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새벽 4시 반에 깨어났다. 유달리 부지런해서가 아니다. 새벽 4시 반에 깨어나야 하는 목표가 분명하면 노력하지 않아도 절로 눈이 떠진다. 그렇다면 내게는 어떤 목표가 있을까? 바로 하절기 나스닥 폐장 시간이다. 통상적으로 미국 주식시장은 3월 둘째 주에서 11월 첫째 주까지는 한국 시간으로 22:30에 개장해서 05:00에 마감한다. 그 외에는 23:30에 개장해서 06:00에 마감한다. 따라서 현재 장중에 거래하기 위해서는 22:30과 05:00 사이에 깨어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만약 22:30분에 들뜬 마음으로 주식 매매 앱을 들여다보았다? 그럴 경우 질 높은 수면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차라리 04:30에 기상해서 대충 장 상황을 파악한 뒤 30분 안에 내가 필요한 거래를 수행하면 된다. 나는 단타를 위주로 하는 데이 트레이더가 아니고 전 재산을 걸거나 빚을 내어 주식하지는 않으므로, 매일 주식시장 상황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올해 초에 투자해놓은 주식이 아직까지도 음전 상태이지만(ㅠㅠ),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반면에 시가 매매가 아닌 종가 매매를 목표로 삼아 04:30 기상 습관을 들인 것은 실보다 득이 훨씬 크다. 최근에는 여기에 새벽 걷기 또는 슬로우 러닝을 가미하니 참으로 도움이 되었다.
지난 수십 년 간 나는 퇴근 후에 운동하였다. 힘든 하루를 마치고 공원으로 뛰쳐나가 신나게 달리거나 걷고 나면 하루의 피로가 모조리 풀리는 듯했다. 30대 후반까지 나의 이와 같은 습관은 눈에 띄게 흐트러지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40대가 되어 게을러지고 이런저런 핑계가 늘어나면서, 운동 패턴이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생활은 규칙적이었으나 점차 운동을 게을리하게 되었고, 정제 탄수화물에 중독된 식습관이 겹쳐서 체력이 갈수록 바닥을 쳤다. 오전과 오후에 주어진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퇴근 후에는 운동할 힘이 더 이상 남아 있지를 않았다. 게다가 인간은 얼마나 핑계를 잘 만들어내는 동물인지! 몇 년째 심해져만 가는 미세먼지는 야외 운동을 게을리할 멋진 구실이 되었고, 2020년부터 현재 진행형인 코로나 팬데믹은 "비대면 숨쉬기 운동"을 위한 좋은 변명이 되었다. 2021년 6월 여름, 내 몸은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꾸준히 비명을 질러대었다. 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바로 마음의 역할이자 임무라고 퇴계 이황이 말하지 않았던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이제 기말고사 채점도 다 끝났겠다, 어느 정도 시간 여유가 있었다. 방학 때면 학자들은 학기 중에 쓰지 못했던 논문들을 마무리하느라 바쁘다. 하지만 나는 올여름, 삶의 우선순위를 살짝 바꾸었다. 새벽에 운동을 하면 피곤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저녁에는 운동할 힘도 의지도 남아 있지를 않았다. 새벽에 운동하면 오전부터 졸려서 어떡하지? 하루를 몽땅 망칠 것 같아. 하지만 에라 모르겠다, 남들도 다 하는 새벽 운동, 나도 일단 저지르고 나서 고쳐 나가자, 마음먹었다. 하지만 새벽부터 과격한 운동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가볍게 걷기이다. 물론 지난 몇 주 동안은 가볍다기보다는 장거리 도보 여행이 되고 말았지만. 그러나 이를 통해서 얻은 것들이 너무 많다. 첫째, 자신에게 맞는 강도의 적절한 아침 운동은 하루를 피곤하게 만드는 대신 활기차게 만든다. 아래의 TED 동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의 뇌는 움직임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활발한 신체 운동은 뇌의 능력 또한 향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PSWx-c9_Ipw
https://www.youtube.com/watch?v=7D4BDhwRu4A
둘째, 새벽 걷기 또는 달리기는 아침부터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을 준다. 사실 건강 못지않게 이 부분이 가장 크다. 아침형 인간의 경우 자신의 성향에 따라 기상 후 출근 전까지 하는 일들이 제각기 다를 것이다. 혹자는 글을 읽거나 쓰고 혹자는 음악을 들을 것이며 혹자는 외국어를 공부할 것이다. 그런데 나같이 게으른 사람의 경우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몸을 쓰지 않으면 곧바로 이불속으로 다시 들어가게 되더라. 이 때문에 눈을 뜨자마자 후즐그레한 차림으로 게으름을 피울 새도 없이 곧장 러닝화를 신고 밖으로 일단 뛰쳐나가는 편이 좋다. 일단 현관문을 나서고 나면, 다시 들어와서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 운동이 하기 싫은 이유는 분명하다. 아침부터 땀 흘리며 달리거나 허벅지가 터질 듯이 자전거 페달을 돌리기 기 싫은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러닝이나 라이딩 대신 새벽 운동으로 워킹을 선택했다. 그러나 워킹마저 싫은 사람들에게는 주말을 택해서 지하철 첫 차를 타고 어디든 도보 여행을 떠날 것을 권한다. 반드시 지하철 첫 차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뭔가 상징성이 있고 성취감도 있다. 내 경우에는 "뚝섬유원지역-팔당역" 도보 코스를 애용한다. 하지만 내가 마들역 근처에 살기에 7호선 이용이 편해서 이렇게 택했을 따름이다. 나는 수년 전에는 지하철 5호선 개롱역 근처에 살았고, 올림픽 공원까지 30분이면 걸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올림픽 공원은 한강과 이어져서 수많은 러닝 또는 워킹 코스를 제공한다. 양재천 근처에 사는 분들은 또 나름의 코스를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새벽에 지하철 첫 차로 여행을 떠날 사람들은 반드시 전날 저녁에 여행 출발 준비를 마쳐놓아야만 한다. 침대 밑에 다음날 준비물들을 빠짐없이 진열해놓고, 샤워 또한 말끔하게 마친다. 아침에는 눈 뜨자마자 기계처럼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나설 수 있어야만 한다. 이렇게 지하철 첫 차를 이용한 서울-경기 도보 여행이 익숙해지면 그다음으로는 지하철 첫 차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일찍부터 멋진 시외 여행을 시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2021년 7월 10일 토요일 아침 5시, 끄물끄물한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고 있다. 이래서 나는 오른손에 스마트폰을, 그리고 왼손에는 작은 양산 하나를 들고 호주머니에 신용카드를 넣은 채 집을 나섰다. 오늘은 집 근처 중랑천을 따라 2시간쯤 걷다가 올 예정이다. 러닝이나 라이딩보다 워킹이 좋은 까닭이 여기에서 한 번 더 나온다. 새벽에 눈을 떴을 때 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 정말로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날 달리기나 자전거 타기는 취소다. 하지만 걷기의 경우는 다르다. 성인 남성이라면 우산을 쓰고 서도 시속 6km로 주변 자연을 즐기면서 충분히 걷다가 올 수 있다. 온몸이 흠뻑 젖은 채 우비에 팔다리가 칭칭 감겨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달리거나 페달링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러닝이나 라이딩으 매우 훌륭한 운동이다. 나는 나와 같은 의지박약 아들이 비 오는 날 첫걸음을 떼기에는 걷기 운동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지 않아도 내가 빗속에 우산을 쓰고 중랑천에 진입한 순간, 부지런한 자전거 라이더들과 마라토너들이 부지런히 내 곁을 스쳐가고 있었다.
빗속에 자연 속을 걷는 것만큼 싱그럽고 상쾌한 경험은 드물다. 왜냐하면 사방의 꽃과 풀들이 비에 젖어 촉촉한 자태를 드러내며, 먼 곳에 보이는 산들은 자욱한 물안개 속에 훨씬 운치를 띠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 중랑천은 인적이 드물어 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역시 나의 구린 카메라는 정취를 충분히 담아내질 못한다. 빗길을 꾸준히 따라 걸어 의정부로 넘어가다 보면 저 멀리 "아일랜드 캐슬"이 보인다.
"아일랜드 캐슬"을 지나면 나오는 다운힐은 길이도 제법 되는 데다가 주변 경관이 너무도 아름답다.
걷다 보니 회룡역으로 가는 중랑천 인도교가 보인다.
그리고 인도교 근처로는 롯데마트가 보인다.
이 지점을 올 때마다 나는 "아이코!"하고 무릎을 친다. 왜냐하면 항상 아침에 걸어왔던지라 롯데마트를 방문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통 이 지점에서 나는 발을 돌려 귀갓길에 오른다. 어느덧 비가 그쳤다.
시간이 제법 지나고 비도 그치니, 중랑천 자전거도로로 진입하는 샛길들로부터 러너와 라이더들이 차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기분 좋은 토요일 아침 저렇게 부지런히 달리고 페달링 하는 그분들이 진정 존경스럽다. 나도 흥에 겨워 잠시 슬로우 러닝을 해보지만, 오늘 신은 신발은 빗길에는 쥐약이다. 자꾸 미끄러져서 결국 포기한다. 걷는 것만 해도 충분히 행복하다.
열심히 걷다 보니 어느새 중랑천에서 집 근처로 빠져나가는 육교 근처에 도달했다. 맞은편에는 도봉구청이 보인다.
도봉구청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가 2020년에 생김에 따라, 이제 중랑구와 도봉구 사이를 건너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게 되었다. 도봉구청 근처 1호선 방학역 주변에는 오래되고 멋진 식당들이 자리 잡고 있다. 2020년에 이 동네로 이사온지라 그쪽에서 고기를 뜯고 술을 마실 기회가 없었다. "언젠간 먹고 말 거야! 치토스!"
이렇게 오늘 아침 걷기는 끝났다.
그저께 깐 스트라바 앱에서는 15.21km가 최장 기록이다. 어제 "우리집-성대" 코스는 14.89km였다. 나는 당분간 러닝이나 라이딩을 할 계획이 없으니, 아마 앞으로의 최장 기록도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 듯하다. 뭐, 기록을 세우려고 걷는 것은 아니니 관계없다. 스트라바 앱을 종료하고 설렁설렁 걸어서 집에 들어오니 8시가 조금 안 되었다. 아민 하면 보람차게 하루를 시작하는 셈이다. 대학원 후배 2명이 다음 주에 "뚝섬유원지역-팔당역" 도보 여행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늦은 아침에 출발해서 오후에 막걸리 한 잔 하고 귀가하자는 것이다. 저녁 6시 이전에는 사적 모임이 4인까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지라 흔쾌히 승낙했다. 이렇게 호응해주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나타나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아침에 들어와서 샤워하고 물을 마신다. 16:8 간헐적 단식 상태이니, 물 이외에 다른 것을 마셔서는 안 되겠지. 초콜릿 우유가 매우 당기지만 꾹 참으며, 기분 좋게 비 내리는 토요일 아침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