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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5-1 홍콩 타이포-타이 메이 툭 자전거 코스

21km 자전거 코스를 두 발로 걷기 

오늘은 2022년 1월 15일 토요일입니다. 홍콩은 최근 증가한 오미크론 확진자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일시적으로 강화했고, 이에 따라 저녁 6시 이후에는 모든 레스토랑과 펍이 영업하지 않습니다. 센터에 틀어박혀 열심히 연구하라는 신의 계시라고도 생각했지만, 아침 5시 반에 기상해서 활동하다 보면 아무래도 저녁 시간 때에는 에너지가 소진됩니다. 이때 홍콩의 다양한 문화를 즐겨야 하는데 아쉽습니다.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아무것도 하지 못할 상황은 아닙니다. 저는 평소에 걷기와 달리기, 그리고 자전거 타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그나마 큰 결심하지 않고 당장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걷기이겠지요. 저는 최근에 홍콩에서 으뜸 가는 자전거 하이킹 코스인 '타이포- 타이 메이 툭'을 소개받았습니다. 대략 21km 정도 되는 거리였습니다. 홍콩에 거주하는 많은 분들이 이 코스를 자전거로 즐겼습니다. 하지만 걸어서 즐겼다는 이야기를 아직 접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21km를 자전거로 가면 2시간도 걸리지 않기에 재미가 다소 떨어집니다. 센터에 온종일 가부좌를 틀고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느라 다소 불룩해진 제 뱃살을 줄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고요.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을 먹지 않은 상태로 21km를 걸어갈 경우, 이틀이면 배가 쏙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는 내친김에 '러브 핸들 터뜨리기' 프로젝트에 돌입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옆구리살이 정말로 러브 핸들일까요? 제 경험과 타인의 고백을 종합해 보면, 많은 이들이 신체의 다른 부위보다 옆구리를 잡히는 것을 몸서리치게 싫어합니다. 저는 제 옆구리를 잡는 사람에게는 있던 love도 떨어져 나갈 것 같은데, 왜 이 부위가 '러브 핸들'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서, 시속 5km로 걸으면 5시간 안에 넉넉히 들어올 수 있습니다. 물론 초행길이라 다소 헤맬 것이고 멋진 풍경 앞에서는 발걸음을 멈춰야 하며, 도중에 배가 고프면 맛난 것을 사 먹기 위해 가게를 들러야 합니다. 이래저래 해도, 오후와 저녁 시간을 통째로 쓴다면 충분할 것입니다. 

http://www.tournews21.com/news/articleView.html?idxno=43331


<아뜰리에 드 하퍼> 블로그를 참조하면, 무려 초급-중급-상급의 3개 코스가 있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hyunjun3754/221429165206

<초급용 코스>
<중급용 코스>
<상급용 코스>

여기서 저는 다소 망설여집니다. 셋 가운데 어느 코스를 걸어가는 편이 즐거울까요? 저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21km이면 어떻게든 도착하겠지요. 


아침에 센터로 출근하는데, 길거리에서 난데없이 물고기와 자라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규모가 제법 됩니다. 알고 보니, 홍콩인들은 구정 때에 금붕어나 귤나무 등을 복의 상징으로 여겨 선물한다고 합니다. 

거북짱, 너무 귀여운것 아닙니까! 왼편에는 훨씬 덩치가 작은 거북짱도 있지요. 물론 훨씬 큰 녀석도 따로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봉지를 높게 들어 펄떡이는 관상어를 세심하게 살펴본 뒤에 구매를 결정합니다. 아마 2월 초까지 이런 광경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출근해서 오전까지는 제 할 일을 좀 한 뒤, 오후에 출격할까 합니다. 


12시가 되어서 타이와이 역으로 이동했습니다. 홍콩시티대학과 연결된 콴룽통 역과 한 정거장밖에 차이 나지 않습니다. 이 푸른빛의 동철선(East Rail Line)에는 특이하게도 일등석(First Class) 칸이 별도로 있습니다. 저는 무심코 그곳에 타서 한 정거장 뒤에 내렸는데, 아마 제가 머문 시간이 너무 짧아서 점검을 받지 않았나 봅니다. 무임승차로 적발되었으면 식은땀나는 벌금을 물 뻔했습니다. 여하튼 역 출구를 나와 사람들이 몰려가는 방향으로 조금 걸어갑니다. 

그러다 보면, 한강 자전거도로로 진입하는 토끼굴과 똑같이 생긴 터널이 떠 억 하니 등장합니다. 매우 흥미롭습니다. 

굽이굽이 물결치는 저 자전거도로를 따라서 조금만 걸어내려 가 보면, 한강 산책로를 닮은 멋진 풍경이 펼쳐집니다. 

오른편으로 쭉 이어지는 강은 싱문 강(Shing Mun River)입니다. 나중에는 샤틴 해(Sha Tin Sea, 沙田海)로 연결됩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저는 솔직히 미리 고백해야겠습니다. 홍콩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산책로이자 자전거 도로는 싱문 강을 따라서 이어지는데, 서울의 한강 자전거도로보다 못합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저는 홍콩에 와서야, 한국의 한강 주변 및 전국을 거미줄처럼 연결한 국토종주 자전거길이 어째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지 체감했습니다. 물론 제가 오늘 5시간가량 걸었던 자전거길은 강과 바다가 연결되는 풍경을 볼 수 있고, 나아가서 홍콩의 색다른 모습을 체험할 수 있다는 데서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한민국 동해안 종주가 훨씬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볼거리의 다양성에서 홍콩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거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 보니, 제일 마지막에 나와야 할 총평이 앞서 등장하고 말았습니다. 여하튼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샤틴 방면을 계속 걸어서 올라가다 보니, 자전거 대여점이 많이 등장합니다. 많은 어르신들이 다가와서 제게 명함을 돌립니다. 그것보다 저는 위의 사진에 담겨 있는 자전거 도로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물론 저는 자전거가 아닌 도보로 저 코스를 죄다 정복할 예정입니다. 오늘 제가 걷는 길은 샤틴에서 유니버시티(홍콩중문대학)와 타이포를 거쳐 타이메이툭으로 이르는 코스입니다. 하지만 저기 춘문에서 위엔롱을 거쳐 타이포로 넘어오는 길도 있군요. 이 코스는 아마 온종일 걸어야 할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신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진을 보면 한국과 참으로 흡사하다는 느낌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홍콩의 외곽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경기도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습니다. 물론 저는 좋습니다.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느낌이 좋기 때문입니다. 

싱문 강 주변을 계속 걷다 보면, 저와 같은 고층 빌딩들이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한강은 일단 폭이 매우 넓고 고층 빌딩이 적어서 좀 더 탁 트인 느낌을 줍니다. 싱문 강은 한강 미니어처 느낌입니다. 참고로 제가 지금 걷고 있는 곳은 신계(新界, New territories)입니다. 기존의 구룡반도와 센트럴에 이어 새로이 개발된 구역인데, 일산 정도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홍콩시티대학에서 산을 하나 넘어가면 곧장 신계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계와 구계의 경계에서 근무하고 있는 셈이지요. 저는 지금까지 구계의 끝에서 지루함을 참지 못해 온갖 섬과 센트럴의 명소들을 방황했는데, 알고 보니 위쪽으로 올라가도 멋진 곳들이 많더군요. 모조리 정복해주겠습니다! 싱문 강을 나타내는 표지판을 지나갑니다. 


새벽에 일어나 아무것도 먹지 않고 쭉 걸었더니, 갑자기 혈당이 뚝 떨어지면서 어질어질합니다. 한국에서는 이러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홍콩 체류 동안 운동부족에 단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체질을 망쳤나 봅니다. 눈앞이 핑핑 도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계 산책로 주변에는 흔하디 흔한 편의점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가까스로 조그마한 스낵바를 찾았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망설이다가, 그냥 인도풍 즉석라면을 주문하고 앉습니다. 날씨가 따뜻한데 바람이 시원하니 좋습니다. 몇 분이 지나자,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께서 사진과는 전혀 다른 요리를 내옵니다. 당했습니다. 

오른쪽 상단에 있는 라면인데, 너무 부실해서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뜻밖에 맛은 좋았습니다. 그래도 연료가 들어가니, 다시 팔다리에 힘이 솟습니다. 냉큼 일어나서 발걸음을 옮깁니다. 


30분가량 걷다 보니, 결정적인 갈림길이 나옵니다. 제 오른쪽으로는 긴 다리가 펼쳐져 있는데 초보자 코스로 연결됩니다.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닙니다. 

제 왼편의 길은 아래 사진과 같이 한적한 시골길로 접어듭니다. 젊은이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이제 타이메이툭까지 곧장 이어집니다.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이 길을 택했습니다. 아직 1시간 반밖에 걷지 않았습니다.  

이제 제 목적지인 타이포(Tai Po)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슬슬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아직 3시간은 더 걸어야 하는데, 이때까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뭐, 어차피 걸을 길인데 분초를 다투고 싶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홍콩중문대학 근처에 다다랐습니다. 제 후배인 최국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겠지요. 올빼미 체질인 그는 어쩌면 아직까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또 제 갈 길을 가야겠지요. 

이제 <홍콩 사이언스 파크>에 들어섰습니다.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어 대부분 입장이 불가합니다. 하지만 사이언스 파크의 백미는 '과학'이 아니었습니다. 

오른편에 넓은 샤틴 해를 끼고 있는 사이언스 파크에는 멋진 레스토랑이 여럿 자리하고 있고, 주로 서양인들이 가득히 앉아서 와인을 마시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보자마자 급격히 술이 당기기 시작합니다. 저런 레스토랑에 앉았다가는 오늘 산책을 종료할 것 같아서 편의점을 찾아봅니다. 

제 마음에 쏙 드는 편의점이 있습니다. 아사히 맥주를 한 캔 사서, 테이블에 앉습니다. 

테이블은 허름하지만, 바다와의 거리는 오히려 위의 레스토랑보다 더 가깝습니다. 풍경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습니다.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과 시끄럽게 떠드는 꼬마애들 사이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바다를 즐깁니다. 해운대가 고향인 저는 역시 바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습니다. 

낚시를 즐기는 21세기 강태공입니다. 홍콩은 바다로 둘러싸여서인지, "도시어부"들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저기 멀리 보이는 건물들의 색깔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데, 과연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일까요? 

뭔 놈의 갈매기들이 저렇게 바위에 오열 종대로 집합해서 군기 잡히고 있는 것일까요? 고작 맥주 두 캔 마셨는데, 벌써부터 머리가 핑핑 돕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1월 날씨가 너무 덥습니다! 술기운이 빨리 오르네요. 

이제 저의 최종 목적지인 타이메이툭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약 6km이니까, 한 시간 정도 걸어가면 될 듯합니다. 다음 편에서 이야기를 또 이어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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