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은 슬픔을 거슬러고개를 내민다 1
오래된 친구가 가족의 부고를 전했다. 세상을 떠난 이는 카탈로니아 지역 라디오 방송 진행자였고, 매일 아르베카의 어느 카페에 앉아 함께 일하던 동지기도 했다. 잡지에 실을 원고를 쓰고 있을 때 그는 대본을 고쳤다.
아르베카의 작은 카페에서 나는 매번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따듯한 커피와 치즈를 곁들인 하몽 샌드위치. 어느 날부터 카페 주인이 내게 계산서를 내밀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그가 앉은 쪽으로 몸을 돌려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했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카탈로니아어와 스페인어를 몰랐으므로 목례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처음 몇 번은 몸을 반으로 접었으나 며칠 뒤에는 웃으며 손만 흔들고 말았다. 대신 바로 앞자리에 말없이 앉았다. 각자의 컴퓨터에서 타자기 소리만 날 뿐이었다.
타다닥- 둘 중 한 사람의 손가락이 빠르게 리듬을 타면 잠시 고개를 들어 눈을 맞췄다. 오늘은 당신의 날이군요. 타자기 소리가 끊기지 않고 난다는 것은 말과 말이 순조롭게 이어진다는 뜻. 누구라도 그런 날을 맞이했다면 좋은 일이다. 그와 나는 각자의 말을 지어내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 어떤 내용을 쓰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저녁마다 나의 친구이자 그의 사위인 X의 집으로 돌아와 카탈로니아 방송을 보고는 했다. 채널의 절반이 축구였으므로 언어를 몰라도 꽤 볼만했다. 그는 축구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카탈로니아에서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치르는 전쟁이다. 국왕의 팀 레알 마드리드와 결전이 있는 날이면 축구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모두가 비장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본다. 문득 그의 원고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궁금해졌다. 정말이지 갑작스럽게 피어오른 호기심은 거꾸로 선 성냥불처럼 빠르게 타올랐다.
X에게 장인어른이 하는 방송은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다. 저녁 뉴스라고 했다. 아마도 뉴스에 짤막하게 덧붙이는 앵커 한마디 같은 걸 쓰는 듯했다. 그날부터 나는 X에게 라디오 시작과 마무리 대사의 통역을 부탁했다. 우리가 카페에 앉아 있는 시간은 정확히 두 시간이었다. 오후 세 시면 칼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께 보낸 시간 동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날의 멘트를 들으며 알아낼 요량이었다.
내 덕분에 저녁 식사를 할 때마다 라디오를 켰다. 두 시간짜리 방송에 알아듣는 건 X가 들려주는 오 분이 전부였다. 내게는 두 시간 동안의 침묵에 붙일 수 있는 단 하나의 제목이었다. 타자기 소리 너머 화면에 찍히는 구부러진 알파벳의 온전한 조합이기도 했다. 그와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대화였다.
아르베카를 떠나기 전날 밤 방송의 마지막 한마디는 이러했다.
“누군가와 말없이 마주 앉아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어보세요. 가끔씩 눈을 맞추고 마음을 읽으려 노력해 보세요. 그리고 혼자가 되면 그 시간을 천천히 돌아보세요. 그때 짐짓 미소 짓고 있다면 그대의 삶에 친구가 하나 생긴 것입니다. 우정은 때때로 고요하게 몸집을 키웁니다. 갈수록 외로운 세상입니다. 진정한 우정이 그리운 오늘입니다. 이상 오늘의 한마디였습니다.”
그의 부고를 받아 들고 말없이 우정을 살찌우던 날을 떠올렸다. 짐짓 미소가 지어졌다. 둥글게 솟은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그제야 나는 내 삶에 진정한 기쁨 한 조각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