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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09] 마들역에서 성균관대학교까지 걷기

이리 뒤척 저리 뒤 척하다가 새벽 1시에 잠들었다. 하지만 새벽 4시에 깨었다. 아침에 내 집에서 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 캠퍼스까지 걸어갈 생각에 설레어서 잠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주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구멍 난 양말을 갈아 신는 것을  소홀히 한 나머지 발 전체에 크게 물집이 잡혀, 한동안 걸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저께 수요일에  다시 뚝섬유원지역-팔당역 코스를 걸어보니, 이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늘 성균관대학교 학술정보관에 볼 일이 있어서 어차피 방문해야 하는 바, 걸어서 가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주문한 한 켤레 700원짜리 발목 등산양말을 신고, 홈플러스에서 산 싸구려 신발 속에 발을 밀어 넣었다. 아직 장거리를 걷는 노하우가 많이 부족하지만, 신발 못지않게 양말과 인솔(깔창)이 도보 여행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양말에 구멍이 나지 않는다면, 일단 발바닥이 상하거나 물집이 잡힐 확률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또한 신발의 쿠션이 부족하더라도(사실 신발 밑창은 부드럽고 적당히 얇은 편이 우리네 발의 원형을 잘 살려준다고 생각하고 있다) 깔창이 충분히 푹신하고 양말이 두껍다면, 쿠션 문제는 충분히 해소가 되는 것 같다. 나는 아직까지도 배워가는 입장이니까, 나중에 견해가 바뀔 수도 있다. 아직까지는 하루에 100km씩 걷는 경우는 없으니까. 

며칠 전에 구입한 벨크로 타입 러닝벨트(플립벨트)를 허리에 두르고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등에는 출근용 가방을 짊어졌다. 도서관에 반납해야 할 책이 하나 가득... 게다가 비가 올지도 모르니 우산도 하나.... 이것저것 넣다 보니 꽤 무거워졌다. 본디 아침에 화장실을 가서 장을 비운 다음에 출발하려 했으나, 기다리는 시간이 지겨워졌다. 그리하여 4시 반이 조금 넘는 시간에 집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서 중랑천으로 진입하니 4시 40분. 스트라바 앱과 연동이 된 뉴발란스 앱을 켰다. 아울러 나이키 러닝 앱도 함께 구동시켰다. 스트라바 앱에 표시된 거리만큼 뉴발란스 앱에 포인트를 쌓을 수 있다. 한편 나이키 러닝 앱(NRC)은 시각적으로 매우 보기 편하다. 게다가 나의 운동 상태를 음성으로 알려주기도 한다. 스트라바 앱은 러닝이나 라이딩을 하는 이들에게는 거의 필수인 듯하다. 

마들역에서 중랑천을 따라 이마트 트레이더스 근처 월계역까지 내려간 뒤 거기서 다시 현대백화점 미아점과 성신여대 역을 거쳐 성균관대까지 가기로 계획을 짠다. 일단 계획이 선 다음에는 무작정 걷는 일만 남았다. 새벽 5시가 되지 않았는데도 중랑천에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마라톤을 연습하거나 로드 자전거를 타고 쌩 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지하철이 다니지도 않는 시간에 이렇듯 사람들이 부지런하게 움직이다니,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마트 트레이더스까지 가는 경의선 기찻길에 못 미쳐서 육교를 건너 월계역으로 향한다. 카카오 앱을 따라서 걸으니 길을 잘못 들 리는 없으나, 한편으로는 너무 기계에 의존하는 것은 아닌지 기분이 썩 쾌활하지는 않다. 예전에는 걸어가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떠올렸으나, 이제는 고개를 박고 스마트폰 화면만 부산스레 쳐다보고 있다. 이 귀중한 도보여행을 스스로 망치는 것은 아닌지. 다행히 월계역에서부터 성균관대학교까지는 길을 잘못 들기가 어려울 정도로 한 방향이라, 이제는 제법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코로나 19 신규 확진자가 연일 1천 명을 넘어선 상황, 그러나 새벽이라 그런지 아직 거리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다. 카카오맵을 따라서 걷다 보니, 내가 자주 데이트를 즐기는 북서울 숲을 지나친다. 사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교직원 출퇴근 셔틀버스를 타고 오는 길과는 너무도 달랐기에. 좀 돌아서 가는 면이 없지 않아 있으나, 그만큼 더 재미있다. 하늘은 갈수록 꾸물꾸물해지고, 북서울 숲을 지나 업힐 중인데 두 볼에 가느다란 빗줄기가 하나둘 씩 꽂힌다. 하지만 아직 우산을 꺼내기는 싫다. 어차피 신나게 빠져서 빡빡 밀어버린 머리, 탈모의 걱정도 없으니 이정 도 빗줄기는 애교다. 산성비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다. 우산보다도, 무거운 가방이 더욱 원망스럽다. 

현대백화점 미아점을 지나서 성신여대입구역 쪽으로 진입하니, 비로소 사람들이 많아진다. 시간은 6시를 넘었다. 출근 중인 사람들이겠지. 아침에 망설임 없이 나오느라 샤워조차 하지 못한 상태이다. 물론 어젯밤에 씻고 자기는 했지만, 지금 내 상태가 후줄근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서 일부러 휙휙 돌아가며 걸었다. 양말 바닥이 충분히 두꺼워서 구멍이 난다거나 발바닥이 불타듯 뜨거워진다거나 하는 일이 없어서 너무나도 좋았다. 한성대 입구역 쪽을 지나니 이제 7시까지 20여 분 남았다. 발걸음은 한층 더 가벼워지고 이제는 가방조차 무겁지 않다. 아침 7시가 되기 전에 뭔가 보람찬 일을 마친 기분이라 한층 들뜬다. 한 때 한성대입구역 근처에 살았기에 거리가 너무도 낯익다. 저기 성균관대학교 입구가 보이는데 이제 7시까지 2분 남았다. 이왕이면 7시 안에는 도착하고 싶어서 날듯이 걷는다. 아침부터 뛰기는 싫은지라. 7시 안에 도착하려고 지나치게 서두른 탓에, 학교 앞 도로에서 지나가는 차를 손사래 쳐 세운 다음 건너간다. 아마 운전자는 이런 아침에 뭐가 저리 급해서 지나가던 차를 세우느냐고 의문할 것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문 앞에 다다라서 스트라바 앱과 나이키 앱의 운동 세션을 종료한다.

 

그래도 아침부터 15km 정도는 걸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너무도 뿌듯했다. 게다가 아직 7시밖에 되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 선물을 주려고 성대입구 스타벅스에 갔더니, 아뿔싸, 7시 반에 문을 연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균관대 입구에 있는 조그마한 공원 벤치에서 딘 카르제니스의 <울트라마라톤맨>을 읽으며 스타벅스가 오픈하기를 30분가량 기다렸다. 

이 저서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리뷰할 생각이다. <본 투 런>과 함께 사람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스타벅스에 두 번째 손님으로 입장하여 기존에 갖고 있던 아메리카노 쿠폰에 돈을 보태서 말차 프라푸치노를 주문했다. 이런 날에는 또 16:8 간헐적 단식이 날아가버리고 만다. 아무려면 어떠랴. 기분 좋은 날인 것을. 

성균관대학교 학술정보관이 오픈하는 9시까지 턱을 괴고 앉아서 <울트라마라톤맨>을 마저 읽었다. 내친김에 그의 TED 토크도 함께 보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QelGYAP0x4

내가 울트라마라톤을 하게 될 일이 있을까. 나는 아직까지는 걷는 것이 마냥 좋다. 슬로우 러닝까지는 즐기는 편이지만, 울트라마라톤은 내 상상의 범위를 넘어선다. 나중에 하고 싶어질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 그때에는 본능에 따라 거부감 없이 신나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다. 

9시가 되어 나는 스타벅스를 나섰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반납한 뒤에 필요한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 수도권은 오늘 부로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에 들어갔고, 대학 도서관의 이용도 크게 제한될 것이다. 미리 해놓을 일들은 다 처리해놓아야지. 내 가슴을 뛰게 하지 못하는 행정 업무들을 또 슬그머니 미루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제법 일할 맛이 나는 오늘이다. 오늘이 시작된 지 벌써 5시간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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