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내가 본 장에서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술 자체가 아니라, 술자리를 피하고자 하는 동기의 원인이다. 나는 한국의 문제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내가 이해하는 이와 같은 현상의 원인에 대해 한국의 경험과 연계해서 분석하고자 한다. 그리고 사실 이와 같은 문제는 보편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의 술자리 기피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나는 혼자 마시는 것을 좋아해서 술자리에 자주 나가지 않는 경우에 대해 다루어보고자 한다. 우리가 익히 예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이 경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나는 주변에 이와 같은 친구들을 여럿 두고 있다. 그들은 결코 사람들을 싫어하거나 인간관계를 꺼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조용한 성격으로 술자리뿐만 아니라 여타 떠들썩한 자리를 불편해하며, 다만 집에서 조용히 혼자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술을 홀짝홀짝 마시거나, 이리저리 주조해서 즐긴다. 마치 혼자서 조용히 집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거나 독서하듯이, 그들은 술을 마신다. 일부 사람들의 선입견과는 달리, 술을 예술적으로 즐기는 그들은 결코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며, 취해서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마시는 경우가 결코 없다.
술맛 자체를 즐기는 섬세한 애호가들은 절대로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긴다거나 술기운을 빌려 행패를 부리지 않는다. 그는 자기가 좋아서 술을 마시는데, 어느 정도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나면 알코올 기운이 돌고 혀가 얼얼해져서 더 이상 술맛을 섬세하게 느낄 수 없다. 그때부터는 마셔봐야 별 소용없으며, 괜히 술값만 더 나오게 된다. 술맛을 느끼는 감각은 목구멍이 아닌 혀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혀를 거칠 새도 없이 목구멍에 술을 털어 넣는 술꾼들은 의외로 다양한 술맛을 제대로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신의 주량이 소주 몇 병인 가는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소주들의 다양한 맛을 제대로 분간치 못한다. 결국 그들은 술맛을 느끼는 게 목적이 아니라 단지 취하는 것이 목적이었을 따름이다.
다음으로, 술을 강권하는 술자리 분위기가 싫어서 술자리를 피하는 경우가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최근 들어 이 문제가 심각히 다루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갈수록 직장 내 술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물론 거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가령 요새 직장인들은 자기계발을 위해 퇴근 후에도 바쁘기 때문에, 술 마시기를 꺼려한다. 하지만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가 흔히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2014년 3월 서울대학교에서 음주 강요와 성희롱 발언을 삼가자는 '즐거운 MT 만들기 인권지침'을 만들어 배포한 것을 보면, 음주 강요는 비단 직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이와 관련해서 놀라운 사례를 하나 알고 있다. 내 친구가 다니던 직장의 부장은 명문 대학을 나오고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회사의 ‘잘 나가는’ 선배이다. 그런데 그는 신입사원을 비롯한 모든 부하 직원들에게 술을 강권하기로 유명했다. 제아무리 신입 사원이 술을 마시지 못한다고 사정해도, 그는 도리어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도리어 불같이 화를 내며 술을 더욱 강요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부장이 아침부터 몹시 화가 나서 사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비록 성질이 불같기는 하나 뒤끝이 없어서 말을 걸기에 부담은 다소 적은 그 상사에게 부하 직원 중 한 명이 아침부터 기분 나쁜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놀랍게도 부장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우리 딸이 이번에 신입사원으로 회사에 들어갔는데, 그 회사 팀장이란 놈이 신입사원 환영회에서 아주 술을 잔뜩 먹여서 애가 술이 떡이 되어 집에 들어왔네. 아니, 남의 귀한 집 자식에게 어떤 미친놈이 그렇게 술을 억지로 먹여!!”
나는 이 이야기가 실화임을 친구로부터 거듭 확인했다. 그 부장은 한국 유수의 대학을 졸업하고 아이비리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수재이다. 하지만 그는 공부만 잘했지, 자기 삶 속에서 일관된 논리를 지키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자기 자식 귀한 줄만 알았지, 남의 자식 귀한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부장보다 학업성적이 우수하지 못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들어보아도, 부장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고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따라서 능동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이제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에 따라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신이 원치 않는 술을 억지로 먹어야 하는 술자리에 나가기를 꺼려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술을 강권하는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1996년, 외환위기 사태 이전 흥청망청하던 시절에 대한민국의 15세 이상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이 OECD 회원국 가운데 2위였다는 사실은 이제 끔찍하기까지 하다.
마지막으로 모든 대인관계가 싫어서 사람 모이는 자리를 무조건 피하는 과정에서 사람 모이는 술자리까지 피하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나는 이와 같은 대인기피 성향은 히토리 군의 성향과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히토리 군은 혼자 있기를 좋아하지만,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다. 히토리 군은 여럿 있는 것도 좋아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구태여 피해 다니지는 않는다.
그런데 사람 만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꺼려해서 술자리를 비롯한 모든 모임에 나가지 않는 것은 이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과 애정이 뚝뚝 떨어지게 교감이 되기를 바랄 필요는 없다. 그와 같이 대인관계가 좋다고 자랑하는 이들 가운데 의외로 진정 마음 터놓을 수 있는 친구는 한 명도 없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은둔형 폐인이라 불리기도 하는 히키코모리와 관련된 문헌들을 여럿 읽다 보니, 은둔형 폐인들도 자신들이 은둔한다는 것 자체를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자신들만의 공간에 틀어박혀 일체의 대인관계를 끊어버린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사람들과 절대 만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통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이다.
이 짧은 저술에서 히키코모리의 문제까지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나는 능동적 사고방식을 지닌 이는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히키코모리의 경우에도 그가 진정 좋아하는 일은 비록 손가락에 꼽을지라도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처럼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이 또한 자신의 관심사를 나눌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살아 있는 사람들 대신 그냥 평생토록 혼자 틀어박혀 죽은 자들의 가르침이나 들여다보며 사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불온한 생각을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나는 그나마 사람들이랑 어울려서 많이 웃고 많이 배우고 많이 감사하는 편이 혼자 틀어박히는 것보다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일임을 확신한다. 나는 적어도 내 경험을 속여 가면서까지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제5부 끝. 제6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