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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산만한 이유는 산만하지 않으려 애쓰기 때문이다

조시 데이비스, <하루 2시간 몰입의 힘>

상상해 보세요.

나는 일요일 아침에 모처럼 기분 좋게 일어납니다. 평소에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았던 아이들은 방학을 이용해 며칠 동안 외갓집에 놀러 갔습니다. 아내는 친정에 다녀 오겠다며, 새벽같이 집을 나섰습니다. 주말 빨래와 청소는 어제 다 끝냈고, 아이들을 돌봐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평소에는 회사에 가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했습니다. 하지만 오전 10시까지 늘어지게 자고 나니, 정말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정신이 맑습니다. 1년 가운데 이런 날이 며칠이나 되었던가요?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 온전한 하루가 주어졌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느린 걸음으로 콧노래를 부르고 엉덩이춤을 추며 커피 원두를 갈러 갑니다. 작년 베트남 하노이 여행 때 들렀던 하이랜드 커피점, 그곳에서 샀던 커피를 내리니 향긋한 내음이 집안 가득합니다. 정말 이런 때는 무슨 일을 해도 다 해낼 것만 같습니다. 그래! 바로 이런 최상의 기분일 때 글을 써야 해! 아침 식사도 미루자. 이 리듬을 놓치면 안 되니까. 나는 아침에 아무도 없는 단골 커피숍에 들러 커피와 크라상을 먹으며 뉴요커를 읽는 미국의 유명 작가다! 나는 최고다! 으쌰으쌰! 글빨이 올라온다! 오, 신이시여, 정녕 제가 이 글을 썼단 말입니까! 오늘 한 번 제대로 써보자. 핑계는 설 곳이 없다. 컨디션 최강에 방해꾼도 없으니까. 드디어 오늘 내 손 끝에서 신춘문예 당선작이 나온다, 이거야! 아니야, 차라리 10만 부 에세이를 판 다음에, 디지털 노마드가 되는 편이 낫지. 그깟 신문사에서 주는 상 따위, 이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지.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잡생각을 하고 있지? 빨리 노트북 가져오자. 영차영차. 그래, SSD 하드가 생긴 뒤 더 이상 부팅 시간 동안에 안절부절못할 필요가 없지. 참 좋은 세상이야. 이제 한 번 글을 써 볼까? 손바닥을 쓱싹쓱싹! 오케이, 시작이다!


나는 15분 만에 딴 세상에 가 있습니다. 글을 쓰다가 어떤 내용을 보충하고 싶어서 네이버에 들어갔습니다. 원하는 내용을 찾고 나니, 내가 평소 관심 있던 건강/다이어트 코너가 눈에 띕니다. <간헐적 단식을 하면 아침에 뭘 먹지?> 이거, 흥미로운데? 내가 나중에 쓰고 싶은 글과도 관련이 있으니, 한 번 읽어봐야겠어. 이건 시간 낭비가 아니야. 글쓰기와 관련 있으니까. 아, 재미있다. 그런데 SBS 끼니반란에서 이 주제를 다루었다고? 그것도 봐야겠네. 왜냐하면 나중에 다루고 싶은 주제와 관계가 있으니까.

나는 이제 유튜브 채널로 옮겨갑니다. <끼니반란>에 대해서 시청하다 보니, 연관 동영상의 썸네일에 원시인 다이어트가 뜹니다. 그래, 이것도 봐야 해. 왜냐하면 내 글에 도움이 되니까. 이런 식으로 이렇게 저렇게 동영상을 찾아보다 퍼뜩 정신을 차리니, 벌써 점심 먹을 시간입니다. 글은 반 줄도 쓰지 못했습니다. 형편없는 제목 옆에 커서만 반짝반짝거립니다. 게다가 자료를 여럿 보았는데, 지나고 나니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가장 기분 좋은 오전을 날렸습니다. 절망합니다. 탄식합니다.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왜 이렇게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할까?

아냐, 자기 비하는 하지 말자. 샌드위치 하나 만들어 먹고, 오후에는 일단 독서를 하자. 글을 쓰려면 일단 뭔가 읽어야 하니까. 노트북을 켜 놓으니 도저히 집중을 못하겠네. 스마트폰이니 뭐니 전부 치워버리고, 오늘 오후에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체 독서할 테야! 나는야 세계 최고의 독서가!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어림없지. 내 머릿속에는 셜록에 나오는 기억의 궁전이 2020년 2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다치바나 씨에게는 1층 상가를 분양해 주지. 거기서 책 자랑이나 하며 사시라고.  오후에는 무조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독서할 테야! 평소에 제일 다시 읽고 싶었던 카프카의 <변신>. 예전에 몇 번씩이나 읽었지만, 오늘은 왠지 다시 보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카프카, 그를 만나러 갑니다. 혼자 즐길 저녁 식사 때까지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아디오스! 아디다스!    


나는 15분 만에 절망합니다. 어째서 자꾸 잡생각이 올라오는 걸까요? 스마트폰을 보지도 않습니다. TV를 켜지도 않았습니다. 주변은 쥐 죽은 듯 조용합니다.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꾸 이런저런 생각들이 치고 올라옵니다. 헉, 그레고리 잠자(Gregory Samsa)가 아침에 일어나니 벌레가 되어 있었다고? 그런데 잠자는 잠자리를 떠올리네. 어차피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거 아냐. 잠자리, 잠자리는 고추잠자리. 꼬리가 빨간 고추잠자리. 고추잠자리 하면 역시 조용필이지, 훗.

잠깐, 잠자는 벌레로 변신했다지. 그러고 보니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가 생각나는걸? 거기서도 잠자리가 나오지. 미의 여신인 비너스와 전쟁의 남신인 마르스가 몰래 잠자리를 갖지. 왜 몰래 갖지? 비너스는 대장장이의 신 불카누스의 어엿한 아내니까. 그런데 불카누스가 침대에 몰래 장치를 해놓아서, 불륜 커플은 벌거벗은 채 꽁꽁 묶여 현장 발각되고 말지. 그녀의 속옷 브랜드는 뭘까? 갑자기 CM송이? "사랑의 비너스~?" 한국 속옷 회사 비너스 제품을 이용했으면 좋겠어. 꽁꽁 묶인 비너스를 위태위태하게 비추던 카메라는 점점 침대가로 이동해서 그녀가 벗어던져놓은 브래지어에 포커스를 맞추지. 사랑의 비너스~! 그 회사 제품, 요즘도 광고하나? 한류 스포츠 스타가 입으면 더 유명해질 텐데. 데이비드 베컴도 속옷 광고를 찍었잖아? 속옷 모델로는 류현진이 좋겠지? 역시 내 아이디어는 블링블링해, 후훗!  

헉,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독서해야 하잖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있잖아. 다시 집중하자. 잠자, 잠자, 그래 참자. 후훗, 내가 생각해도 라임이 끝내주는 걸? <어그로 끄니, 통장에 돈이 억으로..?> 아침에 쓰다 만 글의 제목은 이 정도면 되겠지? 흠흠, 다시 책으로 돌아가자. 이런, 가족들은 왜 괴물로 변해버린 잠자를 염려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지? 왜 잠자는 자기 걱정보다는 가족을 먹여 살릴 걱정만 하지? 그러고 보니, 나는 어제 둘째에게 '벌레 같은 놈'이라고 말할 뻔했지. 이런, 나도 내 가족을 벌레 취급할 때가 있구나. 벌레 하면 애벌레지. 애..벌레? 애 볼래? 그러고 보니, 어제 같은 아파트 단지 사는 친구가 애 좀 봐달라고 했는데. 오늘 하루 나만의 자유를 누리고 싶어서 핑계를 대고 거절했지. 나도 벌레나 다름없네. 아냐, 다시 본문에 집중해, 제발. 왜 이렇게 자꾸 딴 길로 새는 거야!    


우리는 어째서 집중하지 못할까요? 칙센트미하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내놓은 몰입(flow)이라는 개념은 이제 상식에 속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그렇게 못할까요? <몰입>이라는 책을 읽으면 나아질까요? 웬걸요. 그 책에 '몰입'이 안 되던걸요? 이쯤 되면 나는 구제불능의 의지박약아일까요? 잠자처럼 벌레 취급받아야 할까요? 아니면 다른 해답이 있는 걸까요?

미국의 신경과학자인 조시 데이비스는 <하루 2시간 몰입의 힘>에서 상식을 깨는 놀라운 이유와 해답을 제시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우리가 산만한 이유는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뇌는 원래 산만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크게 외적 원인과 내적 원인을 살펴봅시다.

첫째, 우리 뇌는 주변 변화에 관심을 갖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온갖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원시인이라고 상상해보면 간단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등 뒤로 몰래 다가오는 호랑이나 발 밑을 파고드는 독사에 당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항상 주변 상황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 주변에 주의를 끄는 사물이 있을 경우, 뇌가 그것에 정신을 팔지 않기란 불가능합니다. 그것에도 정신을 팔지 않는다면 집중력이 좋은 게 아니라, 둔감한 게지요. 조시 데이비스는 '기능 장애'라는 표현까지 씁니다.


따라서 우리가 집중하기 위해서는 일단 몰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는 몰입에 최악입니다. 왜냐하면 내 주의력을 끌뿐만 아니라, 내가 집중하고 있던 일을 손에 놓고 다른 일(블로그 검색, 페이스북 확인)에 몰입하도록 관심사를 전환시키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정신에너지 양은 정해져 있습니다. 주변에 나를 유혹하는 물건이 있을 경우, 그 물건에 관심을 쏟지 않겠다고 의지력을 발휘하는 것조차도 엄청난 에너지 소모입니다. SNS 활동이 사소해 보여도, 그것 또한 정신력을 낭비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식으로 돌아옵니다. 우리 뇌는 본디 이리저리 정신을 팔게 되어 있습니다. 안 팔면 비정상입니다. 따라서 정신을 팔리게 만드는 외적 원인들을 차단해야 합니다.


둘째, 내적 원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점이 가장 놀라우면서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내가 외부 사물을 끊고 카프카의 <변신>에 집중하고자 했을 때, 여러 생각들이 밀려오고 나는 딴 길로 샙니다. 이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왜 나는 책에 집중하지 못할까요?

정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책을 읽다가 이런저런 생각이 밀려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본문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뇌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쉽습니다. 제가 슬로 라이프 관련 글에서 몇 번씩이나 다루었는 바로 그것을 하면 됩니다. 그것이 뭘까요? 바로 멍 때리기입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집중력의 힘을 믿으라고 배운다. 좋은 학생은 수업 시간에 집중한다. 공상에 빠지는 것은 독려받지 못할 일이다. 잡념에 자주 사로잡히는 것은 고쳐야 할 결점,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이것은 결코 결점이 아니다. 캘리포니아 대학 샌터바버라캠퍼스 연구진은 일상생활에서도 공상에 자주 빠지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더 창의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어려운 도전에 직면하고도 자꾸 잡념이 든다면, 자신을 질책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생각이 흐르도록 내버려 두고, 돌아오는 이득을 챙기길 바란다."(111-114쪽)


이제 우리는 일에 집중하면서도 동시에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를 때, 나 자신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일에 집중하다 떠오르는 잡생각은 실제로는 잡스럽지 않습니다. 물론 잡스러움이 창의성과 다양성을 지칭한다면, 잡스러움이란 표현도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심지어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전혀 관계가 없는 생각들이 떠올라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실제로 관계없는 일이란 없습니다. 내가 그 관계를 의식적으로 확인하지 못했을 따름입니다. 그러니 무슨 일을 하든 여러 생각들이 떠오르면, 멍 때리면서 마음껏 그놈들을 즐기면 됩니다. 조시 데이비스는 말합니다. "정신이 산만할 때에는 무작정 자기 자신을 나무랄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에 대해 공정하고 편견 없는 관찰자가 돼 보자. 집중하지 못해 좌절하거나 자기 비난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보다 효과적으로 눈 앞의 과업에 다시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을 것이다."(119쪽)


오늘 우리는 산만함을 이해하고 그에 대처하는 두 가지 팁을 얻었습니다. 첫째, 주의를 분산시키는 외적 원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둘째, 정신이 산만할 때에는 일어나는 생각들을 끊지 말고 그 놈들이 놀도록 놓아두고 지켜봐야 합니다. 당신이 산만한 이유는 산만하지 않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집중하기 위해서는 산만해야 합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다가 딴생각이 들 때는 다른 일로 뛰어드는 대신 그냥 멍 때려야 합니다. A라는 일을 하다가 잡념이 생긴다고 해서 SNS를 하면, SNS라는 다른 일을 새로 시작하는 셈입니다. A라는 일에 장시간 몰입하기 위해서는 일체 다른 일로 건너뛰지 말고, 여러 상념들이 올라올 때는 상념을 지켜보고 즐기고 쉬어야 합니다. 이런 점들을 알기 쉽게 다룬 책들은 뜻밖에 많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집중하기 위해 산만하기"를 가르치는 <하루 2시간 몰입의 힘>을 여러분께 추천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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