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이와 숙제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지 않더라도, 한국 사람들은 <흥보가 기가 막혀!>라는 육각수의 노래를 통해 이 두 성현의 이름에 익숙합니다. 백이와 숙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수양산에서 굶어죽었다는 것은 알지요. 그리고 예로부터 찬양받는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것도 상식에 속합니다. 백이와 숙제 형제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백이 열전>이라는 제목으로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참으로 인문학적 지식을 쌓기에 좋은 곳입니다. 왜냐하면 사마천의 <사기>를 네이버 지식백과에 한문 원문과 번역본 모두 업로드해놓았기 때문이지요.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검색어만 잘 입력하면, 정말로 무궁무진한 고전 독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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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서는 견디기 힘든 끔찍한 일을 당하고서도 기어코 일궈낸 세계적 저작인 사마천의 <사기>. 그 열전의 첫머리에 놓인 글이 바로 <백이 열전>입니다. 상기한 링크를 따라 들어가면 자세한 내용을 살펴볼 있습니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이라는 나라의 두 왕자인데, 서로 형제에게 왕위를 미루다가 둘이 함께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 뒤에 주나라의 문왕이 어른을 잘 봉양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갑니다. 하지만 도착해 보니, 문왕은 이미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무왕이 아버지의 장례도 끝내지 않은 채, 천자국의 무도한 폭군인 주(紂) 임금을 토벌하려 나서는 참이었습니다. 이에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만류하며 두 가지 이유를 댑니다. “첫째, 아버지가 죽어 장례도 치르지 않았는데 창칼을 들다니 효라 할 수 있겠소이까? 둘째, 신하로서 군주를 죽이는 것을 인(仁)이라 할 수 있겠소이까?” 하지만 무왕은 두 현인의 만류를 무릅쓰고 토벌에 나서 결국 성공하고, 이제 주나라가 새로운 천자국이 되어 서주(西周)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사마천에 따르면,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기로 작정하고 수양산에 숨어들어가 고사리를 따먹다가 굶어죽었다고 합니다. 이후로 유학자들에 의해, 백이와 숙제는 충절의 상징이 되어 지금까지도 칭송됩니다.
제가 학생일 때에는 백이와 숙제의 죽음에 관해 술자리에서 시시껄렁한 토론을 많이 하곤 했습니다. 고사리를 따먹었으니 뭔가를 먹기는 한 모양인데, 어째서 굶어죽었다는 것일까? 아마도 고사리가 나지 않는 계절까지는 예상을 하지 못했는가 보지? 수양산에 숨었다고 했는데, 숨은 장소를 사마천은 어떻게 알았을까? 은닉처가 이미 알려졌다면, 더 이상 숨은 게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중국의 신화에는 백이와 숙제가 굶어 죽은 대신에 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꽤 보입니다. 저는 백이와 숙제가 흑화되어서 영화 <곡성>의 아쿠마가 된 상상도 해보았으니, 유학자인 제가 너무 불경했던 것일까요?
여기서 이야기의 방향을 약간 돌리면, 우리가 과거 역사를 공부하는 까닭은 현재와 미래를 살아내는데 필요한 지혜를 갖추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이지만, 그보다는 역사에서 무언가 교훈을 배우는 편이 훨씬 제게 도움이 되겠지요. 사실 "무왕"과 "백이"는 모두 성현에 해당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하는 훌륭한 인물이지요. 그런데 그 두 인물(무왕과 백이)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정반대의 선택을 합니다. 제후국의 임금인 무왕은 천자국의 폭군인 주왕을 토벌하는 것이 "사회정의"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백이는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지 않고 출정하는 것은 효에 어긋나며, 제후가 천자를 토벌하는 것은 인(충)에 어긋난다고 봅니다. 결국 이 "무왕-백이 딜레마"는 잘못된 왕조가 있을 경우 그 왕조 자체를 갈아치워야 하는가, 아니면 왕조를 고쳐 써야 하는가 하는 중대한 문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려말선초에는 잘못된 고려 왕조를 갈아치우고자 하는 이성계-정도전 vs 왕조가 문제가 많지만 고쳐 쓰면 된다는 정몽주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이런 대결은 결국 한 쪽이 죽어야만 끝나곤 했습니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에는 프랑스 대혁명도 근본적으로 비슷한 문제에 직면합니다. 썩어 빠진 프랑스 왕조를 갈아엎고자 하는 혁명세력 vs 그래도 고쳐 쓰는 편이 낫다는 에드먼드 버크, 이 두 세력이 각각 진보와 보수의 뿌리가 됩니다. 오늘날 보수라는 단어 자체는 부정적 뉘앙스를, 그리고 진보는 긍정적 뉘앙스를 띱니다. 하지만 이 딜레마는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한쪽의 편을 든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닙니다. 가령 프랑스 대혁명의 경우,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왕조를 대신한다고 나선 혁명세력의 미숙성과 폭력성을 예리하게 꿰뚫어보고 혁명의 실패를 단언합니다. 혁명 세력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 에드먼드 버크가 자신들을 지지해줄 것이라 믿고 기대했다가 무척 실망하게 되고, 에드먼드 버크의 위상은 한없이 추락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프랑스 대혁명은 나폴레옹 "대제"라는 또 다른 전체주의로 끝나고 맙니다. 2022년 4월 현재 전세계 시민들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제거되기를 원하지만, 불행히도 작금의 러시아에는 푸틴을 대신할만한 인물이 없습니다. 이는 북한 김정은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무정부주의에 가까운 <장자>나 <여씨춘추>에서는 왕조가 아무리 바뀌어도 어차피 다 썩은 놈들이기 때문에 무의미하다며, 무왕에 의한 정권교체를 폄하기도 합니다.
자, 우리는 과거의 이야기도 오늘날 얼마든지 반향을 던져줄 수 있다는 믿음 하에, 과연 백이의 언행이 오늘날에도 의미를 지닐 수 있을지 한 번 살펴봅시다. 첫째, 백이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끝내지도 않은 상태에서 전쟁터에 나서는 것은 효에 어긋난다고 말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볼 때, 이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부친상을 당해서 아버지의 시신이 워싱턴 병원에 누워 있는데, 장례식도 치르지 않은 채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에 "몸소" 투입되었다면, 아마 유교 문화권에 살고 있지 않은 시민이라 할지라도 곱게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분초를 다투지 않고 시계조차 없었던 기원전 시대에서 아버지를 땅에 묻기도 전에 시급히 전쟁에 나서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심지어 적이 쳐들어온 방어전도 아니고 자신이 공격하러 가는 입장인데 말이지요. 저는 만약 이 고사가 정확하다면, 무왕이 불효를 저질렀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백이는 신하가 주군을 토벌하는 것은 인에 어긋난다고 말합니다. 이 내용은 오늘날에서 볼 때에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중국의 천자-군주 봉건제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백이가 당대의 지식인이었으며, 이미 하나라의 폭군인 걸 임금을 상나라의 탕 임금이 토벌해서 천자국이 바뀐 사례를 알고 있었으리라 추측합니다. 다시 말해 천명이 이동해서 천자국이 바뀐 사례가 없지는 않지요. 하지만 <맹자>에 따르면, 탕 임금이 걸 임금을 토벌하러 갔을 때에는 백성들이 모두 환영하고 받아들여서 단 한 번의 유혈사태도 없었다고 합니다. 반면에 <사기>에 따르면, 무왕이 주왕을 토벌할 때에는 피가 강처럼 흘러 무기들이 둥둥 떠다녔다고 하지요. 이를 토대로 보면, 아마도 백이는 아버지 장례도 치르지 않고 성급히 출정하는 무왕에게 뭔가 폭력적인 피냄새를 감지했는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상나라의 신하인 백이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천자국이 교체되는 것이 인하지 않다고 여겼겠지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저는 백이가 무왕을 만류한 이유가 오늘날에도 상당한 타당성을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수양산에 들어가서 굶어죽었다는 고사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사실 조선 역사에는 백이 숙제의 결말을 닮은 "두문동 72현" 스토리도 있습니다. 조선과 중국의 역사를 보면, 사실 많은 선비들이 백이 숙제가 무왕의 말고삐를 잡은 것보다는 그냥 수양산에서 굶어 죽은 것을 좀 더 따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하지만 오늘의 <백이 숙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백이 숙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다음 글에서 좀 더 색다른 토론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