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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캠퍼스에서의 거꾸로 교실

2018년 말, 성균관대학교는 거꾸로 학습(flipped learning) 방식을 기반으로 한 고전(古典) 학습을 필수 교양 과목으로 지정하고, 2020년 1학기부터 정식 커리큘럼에 포함하기로 결정하였다. 목표는 한 학기 동안에 소수(小數)의 고전을 집중적으로 읽고 이해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시카고 대학이 졸업 시까지 100권의 고전을 읽는 ‘시카고 플랜’을 통해 명문대학으로 올라섰는바, 고전 교육의 중요성 및 필요성은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학생이 주도가 되어 토론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거꾸로 교실은 대부분의 강사에게 낯설었다. 거꾸로 교실은 주로 이공계 수업에서 높은 성과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수학 공식을 활용한 문제 해결이 주를 이루고 해답 또한 명확한 자연과학이나 공학 계열 수업에서 거꾸로 교실은 두각을 나타냈다. 반면에 거꾸로 학습을 활용한 인문학 수업에 대해 많은 대학 강사들은 회의적이었다. 

동양철학 원전을 수업 교재로 채택한 강사들의 걱정은 한층 더 했다. 서양철학의 경우, 한글 번역서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내용의 난해함은 있을지언정, 번역 자체의 가독성이 문제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나 서산 진덕수의<심경>을 텍스트로 채택한 강사의 경우는 어떨까? 대부분의 동양철학서 번역은 직역된 한자어에 한글 조사를 가져다붙인 수준이다. 전공자들조차 한글 번역본만 읽어서는 도저히 내용을 이해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교양 필수 과목 수강자는 동양철학을 전공으로 하지 않는 불특정 다수의 학부생이었다. 게다가 여러 제반 사항을 고려한 끝에, 대학은 학생들을 수업에 임의로 배정하기로 결정하였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면, 학생들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특정 과목에 강제 할당될 예정이었다. 따라서 학생들이 수강 초기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1년의 교과목 연구 기간이 강사들에게 주어졌다. 대학 측의 세심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삶에 치여 거꾸로 학습법 개발에 충분히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던 것 같다. 부족한 수업자료를 계속 채워나가는 와중에,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국가적 재난이 2020년 초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성균관대학교는 개강 시기를 2주 늦춤과 동시에, 4주 분의 강의를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동양고전 거꾸로 수업은 1학년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데다 토론 방식이었고, 올해가 첫 번째 시행이었다. 자신이 다닐 학교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도 해보지 못한 신입생이 토론 위주의 수업을 온라인으로 수강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교육 현장에서는 큰 혼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학생과 대학 측의 호의와 배려 속에 수업은 무탈하게 진행되는 중이다. 


이 매거진은 대학교에서 동양철학 고전을 거꾸로 학습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대한 선행경험을 담고 있다. 1학기 동안 진행되었던 날것의 내용이 아닌, 시행착오의 개선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수업의 세부내용은 본문에서 다루고, 여기서는 수업의 기본적인 성격만을 밝히고자 한다. 

필자는 인문과학 수업의 기본 패턴을 자연과학의 그것과 동일하게 가져가고자 애썼다. 다시 말해, 수업의 공통 철학을 숙지시킨 뒤 그 사상에 따라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필자는 수업을 구성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수업 방식을 상기해 보자. 그는 동일한 사회 문제에 공리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각각 어떻게 답할 것인가를 학생들에게 묻는다. 특정 철학이 지닌 논리 구조에 따라 동일한 사회 문제에 대한 해답은 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특정 철학에 대한 공통의 이해만 있다면, 그 사상을 기반으로 해서 서로 다른 사회 이슈에 일관된 논리로 답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방식은 물리학 분야의 <뉴턴 고전 역학 연습> 과목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뉴턴의 고전 역학이 오류가 없기 때문에 이 수업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뉴턴 역학의 기초 공리들을 어떻게 일관되게 문제에 적용하여 해답을 도출해낼 수 있느냐를 테스트하는 것이 이 수업의 목표일 터이다. 

마찬가지로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와 성악설을 주장한 한비자의 경우, 동일한 개념에 대해 이해와 사용을 달리한다. 예컨대, 성선설에서 예의(禮儀)는 서로 다른 기질을 지닌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수단이다. 반면에 성악설에서 예의는 악한 인간들을 강제하고 교정하는 도구이다. 실질적인 수업 과정에서 성선설과 성악설 가운데 어떤 이론이 옳으냐를 따질 필요가 없다. 다만 성선설을 채택한 강사는 그 이론에 따를 때 각종 영역의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해답이 어떤 방식이 되어야 하는가를 체크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박사 학위를 지닌 전공자들이 보기에, 그와 같은 수업 진행방식은 정당한 깊이를 결여한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가령 오늘날 순자의 성악설에 대한 이해는 여럿이며, 심지어 서로 상충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성선설에 대한 이해도 연구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럴 경우 강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본 수업을 성선설에 따라 진행하였다. 그리고 성선설에 대한 필자 자신의 해석을 학생들에게 알려준 뒤, 본 수업은 이 해석을 따를 것이라고 공지하였다. 필자는 이 수업에서 사용되는 성선설에 대한 개념정의가 모든 학자들에게 인정된다고 학생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수업 구성원 모두가  따라야 할 게임의 룰(rule)을 정했을 따름이다. 이 강의가 끝난 뒤, 학생들은 아마도 “이 수업에서는 성선설을 이렇게 가르치더라.” 정도로 이해해줄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 이 게임의 법칙에 따라, 모든 플레이어들은 움직인다. 수학 공식을 숙지한 뒤, 응용문제를 푸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인문학 수업이 진행된다. 하지만 성선설에 따라서 여러 이슈들, 특히 현대 사회의 문제에 답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개인적 숙고와 집단 지성을 동시에 요하는 작업이다. 이 때문에 거꾸로 학습의 핵심인 토론은 문제 해결에 매우 효과적인 수업도구이다. 온라인 사전학습으로 수업시간에 다룰 내용을 숙지 한 뒤, 당일에는 그 내용에 대한 심화 학습 및 문제 해결 토론이 본 거꾸로 교실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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