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칼 뉴포트를 TED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Quit Social Media 소셜 미디어를 끊어라>는 그의 도발적인 영상은 스마트폰의 폐해를 절실히 깨닫고 슬로 라이프의 길로 들어선 제게 매우 유용했습니다. 그러나 동양철학 전공자인 제게 칼 뉴포트란 이름은 매우 낯설었습니다. 1982년 생인 그는 현재 조지타운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이며, 국내에도 번역된 몇 권의 저서를 펴낸 유명 작가입니다. 그 가운데 제가 읽은 책은 <디지털 미니멀리즘>(2019), <딥 워크>(2017), 그리고 오늘 소개해드릴 <열정의 배신>(2019)입니다. 앞선 두 권 또한 슬로 라이프 코너에서 함께 다룰 예정입니다.
정보 제공의 목적을 지닌 서적의 경우, 목차만 훑어봐도 그 내용의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칼 뉴포트는 성미 급한 오늘날의 독자들이 책을 읽다 던져버리지 않도록, 목차에 핵심 내용을 모두 드러내었습니다. 이는 대기업에서 상사에게 보고할 때, 두괄식으로 one page 보고서를 쓰는 방식과도 흡사합니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됩니다.
1부: 열정을 따르지 마라(Don't follow your passion)
2부: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실력을 쌓아라(Be so good they can't ignore you)
3부: 지위보다 자율성을 추구하라(Turn down a promotion)
4부: 작은 생각에 집중하고 큰 실천으로 나아가라(Think small, act big)
<1부: 열정을 따르지 마라(Don't follow your passion)>
칼 뉴포트는 스티브 잡스의 유명한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연설에서 애플의 CEO는 "열정을 따르라(Follow your passion)."는 말을 강조하는데요. 뉴포트는 널리 알려진 상식과도 같은 이야기에 딴지를 걸어 독자들의 호기심을 끄는 데 성공합니다. 물론 훌륭한 학자인 뉴포트는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지는 않습니다. 그는 1988년에 출간된 스티브 잡스 전기에 바탕해서, 젊은 잡스는 IT에 열정을 지니기는커녕, 힌두교 사원을 들락거리며 영적 추구에 힘썼던 히피였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물론 잡스가 결국에는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가졌다는 사실이 부인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잡스 본인이 본격적으로 IT 산업에 뛰어들게 된 것은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연속된 결과였습니다. 그 과정 어디에도 순수한 열정이 두드러진 적은 없었지요.
이어서 뉴포트는 <로드트립 네이션>이라는 프로그램 관련 동영상 연구를 통해, 1) 일에 대한 사람들의 첫 열정은 드물며, 2) 열정이 생겨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3) 열정은 오히려 실력의 결과물이었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립니다.
<2부: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실력을 쌓아라(Be so good they can't ignore you)>
2부에서 뉴포트는 '열정을 따르라'는 조언이 잘못되었을 경우 그 대안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먼저 질문합니다. 그 대답으로 그는 희소성과 가치를 지닌 실력을 지녀야 하며, 이를 커리어 자산(carrier capital)이라고 명명합니다. 이 커리어 자산을 쌓기 위한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확정하기 위해 그는 열정 마인드셋(passion mindset)과 장인 마인드셋(craftsman mindset)을 구분합니다. 열정 마인드셋은 "세상이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에 집중하는 반면, 장인 마인드셋은 "내가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는가"에 집중합니다. 커리어 자산을 확보하는데 필요한 마음가짐은 물론 후자입니다. 또한 장인 마인드셋을 지니고 있더라도, 성공적으로 커리어 자산을 쌓기 위해서는 '의식적 훈련'이 필요합니다. 반복적 꾸준함이 열정을 이긴다는 상식이 여기에서 다시 한번 확인되지요.
<3부: 지위보다 자율성을 추구하라(Turn down a promotion)>
경영학 분야의 수많은 연구 결과들은 사람들이 더 많은 자율성을 누릴수록, 더 많은 행복과 성취감 또한 느낀다는 점을 거듭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엠제이 드마코가 부의 추월차선을 다루며 말한 부의 3요소 가운데 자유(freedom)에도 해당됩니다. 실제로 드마코는 <언스크립티드>에서는 자율과 자유를 혼용하기도 합니다. 다만 뉴포트는 커리어 자산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함부로 자율성을 탐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시점에 가야만 자율성을 욕구하는 것이 허락될까요? 뉴포트에 따르면, 내가 하려는 일에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낼 것이라는 확신이 들 경우에만 자율성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냉정하지만 현실적인 조언이지요. 그는 더욱 딱딱하게 보이기 위해 '재정적 생존 가능성(Financial Viability)의 법칙'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내서 우리 코 앞에 들이밉니다.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지불할 일을 하지 않을 경우,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려는 꿈은 자제하라는 것이지요.
<4부: 작은 생각에 집중하고 큰 실천으로 나아가라(Think small, act big)>
이 책의 마지막은 사명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열정은 쉽사리 사그라들지만, 원대한 사명감은 인내력을 가능케 하지요. 하지만 이 사명감이라는 것 또한 적절한 업무 프로세스에 바탕하지 않을 경우, 무너져 내리기 십상입니다. 칼 뉴포트는 목표에 맞게 여러 차례 작은 아이디어들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작은 실패들과 작은 성공들을 거듭 경험하면서 좀 더 큰 단계로 나아가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예기치 못한 해결책을 찾고 놀라운 결과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요지입니다. 그는 과학 저술가인 스티븐 존슨의 입을 빌어, 탁월한 아이디어는 항상 인접 가능성의 영역 내에서 발견된다고 설명합니다. 이른바 혁신이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갑자기 불쑥 튀어나와 세상을 바꾼다고 흔히 오해됩니다. 하지만 혁신은 현실 속에서는 "순차적으로" 일어납니다. 비유하자면, 혁신은 인접 가능 영역에서 시작해 점점 번져가고 사방을 적십니다. 이 때문에, 단숨에 무언가를 이루려는 조급증보다는 작은 성공과 실패를 반복해가며 끈기 있게 1보 후퇴 2보 전진하는 방식이 보다 나은 결과를 산출합니다.
유튜브에는 "Think big, start small."이라는 말이 자주 보입니다. Think small과 배치되는 철학 같지만, 여기서 Think big은 사명감이나 목표에 가깝습니다. 결국 start small과 뉴포트의 think small이 동의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로써 칼 뉴포트는 그의 중요한 저서를 마무리합니다.
적은 분량의 북리뷰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책의 내용을 모두 담을 수는 없습니다. 칼 뉴포트는 핵심만을 콕콕 집어서 전달하는 효율적인 작가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참신한 구절들을 제가 다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자기 계발 서적을 맹신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새 술은 새 포대에 담겨야 한다는 말도 있듯이, 오래된 미래와 같은 귀한 옛 가르침들은 오늘날의 언어로 재탄생할 필요가 있습니다. 칼 뉴포트의 다른 저서들 또한 매우 재미있으니 일독을 권합니다. 그러면 성선설전도사의 독서 리뷰, 이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All is 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