뼈를 묻어두자고 말했다. 화장하기 전에 우리에게 종교를 물어보았다. 즉 불교식으로 하실 건지. 아니면 기독교 식으로 하실 건지를 선택하라 하였다. 우리가 천주교를 믿는다고 하자 그들이 천주교 예식으로 장례식을 치러 주겠다고 하였다.


시신에 염도 하고 헌화도 하였다. 거의 인간에게 하는 장례식과 똑같았다. 약 1시간가량의 화장 후에 나온 유골을 다시 스톤 처리하였다. 비용은 꽤 되었지만 아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하여 주었다.


스톤 처리된 유골함은 우리 집 거실에 샤페이영정 사진과 함께 아직도 있다.

요즘도 아내는 가끔 샤페이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해 주고 나는 고개를 끄덕여 준다.

그 후 아내와 나는 다시는 어떤 강아지도 집 안에 들이지 않기로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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