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진짜 하고 싶었던 말

기쁨은 슬픔을 거슬러고개를 내민다 5

by 양주안

오늘은 정말이니 힘든 날이야.


짧은 메시지와 영상이었다. 무장한 경찰들이 보였다. 건물 안에는 젊은이들이 스크럼을 짜고 앉아 있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커다란 방패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 틈으로 곤봉을 쑤셔 넣었다. 스크럼은 금세 풀어졌고 본격적으로 사람을 하나둘 끄집어냈다. 격렬하게 저항하는 이에게는 종종 곤봉을 휘두르기도 했다.

2017년 카탈로니아에서 국민 독립 투표에서 90%가 독립에 찬성했으나 스페인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해 카탈로니아는 대학가와 거리는 크고 작은 시위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X는 소방관으로 카탈로니아의 한 대학교 시위 현장에 투입됐다. 시위하는 학생이나, 경찰관이 다치면 수습하는 임무였다. 그날의 시위는 격렬했다. 경찰대가 마음먹고 본때를 보여주려는 듯했다. 소방관인 X는 경찰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X가 소방관이 된 이후 수행한 가장 어려운 임무였다. 투입된 경찰관들과 소방관 대부분 카탈로니아 사람이었다. 그 안에도 분명 다양한 의견이 부유했다. 하지만 막상 임무가 개시되자 경찰과 시위대는 격렬하게 부딪혔다. 머뭇거림은 잠시 뿐이었다. 여기저기 충돌이 났다. 작은 균열이 나자 지진 난 땅처럼 금세 커다란 구멍이 됐다. X는 자기가 소방관이라는 사실에 잠시 안도했다. 그리고 이내 결국 스페인 정부의 편에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정말 못난 인간이야.


아르베카에 머물 때 집집마다 걸린 카탈로니아 국기를 보고 국가 기념일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매일 국기를 게양한다고 했다. 종종 내게 카탈로니아어를 가르쳐 주고는 했다. 자기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카탈로니아어 교육이 금지되었는데, 몇몇 선생님이 몰래 수업을 했다고도 했다.

A의 집안은 대대로 꽃집을 운영했다. 1층은 가게이고 2, 3층은 집이다. 100년도 더 된 건물이며 A의 가족은 말 그대로 오랫동안 이 집에 살았다. 프랑코가 독재하던 시절에도 그의 증조할머니는 꽃을 팔았다. X의 아버지는 자동차 정비공이다. 기술자 집안이다. X의 집은 100년도 더 된 건물이며 지금은 두 사람의 신혼집이다. 1층 주차장에는 각종 수리 장비가 걸려 있다. 카탈로니아가 박대받던 시절에도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기계를 고쳤다.

X의 메시지를 받고 어떤 대답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섣부른 공감이나 텅 빈 응원을 빼고 나니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머문 100년도 더 된 집들을 떠올렸다. 낡은 건물을 고쳐 쓰며 매일 국기를 게양하고, 가업을 물려받기도 하는 마을을 기억했다. 몰래 카탈로니아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교실을 상상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하기에 너무 오랜 시간 카탈로니아인의 삶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X는 이제 괜찮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다친 곳은 없냐는 질문뿐이었다. 오래 빚은 문장이 고작 그것이었다. 그의 역사적 아픔을 함께 떠안을 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받은 영상을 SNS에 공유하고 퍼뜨리는 일로는 도대체 만족할 수 없었으나, 거기가 나의 한계였다.

친구가 거대한 무엇과 대치하고 있을 때, 결국 각자의 몫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답장을 썼다 지우며 애써 부정하고 싶었던 거리감이 형태를 들어냈다. 끝내 단 하나의 문장을 그에게 전했다. 위로도 아니고 응원도 아닌, 다듬지 못한 말이었다.


망할, 이건 우리 잘못이 아니야!

이전 19화삶의 언덕을 함께 넘는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