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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빠졌을 때

이 글을 쓰고 있는 2020년 12월 14일 현재, 한국은 코로나19 3차 웨이브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아니, 고통이라기보다도 차라리 "지쳐 나가떨어졌다"는 표현이 좀 더 진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민들은 코로나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1월 20일 이후 1년 가까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악전고투해왔다. 그리고 그들은 해이 해졌다기보다는 지쳤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 블루'라는 용어가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고 있다. '코로나 블루'와 관련된 책이 다수 출판되었고, 이에 대한 극복 방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지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 '코로나 블루'를 검색하면, 인성교육이나 해외여행, 당도 높은 과일 등으로 이겨내자는 기사들이 순서대로 나열된다.


그런데 캥거루는 '코로나 블루'라는 세련되고 감각적인 용어가 '사회적 우울증'의 병폐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빠졌을 때>의 작가인 '전문우'는 '우울'과 '우울증'을 구별한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주말에 약속이 없으니 우울해", "다음 주에 여행 가기로 했는데, 업무 때문에 취소할 수밖에 없어서 우울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 연인이 없으니 우울해." 코로나 블루의 '블루'는 대략 이 정도의 아쉬움을 표현하는 것만 같다. 말하자면 숱한 광고성 신문 기사들이 제시하는 것처럼, 여행이나 인성교육, 맛있는 음식 등으로 쉽게 회복될 수 있는 가벼운 느낌? 말하자면 "어머, 나 기분 다운됐어~" 정도의 뉘앙스?


그러나 실상 우울증은 이와 같은 우울과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정신질환이다. 극심한 우울증으로 오랜 기간 고통받다가 간신히 살아서 돌아온 전문우 작가는 우울증이 사람을 쉽사리 자살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경험을 빌어 강조한다. 우울증은 무감각, 무관심, 무표정 등을 동반한다. 사람이 죽어나가도 무관심하며, 가족의 호사에도 무감각하다.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어서 무표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아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닌, "아픈 사람"이다. 그는 겉으로는 웃고 떠들며, 억지로나마 사람들과 함께 밝게 어울려 살 수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은 가식적인 일상생활을 몇 시간하고 난 뒤면, 우울증은 그에게 몇 배의 복수를 가한다. 말 그대로 침대에서 손가락 하나도 꼼짝할 수 없으며, 무한 반복되는 자기혐오와 자기 폄하 속에 자살을 쉽게 꿈꾸게 된다. 극단적인 무기력함에 빠져 자신의 정신과 육체는 물론이요 주변 사람들을 돌볼 능력조차 상실하는데, 이로 인해 더욱 자신을 비하하게 되어 이른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키에르케고르식 고통 속에 살게 된다.


캥거루는 이 때문에, '코로나 블루'와 같은 달착지근한 용어가 대한민국에 이미 만연해 있을 "사회적 우울증"에 대한 경각심을 흐려버릴까 매우 두렵다. 앞서 말했다시피, 한국인들은 1년에 가까운 바이러스 전쟁에 지쳐 버렸다. 많은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자신의 생업을 잃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극단적인 무기력감에 빠져 있으며,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고 자기 상실에 빠지는 등 우울증 증세를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문우 작가가 지적하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야, 너 우울증 있어? 나도 우울증 있어. 현대인들은 누구나 조금씩 우울증이 있어. 그러니까 견뎌."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만약 본인이 우울증을 쉽게 입에 담을 수 있을 정도라면, 그 사람은 우울증 근처에도 가지 못한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별 악의 없이 던진 한 마디가 우울증 환자에게는 너무도 아프게 다가올 수 있다.

12월 14일,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이번 주를 제대로 버티지 못하면 3단계로 갈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방역 수칙을 지켜달라고 요청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무관용 원칙에 따라서 처벌하겠다고도 정세균 총리는 말했다. 캥거루 또한 서울에 사는 시민으로서, 상황의 엄중함을 안다. 하지만 만약 대한민국 국민 상당수가 1년 동안의 지루한 밀고 당김 끝에 약한 우울증 증세를 겪고 있다면, 그와 같은 '항전의 자세 강조'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방역수칙을 어기는 "나쁜 사람"이 아닌, 따뜻한 위로의 말이 필요한 "아픈 사람"인지도 모른다. 아픈 사람들의 자발적이고 긍정적인 행동을 이끌어내려면, 정부가 어떤 화법을 사용해야 하는지 한 번 고민해볼 시점이다. 아울러 2020년 코로나 19 사태가 불러온 "사회적 우울증"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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