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보아야 할 곳 가야 할 곳 이 많은 도시이다. 거의 이천 년 이상을 한 나라의 수도를 대표하여 지내왔고, 역사의 흥망성쇠가 모두 이곳에서 이루어졌으니 곳곳이 문화유적으로 가득 찬 도시이다.
특히 남산은 노천 불교박물관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곳곳에 불교유적이 산재한다. 절터가 100여 곳, 석불 80여 좌, 석탑 60여 기 가 산 전체에 널려져 있다.
남산의 정상은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으로 힘든 산이 아니어서 사계절 내내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 달 산악회의 남산 등산코스는 삼릉에서 금오봉으로 올라가는 코스를 택하였다.
등산 중에 사람들이 많다 보니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시간도 지체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산을 오로지 오르기에만 신경 쓰다 보면 중간중간의 유적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 꽤 가파르다고 생각하는 순간 정상에 올라와 있었다.
특히 생각하여 둔 헌강왕릉을 찾아보려 하였으나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였다
처용가는 신라 향가로서, 신라 헌강왕(879년) 시절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라벌 달 밝은 밤에 밤늦게 까지 놀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이불 아래로 발이 네 개가 보이는데,
두 개의 발은 나의 아내인데, 다른 두 개의 발은 누구의 것 인고,‘
유명한 처용가인데, 표현은 해학적인데, 이 가사의 깊은 뜻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위에서와 같은 상황을 만약 지금 현대인이 부딪치게 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나에게 해를 끼친 인간에겐 보복이 답이다, 보복을 배로 갚아 줄 수도 있다.
폭력 더 나아가 살인까지도 저지른다 하여도 우리는 고개를 끄떡일지도 모른다.
바로 이것이 우리들의 현제 모습이다. 지금도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전쟁과, 폭행이나 온갖 만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원인은 보복이다.
처용이라는 사람이 당시 실존 인물이라는 설도 있고, 가상의 인물이라는 설도 있지만, 우리는 지금 오직 처용가 자체에만 집중하도록 하자. 문학적인 글 솜씨 말고, 마누라가 다른 이와 정을 통했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부인을 범한 놈은 악신이고, 처용은 악신을 용서해 주었다. 그 후로 다시는 ‘악신은 서라벌 지방에 나타나지 않았다’.라는 처용가에 대한 후일담이 전해져 온다.
악신은 그 당시에 서라벌에 유행하는 역병(疫病)을 상징하며, 처용설화 이후에 역병(疫病)이 지역에서 소멸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처용가는 아내를 빼앗긴 마음속의 상실감과 동시에 관용을 노래한 신라향가이다.
끓어오르는 분노 증오등 미운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지 아니하고 마음속으로 삮히며, 결국에는 용서해 주었다.
즉 미움의 감정을 관용으로 승화해 나가는 인간으로서 한층 성숙된 마음의 자세라고 하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법칙이 현세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삶의 법칙이라면, 처용의 법칙은 그야말로 한 단계 위에 있는 법칙이라고 하겠다. 아니 보통 사람들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법칙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생각해 보면 관용의 정신이 결국에는 옳은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우치게 된다.
‘눈에는 눈’의 정신으로는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인도의 성자 ‘간디’ 나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존경받는 이유는 폭력에 대해서 관용의 정신으로 싸워서 승리하였기 때문이다.
처용은 대한민국에서 이천 년 전에 이미 관용의 정신을 보여 주었다.
서라벌 밝은 달 아래에서 멋진 처용무를 추며, 어느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진정한 용서란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