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진실에 닿았을 때마지막 인사를 했다 1
슬로베니아 첼예의 기차역 앞.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덩치 큰 사내가 오래된 엑센트를 타고 나타났다. 내 차는 현다이지. 너와 고향이 같은 현다이. 이반의 첫 인사다.
그는 농담과 진담 사이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재주가 탁월하다. 모든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세상에 공짜는 없다며 외양간의 염소 여물 주는 일을 하라고 했다.
그날 저녁 외양간에 갔다. 어둑한 건물 안에 있는 새까만 염소는 희미한 테두리만 보일 뿐이었다. 안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찾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닮았다. 등골이 오싹했다. 바닥에 들러붙은 다리가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해가 거의 넘어가고 있었고 산속 어딘가에서 들짐승 소리가 들렸다.
내 그림자 옆으로 내 것이 아닌 그림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으악! 나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니 크고 수염 난 남자가 한 손에는 낫을 들고 서 있었다. 으아악!
풀밭을 한바탕 뒹굴고 나서야 그가 이반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엉덩이에서부터 얼얼한 기운이 올라와 정수리를 간지럽혔다. 순간 아픈 쪽이 아니라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눈을 잠시 가리고 별 일 아니라는 듯이 크게 웃었다. 지구는 물리법칙이 지배하는 행성이라지만 사람에게는 물리 세계 너머의 무언가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실체적 고통보다 창피함을 감추려드는 행동이 먼저 튀어 나오는 걸 보면 그렇다. 어느새 이반도 풀밭에 주저앉아 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몸으로 바닥을 쓸고 다니며 웃었다.
이윽고 여물은 됐으니 잡초 베는 일을 하자고 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커다란 낫을 들고 정원으로 향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으므로 엉성하게 낫을 휘둘렀다. 그는 또 꺼이꺼이 웃었다. 푸하하- 잡초를 쓰다듬고 있네! 이윽고 웃음이 있는 저녁은 특별하다며 낫을 들고 서 보라고 했다. 낡은 카메라를 가슴 주머니에서 꺼내더니 사진을 찍었다. 제목은 웃는 저녁이다.
이반은 몇 해 전부터 노모와 함께 살고 있다. 이 집에서는 모두가 그의 어머니를 마마라고 불렀고 나도 그렇게 했다. 처음 집에 들어섰을 때 마마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이반은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슬로베니아에서도 나이 많은 사람에게 허리를 숙여 존경심을 표현하지만 눈은 계속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눈을 피하면 음흉한 사람으로 오해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마마는 너를 음흉한 사람으로 기억할 거야. 그와 대화할 때는 진담에서 농담으로 넘어가는 경계를 수시로 발견해야 한다.
그날 저녁 함께 식탁에 둘러앉았다. 밥이 입맛에 맞니? 마마가 내게 궁금한 거라고는 밥맛뿐이다. 무슨 일을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런 질문은 없다. 차려놓은 식사가 먹을 만한지 묻고는 금세 자리를 떠난다. 슬로베니아 말을 몰라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엄지를 두어 번 치켜세워 언어의 빈칸을 몸짓으로 충실히 채웠다.
이만큼이나 나의 현재와 맞닿아 있는 질문은 정말이지 오랜만이다. 지나온 시간으로 나를 증명하거나 나아갈 방향으로 설명해야 하는 끝없는 인정의 굴레 밖에 있는 오직 지금을 위한 물음이다. 내 엄마에게도 수시로 들었던 말이다. 그때는 그게 왜 그리 궁금할까 했는데, 멀리 떨어져 보니 그게 나를 얼마나 따스하게 감싸고 있었는지 알 것도 같다. 식탁에서는 삶을 증명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기쁨이 될 수 있다.
따듯한 수프에 빵 한 조각을 찍어 먹으며 괜히 웃음이 났다. 보람이란 너무나도 사소한 순간들로 만들어진다. 밥을 차리는 것과 맛있게 먹는 것, 비워진 접시와 불룩 솟은 배. 그때 나는 속으로 마마의 하루가 뿌듯했으면 했다.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나도 기뻤다. 사람은 서로서로 주고받는 작은 희열들을 먹고 사는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